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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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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의 葬禮와 祭祀는 간소하게
今年老疾侵, , 豈求備禮乎?
一日, 沐浴而已, 不勞, 以常衣。
先夫人之時, 屬世荒饉, , 兄弟幼弱, 棺器率薄,
吾當松棺二寸, 衣帽已外, 一不得自隨, 上唯施
至如之屬, 並須停省, , 故不得營, , 彌在言外。
載以, 而下,
若懼拜掃不知, 當築一堵低牆於左右前後, 隨爲私記耳。
勿設枕几, , 唯下白粥、淸水、乾棗, 不得有酒、肉、餅、果之祭。
親友來者, 一皆拒之。
汝曹若違吾心, 有加先妣, 則陷父不孝, 在汝安乎?
, 隨力所至, 勿刳竭, 使凍餒也。
四時祭祀, 周、孔所敎, 欲人, 不忘孝道也,
求諸內典, 則無益焉,
若報罔極之德, , 有時, 及, 望於汝也。


3. 나의 장례葬禮제사祭祀는 간소하게
올해 노환老患이 닥쳐 혹 갑자기 죽는다 하여도 어찌 예를 갖추어 장사 치르기를 바라겠느냐?
어느 날 숨을 거두면 목욕이나 해주면 그만이니, 초혼복백招魂復魄을 하느라 애쓰지 말고 은 평상복으로 하여라.
너희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여러 해 기근이 들어 집안 형편이 몹시 궁핍했고 형제들이 어려서, 기물器物이 모두 소홀했으며 무덤 안에도 벽돌을 쓰지 못했다.
나는 두께 두 치의 소나무 관과 옷과 모자 외에 한 가지라도 덧붙여서는 안 되며, 관 바닥에는 오직 칠성판七星板만 두도록 하라.
밀랍으로 만든 노아弩牙나, 옥 돼지, 주석 인형 같은 것들은 다 그만두어야 하고, 곡식 항아리나 명기明器 등도 마련해서는 안 되며, 비문碑文이나 명정銘旌 따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영구 수레에 실어다가 흙을 깔고 내려놓을 것이며, 평평하게 하고 봉분은 하지 말라.
만약 성묘 때 묘역을 못 찾을까 걱정되면, 전후좌우에 나지막한 담이나 하나 쌓아두고 거기에 개별적인 표시나 해놓으면 그만이다.
영연靈筵에는 베개와 안석을 두지 말고, 삭망朔望소상小祥대상大祥제사祭祀담제禫祭 때에는 오로지 흰죽과 맑은 물, 마른 대추만 올리고, 술이나 고기, 떡이나 과일 같은 제수용품은 올려서는 안 된다.
친구들이 와서 술을 부어 추도하겠다고 하는 경우 모두 다 거절하여라.
너희들이 만약 내 뜻을 어기고 돌아가신 너희 할머니보다 더 후하게 한다면, 너희 아비를 불효에 빠뜨리는 것이니 너희 입장에서도 편안하겠느냐?
부처님께 공덕功德 바치는 일은 힘 닿는 데까지만 하되, 생활비를 축내어 〈식구들을〉 춥고 배고프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사시四時의 제사는 주공周公공자孔子께서 가르치신 것으로서, 사람들이 그 어버이의 은덕을 잊어버리지 않고 효도를 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만,
불경佛經에 비추어보면 무익한 것이고 살생까지 해서 한다면 도리어 죄를 더 늘리는 것이다.
만약 망극한 은덕에 보답하고 싶고 계절에 따라 그립고 슬퍼진다면, 가끔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고 7월 15일에 우란분재盂蘭盆齋나 올려줄 것을 너희에게 바란다.


