之在
, 與諸博士
의조議宗廟事, 引據《
한서漢書》, 博士笑曰:
위수收便忿怒, 都不復言, 取《
위현성전傳》, 擲之而起。
세간의 유학자儒學者들은 여러 책들을 섭렵하는 것이 아니라, 경서經書와 위서緯書 이외에는 의소류義疏類의 주석서를 읽을 뿐이다.
내가 처음 업鄴에 들어가서 박릉博陵 사람 최문언崔文彦과 교유했는데, 언젠가 《왕찬집王粲集》가운데서 정현鄭玄의 《상서주尙書注》를 힐난하였던 일을 두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최문언崔文彦이 여러 유학자들에게 이 얘기를 옮겨 전하였는데, 막 입을 떼자마자 〈어떤 유학자가〉 일찌감치 배척하는 태도를 드러내 보이며 말하였다.
“문집文集에는 시詩, 부賦와 함께 명銘, 뇌誄가 있을 뿐인데 경서를 논하는 일이 어찌 당當키나 하겠습니까?
더구나 선유先儒 가운데 왕찬王粲이란 자가 있었다는 말은 듣지를 못하였습니다.”
최문언崔文彦은 웃어버리고 물러나왔을 뿐, 끝내 그에게 《왕찬집王粲集》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위수魏收가 의조議曹에 있을 때 여러 박사들과 함께 종묘의 일을 의논하다가 《한서漢書》를 근거로 인용하자 박사들이 웃으며 말하였다.
“《한서漢書》가 경학經學을 논증할 수 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군요.”
위수魏收가 크게 분노하여 아무것도 다시는 말하지 않고 〈위현성전韋玄成傳〉을 가져다가 던져주고는 일어나버렸다.
박사들이 밤새 함께 이를 찾아보고서는 날이 밝자 그제야 사죄하러 와서 말하였다.
“위현성韋玄成에게 이만 한 학문이 있었을 줄이야 짐작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