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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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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귀동냥한 學問의 誤謬
19. 귀동냥한 學問의 誤謬
談說製文, 援引古昔, 必須, 勿信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지음에 옛적의 사례를 인용하려면 반드시 직접 눈으로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니 귀로 전해들은 얘기를 믿어서는 안 된다.
江南閒, 士大夫或不學問, 羞爲, , 强事飾辭:
강남江南의 항간에서는 사대부士大夫들이 간혹 학문을 하지 않고서, 천박함을 부끄럽게 여겨 길에서 듣고 길에서 흘린 말로 억지로 낱말을 꾸미기를 일삼아,
, , 上荊州必稱陝西, , 言食則,
‘저당 잡힌다[徵質]’는 말을 ‘나라와 나라[周鄭]’라고 부르고, ‘곽란霍亂’을 가리켜 ‘박륙博陸’이라고 말하며, ‘형주荊州’로 올라가면서 꼭 〈그곳을〉 ‘섬서陝西’라고 부르고, 양도揚都로 내려가면서는 모두가 ‘해군海郡’에 간다고 하며, 밥 먹는 것은 ‘입에 풀칠한다[餬口]’고 말하고,
道錢則, 問移則, 論婚則, 及王則無不, 語劉則無不
돈은 ‘공방孔方’이라고 하며, 이주移住를 물으면 ‘초구楚丘’라 하고, 혼인을 말하면서 ‘연이宴爾’라고 하며, 왕씨王氏를 말할 적엔 중선仲宣을 일컫지 않는 때가 없고, 유씨劉氏를 말할 적엔 공간公幹을 칭하지 않는 때가 없다.
凡有一二百件, 傳相祖述, 尋問莫知原由, 時復失所。
모두 1, 2백 건을, 서로 옮기고 본받아 따라하되 캐물어보면 그 유래된 본뜻을 알지도 못하니, 이를 사용함에 번번이 그 적절한 쓰임새를 잃고야 만다.
“有之說, 故詩曰:“。” 吾有一親表, 作《七夕》詩云:“今夜吳臺鵲, 亦共往。”
장자莊子에게 “때를 타고 까치가 날아오른다.”는 말이 있으므로, 사조謝朓는 그의 에서 “까치가 치솟아 고소대姑蘇臺로 오른다.”고 한 것인데, 내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은 〈칠석七夕를 지으며 “오늘밤은 고소대姑蘇臺 까치도, 은하銀河를 메우러 같이 가겠다.”고 하였다.
云:“望平地樹如。” 故詩云:“。” 又鄴下有一人詠樹詩云:“遙望長安薺。”
나부산기羅浮山記》에 이르기를 “평평한 지상을 바라보자니 수목이 냉이[薺] 같다.”고 하였으므로, 대고戴暠에다 “장안長安의 수목이 냉이[薺] 같구나.”라고 읊었는데, 다시 업하鄴下의 어떤 사람은 〈영수詠樹에 이르기를 “멀리 장안長安의 냉이[薺]가 바라보이는구나.”라고 하였다.
又嘗見謂矜誕爲, 呼高年爲, 皆耳學之過也。
또 언젠가는 “우쭐거리며 거만하다[矜誕]”고 말해야 할 것을 “몸을 굽실거린다[夸毗]”고 말해버리거나, “연세가 높으시다[高年]”고 일러드려야 할 것을 “앞으로 누리실 해가 창창하시다[富有春秋]”라고 이르는 이도 보았거니와, 모두가 귀로 전해듣고서만 배우다 생긴 과오이다.
역주
역주1 眼學 : 직접 눈으로 보며 배우다. 《通志》 〈總序〉에 “漢字 사전은 눈으로 보며 배운다고[眼學] 하고, 押韻 사전은 귀로 들으며 배운다고 하였다.”고 하였다.[역자]
역주2 耳受 : 귀로 전해들은 얘기로 얻는 것은 직접 눈으로 보며 배운 것만 못하고, 직접 눈으로 보며 배운 것은 마음으로 깨우쳐서 아는 것만 못하다. 마음으로 깨우쳐서 알아야 눈과 귀로 받아들인 모든 것이 실제에 쓰일 것이니, 朱子가 일컫기를 “전념하여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一心兩眼] 고통스러우리만치 노력을 쏟아붓는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郝懿行]
귀로 전해들은 얘기로 얻다.[역자]
역주3 閭里 : 항간, 곧 평민들이 모여 사는 곳, 혹은 평민이다.[역자]
역주4 鄙樸 : 천하고 거칠다. 거칠고 소박하다.[역자]