역주
역주1 儻(당)然 : ‘만약, 혹시’의 뜻이다.[역자]
역주2 奄忽 : 앞에 나온 奄然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죽는다는 뜻이다.[역자]
역주3 放臂(비) : 팔을 놓다. 여기서는 눈을 감는다고 하는 표현처럼 죽음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역자]
역주4 復(복)魄 : 《儀禮》 〈士喪禮〉에서 “復者 한 사람”이라 하였고, 注에서 “復者란 魂을 부르고 魄을 되돌아오게 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다.”라 하였다.[趙曦明]
《禮記》 〈喪大記〉의 注에서 “復은 魂을 부르고 魄을 되돌아오게 하는 것이다.……숨이 끊어지면 哭을 하고, 哭을 하면서 復을 하는데, 復을 해도 소생하지 않으면 죽은 것으로 볼 수 있다.”라 했다. 《牟子》 〈理惑篇〉에서는 “사람이 죽음에 임하면, 그 집에서는 지붕에 올라가 그를 부른다. 죽었는데 또 누구를 부르는 것일까? 어떤 이는 그의 魂魄을 부른다고 한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5 殮(염) : 歛(斂)과 같다. 시신에 옷을 입히는 것을 小歛이라 하고, 시신을 入棺하는 것을 大歛이라 한다. 《儀禮》 〈士喪禮〉와 《禮記》 〈喪大記〉 참조.[王利器]
역주6 棄背 : 王羲之의 편지에 “周嫂가 돌아가시니[棄背] 마음이 찢어지는구나.”라 했다. 《文選》 〈寡婦賦〉에서 “낭군님 문득 돌아가시다.[捐背]”라 하였고, 李周翰의 注에서 “낭군님이 문득 나를 버리고 가셨다.[棄捐我而逝矣]”라 했다. 捐(연)背도 棄背와 같은 뜻이다.[王利器]
돌아가시다. 내버리고 등진다는 의미로서, 대개 尊屬의 죽음을 나타낸다.[역자]
역주7 家塗空迫 : 집안 살림이 쪼들리다. 可塗는 집안 형편을 뜻한다.[역자]
역주8 藏內無塼 : 《後漢書》 〈趙岐傳〉에서 “먼저 직접 壽藏을 만들었다.”라 하였고, 注에서 “壽藏은 무덤의 구덩이를 말한다. 壽라고 칭하는 것은 오래간다는 뜻을 취한 것으로, 壽宮이나 壽器와 같은 것이다.”라고 했다. 《新唐書》 〈姚崇(요숭)傳〉에서는 “스스로 萬安山 남쪽 들판에 壽藏을 만들었고, ……묏자리 이름을 寂居穴이라 하고 무덤은 復眞堂이라 하였으며, 가운데 흙을 깎아서 床을 만든 것을 化臺라 하여, 돌에 새겨서 후세에 고하였다.”라 했다.[王利器]
무덤 안에는 벽돌이 없다. 즉 무덤을 조성하면서 벽돌을 쓰지 못했다는 뜻이다.[역자]
역주9 : 바닥을 말한다. 여기서는 棺의 바닥을 가리킨다.[역자]
역주10 七星板 : 옛날 관 속에 사용하여 시신을 누이는 판을 말한다. 《通典》 85 〈大斂〉에서 《大唐元陵儀》의 注를 인용하여 “梓宮 안에 七星板을 올려놓고, 판 아래에 두어야 할 것들을 모두 먼저 설치한 다음, 판 위에다가 자리 요를 더한다.”라고 했으니, 七星板의 규정은 위로는 봉건 제왕으로부터 아래로는 서민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사용할 수 있었다. 明 彭濱의 《重刻申閣老校正朱文公家禮正衡》 4에서는 “칠성판은 널판 하나를 사용하며, 그 길이와 넓이는 관 속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하고, 일곱 구멍을 뚫었다.”라고 했다.[王利器]
역주11 蠟(납)弩牙玉豚錫人 : 《異苑》 2에서 “弘農의 楊子陽이 땅 속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서 파보니 옥으로 만든 새끼 돼지[玉㹠]가 나왔는데, 길이는 한 자가 넘었다.”라 하였고, 《幽明錄》에서 “餘杭 사람 沈縱은 평소 집이 가난했는데, 아버지와 함께 산에 들어갔다가 옥으로 만든 새끼 돼지[玉㹠]를 얻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南北朝시대에 옥 돼지가 이미 자주 출현했다.[王利器]
밀랍으로 만든 弩牙와 옥으로 만든 돼지, 그리고 주석으로 만든 인형으로, 모두 장례에서 亡者와 함께 묻는 실물을 축소한 모양의 副葬品이다. 弩牙는 쇠뇌의 시위를 거는 발사 장치이다.[역자]
