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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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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同音異字는 避諱하지 않는다
33. 同音異字는 避諱하지 않는다
、緩、, 兄弟竝爲, 其父名昭, 一生不爲照字, 惟依《爾雅》火傍作召耳。
유도劉縚, 유완劉緩, 유수劉綏는 형제가 모두 이름난 인재들이었으나, 그 부친의 이름이 라서 평생 ‘’자를 쓰지 못하고 《이아爾雅》에 의거하여 ‘’傍의 ‘’자(즉 ‘’자)만 썼다.
然凡文與正諱相犯, 當自可避, 其有同音異字, 不可悉然。
그런데 글을 쓸 때 직접 휘자諱字를 범하는 것은 피해야 마땅하겠지만, 동음이자同音異字의 경우에는 다 그럴 수가 없다.
’자의 하반부(즉 ‘’)도 음이 ‘’이다.
之兒, 如不爲上;之子, 儻不作一:便是下筆卽妨,
여상呂尙의 자식들이 만약 〈과 동음이자인〉 ‘’자를 쓰지 못하고, 조일趙壹의 자식들이 가령 〈과 동음이자인〉 ‘’자를 쓰지 못한다면, 바로 붓만 대면 문제가 생기고 모든 글이 다 저촉될 것이다.
역주
역주1 劉縚(도)緩綏(수)…其父名昭 : 《南史》에 나오는 劉昭의 本傳에 아들 縚와 緩이 附記되어 있다.[沈揆]
《梁書》 〈文學傳〉에서 “劉昭는 字가 宣卿이고 平原 高唐 사람이다. 後漢의 여러 자료들을 모아 范曄의 《後漢書》를 해설하였다. 剡의 縣令으로 있다가 죽었다. 아들 縚는 字가 言明으로 三禮에 능통하였다. 大同 중에 尙書祠部郎이 되었지만 얼마 안 있어 사직하고 다시는 벼슬하지 않았다. 동생 緩은 字가 含度이다. 湘東王記室을 역임하였다. 당시 西府에는 文士들이 많이 모였는데, 緩이 그 우두머리였다. 幕府를 따라 江州로 옮겼다가 죽었다.”라 하였다. 綏는 本傳에 기록이 없는데, 이 글자는 衍文이 아닌가 싶다.[趙曦明]
《世說新語》 〈雅量〉의 注에 의하면 劉綏는 高平 사람이고, 《南史》에서 劉昭는 平原 사람이라 하였으므로 ‘綏’는 衍文이다. 《太平御覽》에 수록된 蕭光濟의 《孝子傳》에는 바로 고쳐놓았다.[鄭珍]
《世說新語》 〈賞譽 下〉의 注에 《劉氏譜》의 “劉綏는 字가 萬安이고 高平 사람이다. 祖父 奧는 太祝令이었고 부친 斌은 著作郎이었으며, 綏는 驃騎長史를 역임하였다.”라고 한 대목이 인용되어 있는데, 이 劉綏는 劉道眞(名은 寶)의 조카로서 庾翼의 사위가 되었으며, 모두 東晉시대의 인물이다. 출신지역도 합치하지 않고, 부친과 조부도 각각 다르며 시대까지 많이 떨어져 있으므로, 趙曦明과 鄭珍이 ‘綏’자를 衍字로 의심한 것은 타당하다. 이는 아마 베껴 써서 전한 사람이 실 사 변[糸]의 항렬 속에서 글자를 잘못 넣었거나 ‘緩’자와 모양이 비슷해서 잘못 썼을 것이다. 沈揆는 劉綏에 관해 한 자도 덧붙이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본 板本에는 ‘綏’자가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이다.[王利器]
역주2 : 도
역주3 : 수
역주4 名器 : 이름이 알려진 그릇[知名之器]이란 뜻으로, 앞에 나온 “王元景 형제는 모두가 名人으로 불렸다.”의 ‘名人’과 뜻이 같다. 옛날에는 人才를 그릇[器]이라고 불렀는데, 예를 들면 ‘國器’, ‘社稷器’, ‘天下器’ 같은 것이 그것이다. 《晉書》 〈陳騫傳〉에서는 “젊은 나이에 침착하고 명민하였으니, 이러한 이름난 재능[名器]을 간직하고 있었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5 劉字之下 卽有昭音 : ‘劉’자에서, 卯의 아랫부분인 ‘釗’자가 音이 ‘昭’이다. 牟默人의 견해이다.[郝懿行]
이 이하는 음이 같은 글자[嫌名]를 피휘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劉의 下半部는 ‘釗’자인데 ‘釗’가 ‘昭’와 음이 같다고 하여 諱字로 꺼리게 되면 姓조차도 쓸 수가 없게 된다.[鄭珍]
‘劉’자의 上部는 卯, 下部는 釗인데 ‘釗’자의 음이 ‘昭’자와 꼭 같다. 同音異字를 모두 기피해야 한다면 ‘劉’자의 아랫부분 역시 ‘昭’자의 音에 저촉되므로 쓸 수가 없다는 뜻이다.[劉盼遂]
이런 식으로 피휘를 따지다 보면 ‘昭’자뿐만 아니라 姓氏인 ‘劉’자조차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釗’는 지금의 우리말 음으로 ‘쇠’, 혹은 ‘소’라고 읽지만, 중국음은 ‘zhāo’로 ‘昭’자와 음이 동일하다.[역자]
역주6 呂尙 : 《史記》 〈齊世家〉에서 “太公 呂尙은 東海 上縣 사람이다.” 하였다.[趙曦明]
역주7 趙壹 : 《後漢書》 〈趙壹傳〉에서 “趙壹은 字가 元叔이고 漢陽 西縣 사람이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8 是書皆觸也 : 劉淇의 《助字辨略》 3에서 “是書의 ‘是’자는 ‘凡’과 같다. 모든 글이 다 諱에 저촉된다는 말이다. 오늘날 ‘處處’를 ‘是處’라고 말하는데 ‘到處’라고 하는 것과 같다.”라 하였다. 李調元의 《勦說》 3에서 “모든 글이 다 諱에 저촉됨을 말한다. 글 쓸 때의 경계로 삼을 만하다.”라 하였다. 《少儀外傳》 上에 인용된 〈酬酢事變〉에서는 “書啓를 짓는 경우, 먼저 책상에 상대방의 부친과 조부 이름을 써놓고서 피한다.”라고 하였다. 이는 六朝의 오랜 습관이 이어져온 것이다.[王利器]

안씨가훈(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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