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제安帝時, 여남汝南설포薛包맹상孟嘗, 好學篤行, 喪母, 以至孝聞。
及父娶後妻而憎설포包, 分出之, 설포包日夜號泣, 不能去,
설포包不能止, 乃中分其財, 奴婢
其老者, 曰:‘與我共事久, 若不能使也。’
器物取其朽敗者, 曰:‘我素所
食, 身口所安也。’
“안제安帝 때 여남汝南 사람 설포薛包(字는 맹상孟嘗)는 배우기를 좋아하고 행실이 독실했는데, 모친이 돌아가시면서 지극한 효성으로 알려졌다.
아버지가 후처를 얻더니 설포薛包를 미워하여 분가시켜 내보내자, 설포薛包는 밤낮으로 소리쳐 울며 떠나지를 못하였다.
몽둥이로 때리기까지 하자 하는 수 없이 집 밖에다 움막을 짓고서, 아침이면 들어와 물을 뿌리고 〈집안을〉 쓸었다.
아버지가 노하여 그를 다시 쫓아내자 이문里門 밖에다 움막을 짓고서, 아침저녁 문안드리는 일을 〈끝내〉 그만두지 않았다.
〈그러기를〉 1년이 넘어가자 부모가 부끄러워하여 그를 돌아오게 하였다.
뒤에 6년간 복상服喪을 하였는데, 상례의 규정 이상으로 애도하였다.
그러고 나자 아우의 아들이 따로 살겠다고 재산을 나누어줄 것을 요구하였다.
설포薛包가 말릴 수가 없어 재산을 반으로 나누었는데, 노비는 그중 늙은이들만 자신이 데려가면서 ‘나와 함께 일한 지가 오래되어 너는 부릴 수가 없다.’라 하였고,
밭과 집은 거칠고 낡은 것만 가지면서 ‘내가 젊을 때에 개간하고 수리한 것이라 내 마음에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기물은 썩고 망가진 것만 가지면서 ‘내가 평소에 사용하고 밥해 먹던 것이라 몸과 입에 편하다.’라고 하였다.
아우의 아들은 여러 차례 파산을 했는데 그때마다 다시 베풀어주곤 하였다.
건광建光 연간에 〈황제께서〉 관용 수레로 특별히 부르시어 〈도성에〉 갔더니 시중侍中의 벼슬을 내리셨다.
설포薛包는 성격이 조용하고 욕심이 없어서, 병을 핑계로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서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니, 〈황제는 벼슬을 거두지 않고〉 특별 장기휴가를 하사하는 조서를 내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