“以秦之强, 得寧邑, 以制齊‧趙. 諸侯皆賀, 吾往賀而獨不得通,
敝邑寡君亦竊嘉之, 不敢寧居, 使下臣奉其幣物三至王廷, 而使不得通.
使若無罪, 願大王無絶其歡; 若使有罪, 願得請之.”
“吾所使趙國者, 小大皆聽吾言, 則受書幣; 若不從吾言, 則使者歸矣.”
趙能殺此二人, 則可; 若不能殺, 請今率諸侯受命邯鄲城下.”
“趙豹‧平原君, 親寡君之母弟也, 猶大王之有葉陽‧涇陽君也.
大王以孝治聞於天下, 衣服使之便於體, 膳啗使之嗛於口, 未嘗不分於葉陽‧涇陽君.
臣聞之: ‘有覆巢毁卵, 而鳳皇不翔; 刳胎焚夭, 而騏驎不至.’
今使臣受大王之令以還報, 敝邑之君, 畏懼不敢不行,
“敝邑之君, 有母弟不能敎誨, 以惡大國, 請黜之, 勿使與政事, 以稱大國.”
진秦나라가 위魏나라를 공격하여 영읍寧邑을 취하자 제후들이 모두 축하하였다.
조왕趙王(혜문왕惠文王)도 사람을 보내 축하의 말을 전하려 했으나 사신이 세 번이나 갔다가 되돌아오고 말았다.
“진나라는 그 강한 힘으로 영읍을 취해 제나라와 조나라를 제압하고 있는 이때, 모든 제후들이 모두 축하하기에 나도 사신을 보내어 축하를 하려 했지만 우리만 받아 주지 않는다.
이는 틀림없이 우리를 칠 속셈인 것 같은데 어쩌면 좋겠는가?”
“사신이 세 번이나 갔다 통하지 못한 것은 틀림없이 그 사자가 적임자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양의諒毅라고 하는 변사辨士가 있으니, 대왕께서는 그를 시험삼아 보내 보십시오.”
양의는 직접 왕의 명을 받고 진나라로 가서 진왕秦王(소양왕昭襄王)에게 글을 올렸다.
“대왕이 영읍을 얻어 땅을 넓히자 제후들이 모두 축하하고 있습니다.
저희 나라 임금께서도 역시 은근히 이를 축하하여 감히 모른 체 편히 있을 수 없어, 신하를 보내 선물을 올리게 하였지만 세 번이나 대왕의 궁정 앞에 이르러 사신을 통과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사신이 만약 죄가 없다면 원하옵건대 대왕께서는 그 기쁨을 끊지 말아 주시고, 만약 죄가 있다면 원컨대 그 벌을 기다리겠습니다.”
“내가 조나라에 시키는 모든 일을 대소大小에 관계없이 다 들어 준다면 서폐書幣를 받을 것이요, 만약 내 말을 따르지 않겠다면 사자는 돌아가라.”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바로 대왕의 명을 받들어 모시기 위해서인데, 어찌 감히 어렵게 여기겠습니까?
대왕께서 명령하시면 즉시 받들어 행하겠으니,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리하여 진왕은 조의 사자를 접견하고 말하였다.
“당신 나라의 조표趙豹와 평원군平原君은 자주 나를 우롱하였소.
조나라가 이 두 사람을 죽여준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죽여주지 않는다면 지금 곧 제후의 군대를 이끌고 한단邯鄲 성 아래에서 명을 기다리겠소.”
“조표와 평원군은 우리 임금의 모제母弟로 마치 대왕의 엽양군葉陽君‧경양군涇陽君과 같습니다.
대왕께서는 효孝로써 나라를 다스린다고 천하에 이름이 나 있어서 옷은 그 몸에 맞게 해 주며, 음식도 그 입에 맞게 해주어 어느 것 하나도 섭양군이나 경양군에게 나눠주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섭양군과 경양군의 수레‧말‧의복은 한결같이 대왕의 거마車馬 의복과 같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제가 듣기에 ‘둥지가 엎어져 알이 깨진[복소훼란覆巢毁卵]’ 근처에는 봉황이 찾아들지 아니하며, ‘짐승의 태胎가 상하여 새끼가 죽은[고태분요刳胎焚夭]’ 옆에는 기린이 이르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지금 제가 대왕의 명령을 받들고 저희 나라 임금께 보고하면 저희 대왕은 두려워 감히 실행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조표나 평원군과 같은 입장의 섭양군‧경양군이 상심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 둘로 하여금 더 이상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게만 해 주오.”
“저희 임금이 모제母弟조차 잘 가르치지 못하여 대국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 청컨대 축출하여 더 이상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여 대국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진왕은 기뻐하여 폐백을 받아 주고, 양의를 후하게 대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