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醫藥에 관한 일은 오묘한 경지에 오르기가 극히 어려우므로, 너희들이 이것으로 자처하기를 권하지 않는다.
약의 성질이나 약간 알아서 조금씩 섞어 조제하여 집에서 구급용으로 쓸 수 있으면 그것으로도 훌륭한 일이다.
황보밀皇甫謐과 은중감殷仲堪이 그렇게 했던 사람들이다.
역주
역주1皇甫謐(밀) :
《晉書》 〈皇甫謐傳〉에서 “皇甫謐은 고상한 뜻을 지녀서 自號를 玄晏先生이라 하였다. 뒤에 중풍에 걸려 앓았지만 그래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皇甫謐에게 명예를 닦고 교유를 넓히기를 권하였다. 謐은 시골에 살아도 堯舜의 道를 즐길 수 있는데, 어찌 꼭 세간의 이익을 중시하며 가까이하고 분주하게 벼슬을 해야 명예가 되겠느냐고 생각하여, 〈玄守論〉을 지어서 답을 했다. 처음 寒食散을 복용했을 때 체질이 맞지 않아서, 늘 기운이 빠져 몸을 가누지 못했다.”라 하였다. 《隋書》 〈經籍志〉에서 “皇甫謐과 曹歙(흡)의 《論寒食散方》 2권은 亡失되었다.”라 하였다.[趙曦明] 《唐書》 〈藝文志〉에 皇甫謐의 《黃帝三部鍼經》 12권이 들어 있다.[王利器]
역주2殷仲堪 :
《晉書》 〈殷仲堪傳〉에서 “仲堪은 陳留 사람이다. 부친이 병을 앓은 지 여러 해가 되자 옷은 띠를 풀어 벗지도 못하고서 몸소 의술을 배워서 그 精妙한 경지까지 이르렀는데, 약을 들고 뿌리다가 마침내 한쪽 눈을 실명하고 말았다. 초상을 치르면서 슬픔으로 몸이 상하였으며, 효성으로 널리 알려졌다.”라 하였다.[趙曦明] 《隋書》 〈經籍志〉에 “梁代 《殷荊州要方》 1권은 殷仲堪이 지었는데, 亡失되었다.”라 하였다.[趙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