역주5 道聽塗說 : 길 가다 주워듣고 길거리에서 옮겨 이야기하다. 《論語》 〈陽貨〉篇에 “길 가다 주워듣고 길거리에서 이야기한다.[道聽而塗說]”고 하였다. 《漢書》 〈藝文志〉에 “小說家의 원류는 모두 稗官에서 유래되었다 하겠으니 길거리에서 이야기하고 골목에서 말하던 것을 길 가다 주워듣고 길거리에서 이야기하던[道聽塗說] 이들이 만들어낸 것들이다.”라고 하였다.[역자]
역주6 徵質 : 저당 잡히다. 볼모 잡히다.[역자] 《說文解字》에 “質이란 물건을 서로 저당 잡히다.[贅]의 뜻이다.[質以物相贅]”라고 하였다. 생각건대 贅란 데릴사위[贅婿]에서처럼 남자가 장가들기 위해 지불할 재물이 없어서 제 몸을 처가에 볼모 잡혀두는[質] 것이다.[盧文弨]
역주7 周鄭 : 周나라와 鄭나라를 가리키는 말로, 周나라와 鄭나라가 인질을 맞바꾸었음[周鄭交質]을 가리킨다. 周나라 王室은 平王이 洛邑으로 東遷한 이후 날로 위엄이 떨어져 더 이상은 諸侯國을 관할할 방법이 없자, 周 王室과 諸侯國 간에 인질의 맞교환이라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春秋左氏傳》 隱公 3년에 따르면 “鄭 武公과 아들 莊公이 〈서로 연이어 周나라〉 平王의 집정관인 卿士가 되었다. 平王이 〈虢公에게〉 정권을 양분하여 주려는 두 마음을 품자, 鄭 莊公이 平王을 원망하니, 왕이 말하기를 ‘그런 일은 없소.’ 하였다. 이로 인해 周나라와 鄭나라가 인질을 맞바꾸었다.”고 하였다.[역자]
역주8 謂霍亂爲博陸 : 《漢書》 〈霍光傳〉에 “霍光은 자가 子孟으로, 博陸侯에 봉해졌다.”고 하였다.[趙曦明]
《漢書》 〈霍光傳〉의 顔師古 주석에 “文穎(漢末, 魏初)은 ‘博은 크다[大]는 뜻이요, 陸은 고르다[平]는 뜻이니, 그곳을 좋은 말로 일컬은 것일 뿐 이런 縣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고 하였다.[王利器]
霍亂은 설사, 구토, 복통 따위를 수반하는 급성 위장염의 일종이며, 博陸이란 霍光의 食邑을 좋게 가리킨 말이다. 여기서는 무지한 사람들이 병 이름 霍亂이 霍光에게서 유래된 것이라고 여겨 이를 博陸이라 잘못 부르기 시작했는데도 이를 생각없이 따라 말하는 識者들을 꼬집은 것이다.[역자]
역주9 下揚都言去海郡 : 海郡은 해안의 고을이다. 抱經堂本에는 ‘郡’이 ‘邦’으로 쓰여 있어, 윗글에서도 ‘揚都’를 소개하면서 “揚都로 내려가면 연해지역[海邦]으로 간다고 한다.”고 하였으나, 周法高와 王利器가 모두 ‘郡’을 따랐으므로 여기서도 ‘郡’이라 한 것이다.[역자]
역주10 餬口 : 입에 풀칠하다. 《春秋左氏傳》 昭公 7년에 “正考父의 솥에 새겨진 銘文에서는 이 솥에다 미음을 끓이고 이 솥에다 죽을 끓여 내 입에 풀칠을 하게 하라.[以餬余口]”고 하였다.[趙曦明]
역주11 孔方 : 晉代 魯褒의 〈錢神論〉에 “형과 같이 친애하며 자를 孔方이라 하였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12 楚丘 : 《春秋左氏傳》 閔公 2년에 “僖公 元年에 齊 桓公이 邢國을 夷儀 지역으로 옮기게 하고, 衛國을 楚丘 지역에 봉하였더니, 〈그 적절한 조치에〉 邢國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듯하였고, 衛國은 자기 나라가 멸망한 사실조차 잊어버렸다.”고 하였다.[趙曦明]
멸망한 衛國의 유민을 이주시킨 지역의 이름이다.[역자]
역주13 宴爾 : 《詩經》 〈邶風 谷風〉에 “신혼이 즐겁기[宴爾]가, 형제 사이인 듯할 테지요.”라고 하였다.[趙曦明]
원래는 버림받고 이혼한 여인이 옛 남편과 다시 결합하기를 바라서 부르는 노래였는데도, 지금은 오히려 신혼부부를 경하하는 말로 쓰이니 顔之推는 그 유래를 모르고 따라 말하는 예로 이 시구를 든 것이다.[역자]
역주14 仲宣 : 東漢 末年의 저명한 문학가로 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王粲(177~217)의 자이다. 曹植의 〈與楊德祖書〉에 “王仲宣은 漢水 남쪽에서 독보적인 인재였다.”라고 하였다.[역자]
역주15 公幹 : 東漢 末年의 저명한 문학가로 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劉楨(186~217)의 자이다. 《全唐詩》에 “王仲宣은 〈시의 풍격이〉 온화하고, 劉公幹은 〈시의 풍격이〉 소탈하다.”고 하였다.[역자]
역주16 施安 : 시행하다.[역자]
역주17 莊生 : 莊周를 가리킨다.[역자]
