顔氏之先, 本乎鄒、魯, 或分入齊, 世以
爲業, 遍在書記。
仲尼門徒,
,
。秦、漢、魏、晉, 下逮齊、梁, 未有用兵以取達者。春秋世,
、
、
、
之徒, 皆一鬭夫耳。
齊有
, 趙有
, 漢末有
, 宋有
, 並處將軍之任, 竟以顚覆。
以黨楚王受誅,
以據武威見殺, 得姓已來, 無
者, 唯此二人, 皆罹禍敗。
亂離,
, 雖無
, 或聚徒衆, 違棄素業, 徼倖戰功。
吾見今世士大夫, 纔有
, 便倚賴之, 不能被甲執兵, 以衛
,
안씨顔氏 선조들은 본디 추로鄒魯 지역에서 살다가 일부는 나뉘어 제齊 지역으로 들어가서, 대대로 유가儒家의 올바른 도리를 가업으로 삼고 살아왔음이 각종 기록에 두루 나와 있다.
공자孔子의 문인門人으로 승당升堂한 이가 72인인데 안씨顔氏가 그중에 여덟이며, 진秦, 한漢, 위魏, 진晉에서 제齊, 양梁에 이르기까지 용병用兵으로 현달한 이는 없었다. 춘추시대에 안고顔高, 안명顔鳴, 안식顔息, 안우顔羽 등은 모두 일개 무사武士였을 뿐이다.
제齊나라 때 안탁취顔涿聚, 조趙나라 때 안취顔冣, 한말漢末에 안량顔良, 송대宋代에 안연지顔延之가 모두 장군將軍의 직책에 있었으나 결국은 패망하고 말았다.
한대漢代에 낭郎이었던 안사顔駟는 스스로 무예를 좋아한다고 하였지만 더 이상의 사적은 남아 있지 않다.
안충顔忠은 초왕楚王과 한패가 되었다가 처형되었고, 안준顔俊은 무위武威에서 거병擧兵하였다가 죽임을 당했는데, 득성得姓한 이래로 깨끗한 지조를 못 가진 사람은 오직 이 두 사람뿐이었으며, 모두가 화禍을 당해 패망했다.
근래 난리 중에 사대부들이 무예도 없으면서, 간혹 군중을 모아 본래 하던 일을 그만두고 요행으로 전공戰功을 얻기도 하였다.
나는 몸이 약한 데다가 선대先代를 생각하여 이에 대해서는 마음을 접었으니, 자손들은 유념하도록 하라.
공자孔子는 힘이 성문의 빗장을 들어 올릴 정도였으나 역사力士로 알려지지 않았으니, 이것이 성인聖人이라는 증거이다.
내가 요즘 사대부들을 보면 무예가 조금만 있어도 그것을 믿고 의지하지만, 갑옷 입고 무기를 들고 나가 사직社稷을 지킬 만한 능력은 안 된다.
단지 신분을 감추고서 무인武人 차림으로 나다니면서 멋대로 주먹이나 쓰고 완력을 휘두르다가, 크게는 생사生死의 위험에 빠지고 작게는 치욕을 당하는 경우에도 끝내 이를 모면해내는 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