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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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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蜀才’
《易》有注, 江南學士, 遂不知是何人。
, 不言姓名, 題云:“王弼後人。” 謝炅、, 並讀數千卷書, 皆疑是,
南方以渡江後, 北間傳記, 皆名爲僞書, 不貴省讀, 故不見也。


14. ‘촉재蜀才
역경易經》에는 촉재蜀才의 주석본이 있는데, 강남江南의 학자들은 끝내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왕검王儉의 《사부목록四部目錄》에는 성명姓名을 밝히지 않은 채 그가 “왕필王弼후예後裔”라고 쓰고 있으며, 사경謝炅하후해夏侯該는 둘 다 수천 권의 책을 읽은 이들인데, 모두 이 사람이 초주譙周일 것으로 짐작하였다.
그러나 《이촉서李蜀書》, 일명一名한지서漢之書》에서는 “이요 이름은 장생長生이니, 스스로 촉재蜀才라고 일컬었다.”고 하였다.
남방南方에서는 나라 왕조王朝도강渡江해온 이래로 북방北方 지역의 전기傳記를 모두 위서僞書로 규정하여 잘 살펴 읽지 않았으므로, 이 책을 보지 못한 것이다.


역주
역주1 蜀才 : 《隋書》 〈經籍志〉에 의하면 “《周易》 10권은 蜀才가 주석하였다.”고 하였다.[趙曦明]
朱亦棟의 《群書札記》에 의하면 “생각건대, 揚雄은 《法言》 〈問明〉편에서 ‘蜀郡의 莊遵은 은거하며 자신을 감추었으나 蜀郡의 莊遵만 한 재주[蜀莊之才]야말로 드물다.’고 하였으니, 〈이 사람이〉 곧 蜀才로, 바로 嚴君平이다.”라고 하였다.[王利器]
西漢시대 蜀郡의 道家學者로 八仙 중 한 사람인 莊遵(B.C. 86~A.D. 10)은 字가 君平이다. 東漢시대 班固가 《漢書》를 지으며, 漢 明帝 劉莊의 이름을 避諱하느라 莊君平을 嚴君平으로 고쳐 쓰게 된 것이다.[역자]
역주2 王儉四部目錄 : 《南齊書》 〈王儉傳〉에 의하면 “王儉은 자가 仲寶로, 瑯邪의 臨沂 사람이다. 일념으로 학문에 매진하여 손에서 책을 놓지 않다가 祕書郞과 太子舍人을 역임하였고 祕書丞으로 급 승진하자 表를 올려 墳籍을 校刊할 것을 상주하였다. 《七略》의 체제에 따라 《七志》 40권을 지어 表를 올려 이를 바쳤으며, 《元徽四部書目》도 編定하였다.”고 하며, 《隋書》 〈經籍志〉에 의하면 “魏氏가 漢朝를 대신하면서 遺失된 서적을 모아 祕書 中外의 三閣에 소장하자, 祕書郎 鄭默이 처음 《中經》을 지었고 祕書監 荀勗(욱)은 다시 《新簿》를 지었으니, 四部로 나누어 각각 甲部, 乙部, 丙部, 丁部라 하였다. 그 뒤에 西晉시대의 遺書가 東晉시대에 자못 널리 유행하면서 남조 宋의 元嘉 8년에는 祕書監 謝靈運이 《四部目錄》을 지었으니 대개 64,582권이었으며, 元徽 元年에는 王儉이 다시 《元徽四部書目》을 지었으니 대개 15,704권이었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3 夏侯該 : 《隋書》 〈經籍志〉에 의하면 “《漢書音》 2권은 夏侯詠의 편찬이다.”라고 하였으므로, 〈該는〉 詠이 되는 것이 옳다.[趙曦明]
역주4 譙周 : 《蜀志》 〈譙周傳〉에 의하면 “譙周는 자가 允南으로, 巴西의 西充國 사람이다. 옛것을 즐겨 독실하게 배웠으며, 六經에 연구가 깊었고 書札에 특히 뛰어났다. 丞相 諸葛亮은 益州牧을 제수받았을 때 그를 勸學從事로 임명하였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5 李蜀書一名漢之書 : 《隋書》 〈經籍志〉에 의하면 “《漢之書》 10권은 常璩가 편찬하였다.”고 하였다.[趙曦明]
嚴式誨에 의하면 “一名漢之書라는 5자는 顔之推가 스스로 주석한 말로 正文 밑에 小注로 쓰여야 할 말이다. 이에 의한다면, 《李蜀書》가 곧 《漢之書》이나, 《唐書》 〈藝文志〉에는 《蜀李書》 9권이 따로 있고, 다시 《漢之書》 10권이 있으므로, 대개 그 책을 미처 보지는 못한 채 옛글에 근거하여 기록한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周法高]
朱亦棟의 《群書札記》에 의하면 “《唐書》 〈藝文志〉를 살펴보면, ‘常璩에게는 《華陽國志》 13권, 《漢之書》 10권 및 《李蜀書》 9권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漢之書》는 별다른 책인 듯하니 《李蜀書》가 아닐 것이다.”라고 하나, 《史通 古今正史》편에 의하면 “〈晉代 16國의 하나이던〉 蜀은 처음에 成이라 칭하다가 나중에 漢으로 改稱하였으므로, 〈그 마지막 군주〉 李勢 시기의 散騎常侍 常璩가 《漢書》 10권을 지었는데 〈李勢가 在位 5년 만에 멸망한〉 후에 晉나라의 祕閣에 비치하며 《蜀李書》라 고쳐 부른 것이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6 姓范名長生 : 范長生은 成漢 건국 초기의 丞相으로 嚴君平과 함께 蜀의 八仙 중 한 사람이다.[역자]
역주7 晉家 : 이 책에서는 梁 역시 梁家라 칭하고 있다. 본서 제20 〈終制〉편에 의하면 “내 나이 열아홉에 梁나라 왕조[梁家]의 난리를 겪었다.”고 하였다.[王利器]
晉나라 왕조이다.[역자]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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