역주18 乘時鵲起 : 《太平御覽》 921에 인용된 莊子의 말에 “까치는 높은 성 허물어진 담 위로 올라 높은 느릅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틀지만 성이 무너지고 둥지가 부서지면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다. 그러므로 군자가 세상에 살 때는 때를 얻으면 개미처럼 순리를 좇지만 때를 잃으면 까치처럼 날아오른다.[失時則鵲起]”고 하였으니, 《困學紀聞》 卷10의 〈莊子逸篇〉에도 이 말이 실려 있다.[趙曦明]
《嵇康集》 1의 附錄에 실린 〈秀才答詩〉의 “물결을 타면 개미처럼 순리를 좇으나 때가 가버리면 까치처럼 날아오른다.[時逝則鵲起]”는 시구는 곧 〈莊子逸篇〉의 이 글에 근거한 것이다.[王利器]
역주19 謝朓 : 《南齊書》 〈謝朓傳〉에 의하면 “謝朓(464~499)는 字가 玄暉로, 젊어서 학문을 좋아하여 명망이 있었으며 文章이 淸麗하고, 草書에 뛰어나며 五言詩에 능하므로 沈約은 항상 말하기를 ‘200년 이래로 이만 한 시는 없었다.’고 하였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20 鵲起 : 《文選》에 실린 謝朓의 〈和伏武昌登孫權故城詩〉에 “까치는 일어나[鵲起]吳나라 山을 오르고, 봉황은 치솟아 초나라 들을 건넌다.”고 하였으니, 李善은 이에 대하여 “孫權은 처음 武昌에서 기틀을 닦아 나중에 建鄴에서 도읍을 일으켰기 때문에 吳나라 山[吳山]이요 초나라 들[楚甸]이라 한 것이다.”라고 주석하였다.[王利器]
역주21 吳臺 : 吳騫의 《拜經樓詩話》 1에 “吳臺는 《謝宣城集》과 《文選》에 모두 ‘吳山’으로 쓰여 있으므로 顔之推가 본 謝朓의 原本이 이와 같았을 것이다. 何焯(1661~ 1722)은 吳臺란 곧 姑蘇臺를 말한 것이니, 내가 《謝宣城集》을 重刊하면서 특별히 이 때문에 이를 바로 고쳤다.”고 하였다.[王利器]
역주22 塡河 : 〈오작교로〉 銀河를 메우다. 《歲華紀麗》에 인용된 《風俗通》에 “織女는 七夕이면 銀河를 건너야 하므로 까치들로 하여금 다리를 만들게 한다.”고 하였다.[盧文弨]
역주23 羅浮山記 : 羅浮라는 이름은 대개 합성어로써 ‘羅’는 ‘羅山’이고 ‘浮’는 ‘浮山’인데 이 두 산이 이어져 있어 羅浮라 일컬은 것이니, 增城과 博羅 두 縣의 경계지역에 있다.[趙曦明]
羅浮山에 대한 趙曦明의 설명은 《太平御覽》 41에서 인용된 것인데 《太平御覽》의 같은 卷에 인용된 裴淵의 〈廣州記〉에도 “〈羅山은〉 산자락이 거대한 수목들로 에워싸여 있으나 눈길 닿는 데까지 멀리 바라보자면 냉이[薺菜]가 땅에 자란 것 같다.”고 하였다.[王利器]
楊守敬의 《水經注疏》에 의하면, 《元和志》에는 袁彥伯의 〈羅浮山記〉가 소개되어 있고, 《環宇記》에는 徐道覆의 〈羅浮山記〉가 소개되어 있으나, 이 두 편의 〈記〉에는 본문에 인용된 구절이 없으므로 이 구절이 누구의 〈羅浮山記〉에서 인용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역자]
역주24 : 냉이[薺菜]이다. 줄기랄 것이 없어 잎들이 옆으로 벌어져 땅위를 덮고 있는 식물이다. 혹은 납가새이다.[역자]
역주25 戴暠(고) : 梁나라 때 사람이다.[王利器]
역주26 : 고
역주27 長安樹如薺 : 戴暠의 〈度關山詩〉에 “지금 關山에 올라 바라보자니 長安의 수목이 냉이 같구나.[長安樹如薺]”라는 구절이 있다.[盧文弨]
역주28 夸毗 : 《爾雅》 〈釋訓〉에 “夸毗란 몸을 굽실거린다는 뜻이다.”라고 하였으니, 생각건대 ‘우쭐거리며 거만하다.[矜誕]’와는 뜻이 상반된 말이다.[趙曦明]
역주29 富有春秋 : 《後漢書》 〈樂恢傳〉에 “상소를 올려 간언 드리기를 ‘폐하께서는 누리실 춘추가 창창하오시니[富有春秋] 대업을 계승하실 것입니다.’ 하였다.”라는 구절의 주석에 “春秋란 해[年]를 일컫는 말이다. 나이가 젊어서 〈누릴〉 해가 아직 많다고 말한 것이므로 창창하다[富]고 일컬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생각건대 ‘나이가 많다[高年]’와는 뜻이 상반된다.”[趙曦明]

안씨가훈(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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