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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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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邢邵와 魏收, 그리고 沈約와 任昉
12. 邢邵와 魏收, 그리고 沈約와 任昉
邢子才、魏收俱有, 時俗, 以爲
형소邢邵위수魏收는 모두 명성이 높아서 당시 세간의 표준標準이었고 사표師表로 여겨졌다.
邢賞服沈約而輕, 魏愛慕任昉而毁沈約, 每於談讌,
〈그런데〉 형소邢邵심약沈約은 인정하였지만 임방任昉은 얕보았고, 위수魏收임방任昉은 흠모하였지만 심약沈約은 깎아내려, 늘 토의석상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얼굴을 붉혔다.
鄴下紛紜, 各有朋黨。
일대에 의견이 분분해지면서 각각의 붕당이 있게 되었다.
祖孝徵嘗謂吾曰:
조정祖珽이 일찍이 나에게 말하였다.
임방任昉심약沈約시비是非가 바로 형소邢邵위수魏收우열優劣이지요.”
역주
역주1 重名 : 높은 명성이다. 《魏書》 〈文苑傳〉에서 “楊遵彦은 〈文德論〉을 지어, 古今의 文人들이 모두들 재주를 믿고서 함부로 행동하며 경박하고 음험하다고 했는데, 오직 邢子才와 王元美, 溫子昇만은 잘 어우러진 덕의 소양의 갖추고 있다고 보았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2 準的 : 오늘날의 標準 혹은 目的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王利器]
역주3 師匠 :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큰 스승, 宗師, 師表의 뜻이다.[역자]
역주4 任昉 : 《梁書》 〈任昉傳〉에서 “任昉은 字가 彦昇이고 樂安 博昌 사람이다. 평소 글짓기를 잘했는데 특히 사실의 기록에 능하였으며, 才思가 무궁하였고 초고를 쓰고 나면 다시 고치지 않았다. 沈約은 한 시대 문학의 영수였지만 그를 깊이 존중하였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5 辭色以之 : 언쟁을 해서 얼굴이 붉어지고 귀가 달아오른다는 말이다.[王利器]
辭色은 본서 제8 〈勉學〉篇 16 주 15) 참조.[역자]
역주6 任沈之是非 乃邢魏之優劣也 : 《北齊書》 〈魏收傳〉에서 “본래 魏收는 溫子昇이나 邢邵보다는 後進으로 불렸다. 邢邵가 멀리 나가고 溫子昇이 죄를 지어 죽임을 당하고 나자, 마침내 魏收가 크게 임용되어 일시에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는데, 논의하는 자리에서 서로 헐뜯고 비난하게 되면서 각기 붕당을 갖게 되었다. 魏收는 매번 논의 때마다 邢邵의 문장을 깔보았다. 邢邵도 말하기를 ‘江南의 任昉은 文體가 본디 엉성한데, 魏收는 단지 〈그것을〉 모방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크게 표절했다.’라고 했다. 魏收는 그 말을 듣고서 말하기를 ‘그 사람은 늘 沈約의 文集 안에서 도적질을 하면서, 무슨 의도로 날더러 任昉의 글을 표절했다고 하는가!’라고 하였다. 任昉과 沈約은 둘 다 명성이 높았고, 邢邵와 魏收는 각기 선호하는 바가 있었다. 武平(570~ 576) 중에 黃門侍郞 顔之推가 두 사람의 의견을 갖고서 僕射인 祖珽에게 물어보았더니, 祖珽이 ‘邢邵와 魏收의 장단점[臧否]을 보면, 이것이 바로 任昉과 沈約의 優劣이지요.’라고 대답했다.”라 하였다. 《北史》 〈魏收傳〉과 《太平御覽》 599에 인용된 《三國典略》에도 나온다. 육조시대에는 인물이나 문장을 평가할 때, 왕왕 비평 대상의 우열을 가지고 비평자의 우열을 정하기도 했다.[王利器]

안씨가훈(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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