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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國策(1)

전국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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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1027~B.C.256)의 무왕武王(B.C.1600?~B.C.1028)의 한 후, 도읍을 호경鎬京(지금의 섬서성陝西省 장안현長安縣 서쪽)에 정하고 발전을 거듭하다가 뒤에 이왕夷王여왕厲王 때에 이르러 서융西戎 등 서방 신흥 세력에 의해 크게 위축되었다. 특히 유왕幽王 때에는 소위 ‘포사褒姒’라는 여자의 일로 인해 끝내 나라를 망치고 만다. 역사적으로 이때까지를 서주西周(B.C.1027~B.C.771)라 일컫는다.
이에 포사의 아버지 신후申侯와 그의 연합세력인 견융족犬戎族에 의해 호경鎬京이 함락되고, 유왕이 여산驪山에서 추살追殺당하자, 여러 신하들은 태자였던 의구宜臼를 세워 왕으로 삼고, 이듬해 동쪽의 낙읍洛邑(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낙양시洛陽市)으로 수도를 옮겨 주실周室의 명맥을 잇게 된다. 이가 곧 평왕平王이며, 이때부터 주실의 완전 멸망까지를 동주東周(B.C.770~B.C.256)라 하는데, 이는 낙읍洛邑의 위치가 호경鎬京보다 동쪽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동주東周 시기부터는 주실周室은 겨우 낙읍 주위에만 통치권이 미쳐 명목상의 천자天子일 뿐, 각 제후국諸侯國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하니, 곧 춘추시대春秋時代(B.C.770~B.C.475)에는 춘추오패春秋五霸에 의해서, 전국시대戰國時代(B.C.475~B.C.222)에는 전국칠웅戰國七雄에 의해서 좌지우지左之右之당하는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이조차도 전국 말기에 이르면 다시 양분兩分된다. 즉, 고왕考王 때에 그의 동생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공현鞏縣)에 보내어, 뒤에 하남河南 환공桓公으로 추존追尊하였다. 그러다가 위공威公을 지나 혜공惠公 때에 자신의 아들 을 정식으로 땅에 봉하면서 ‘동주東周’라 부르게 하였다. 그리고 혜공 자신은 ‘서주西周’라 칭하였고, 동주에 가 있던 아들 반이 죽자 그의 시호 역시 혜공惠公이라 하고, 반의 아들 소문군昭文君으로 하여금 뒤를 잇도록 하였다. 이때 마침 나라와 나라는 그 사이를 점령하여 지리적으로 분리시키고 만다. 왕은 비록 동주에 있었지만 ‘왕군王君’이라 할 때에는 동서왕東西王을 합하여 부르는 말이다. 난왕赧王(난왕) 때에 이르러서는 왕은 다시 서주西周, 즉 낙읍洛邑에 머물게 된다. 따라서 이 《전국책戰國策》의 ‘동주’‧‘서주’는 전국 말기의 동주‧서주를 일컫는 말이며, 이 동주는 B.C.249년, 나라에게 완전히 망하게 된다.(鮑彪 《포씨전국책주鮑氏戰國策注》)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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