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元帝嘗問之, 答曰:“此無義可求, 但臣家舊本, 以
改‘宵’爲‘肎’。” 元帝無以
之。
《한서漢書》에 “전긍田肎이 황제께 하례賀禮를 드렸다.[전긍하상田肎賀上]”는 구절이 있는데, 강남江南의 판본에서는 〈‘긍肎’자가〉 모두 ‘소宵’자로 되어 있다.
패국沛國의 유현劉顯은 경전經典을 두루 살폈던 이로 특히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 정통精通하여 양梁나라 때에는 ‘한성漢聖’이라 일컬어졌다.
유현劉顯의 아들 진臻은 가업家業을 잇기에 손색이 없었는데, 반고班固의 《한서漢書》를 읽을 때 ‘전긍田肎’으로 불렀다.
양 원제梁 元帝가 일찍이 그 이유를 묻자, “이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고 다만 신臣의 집안에 있는 구본舊本에 ‘소宵’자가 자황雌黃칠로 지워지고 ‘긍肎’자로 고쳐져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므로, 원제元帝가 그에게 캐물을 말이 없었다.
내가 강북江北으로 건너와 〈이곳의〉 판본을 보았더니 ‘긍肎’자로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