역주12 糧甖(앵)明器 : 《禮記》 〈雜記 上〉에서 “곡식을 싣는 것[載粻]을 有子는 ‘禮가 아니다.’라고 했다.” 하였고, 注에서 “粻은 양식이니, 죽은 자는 양식을 먹지 않는다[死者不食糧]는 말이다.”라 했다. 또 “독과 단지와 대그릇과 시렁[甕甒筲衡]을 棺衣 사이에 채운 뒤 다리 없는 상이 들어간다.”라 하였고, 注에서 “이것은 장례 때 묻는 물건을 말한다. 衡은 桁이 되어야 하는데, 이걸로 독과 단지[甕甒] 등속을 시렁에 얹는다.”라 했다. 〈檀弓 上〉에서는 “孔子께서 ‘장례용 竹器는 산 사람이 쓸 수가 없고, 질그릇은 윤기가 없고 나무그릇은 깎은 무늬가 없으며, 琴瑟은 줄을 펼쳐놓았으니 탈 수가 없고, 竽笙은 갖추어놓았지만 소리가 어울리지 않고, 鐘磬은 있지만 거는 틀이 없다. 그것을 明器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을 神明으로 대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하였다. 또 〈檀弓 下〉에서는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明器를 만든 사람은 喪道를 아는 사람이니, 기물을 갖추었으나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셨다. 진흙으로 만든 수레나 짚으로 만든 인형은 예로부터 있었다. 孔子께서는 짚 인형을 만든 사람은 훌륭하다고 하시고, 나무인형을 만든 사람은 어질지 않다고 하셨다.”라고 했다.[盧文弨]
곡식 항아리와 副葬品을 말한다.[역자]
역주13 碑誌旒旐(유조) : 《釋名》에서 “碑는 덮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본래 장례를 할 때 설치하는 것으로, 그것을 도르래에 매어 줄로 그 위를 덮어서 관을 끌어당긴다. 신하나 자식이 임금이나 아버지의 공적과 훌륭함을 그 위에 썼는데, 후대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하면서, 까닭 없이[無故] 도로 어귀 잘 보이는 곳에 세우고는, 그 글에 이름 붙여서 碑라고 일컬었다.”라 했다. 旒旐는 옛날의 銘旌(명정)이다. 旒는 旐(조)가 드리워진 것이다. 《世說新語》 〈排調〉에서 “桓玄이 殷仲堪과 함께 了語를 짓기로 하였는데, 桓玄이 ‘흰 천으로 관을 묶고 영정[旒旐]을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하였다. 또 생각건대, 《釋名》에 ‘無故’라는 말은 ‘物故’라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盧文弨]
《太平御覽》 589에 인용된 《釋名》에는 ‘無’자가 없다.[王利器]
碑誌는 비문에 새기는 글이고, 旒旐는 명정이다.[역자]
역주14 鱉(별)甲車 : 상여를 싣는 수레의 일종으로, 지붕이 자라 껍질처럼 생긴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역자]
역주15 襯(친)土 : 흙을 깔다.[역자]
역주16 平地無墳 : 《禮記》 〈檀弓 上〉에서 “옛날에 묘는 만들었어도 봉분은 하지 않았다.[墓而不墳]”라 하였고, 注에서 “묘를 兆域이라 하는데, 오늘날의 封塋(영)이다. 옛날이란 殷代를 말하고, 흙이 높은 것을 墳이라 한다.”라고 했다.[王利器]
평평하게 하고 봉분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역자]
역주17 兆域 : 墳墓의 경계이다. 《周禮》 〈春官〉에서 “冢(총)人은 郡王의 묘지[公墓] 땅을 관장하는데, 그 묘역[兆域]을 구분하여 그림을 만들어낸다.”라 했다.[王利器]
역주18 靈筵 : 죽은 이의 혼령을 위해 차려놓은 안석과 자리이다. 靈床, 儀床이라고도 한다.[王利器]
역주19 朔望祥禫(담) : 《禮記》 〈祭義〉에 朔月과 月半에 관한 글이 있는데, 바로 後世에서 말하는 朔望이다. 또 〈閒傳〉에서 “1년이 지나면 小祥이 되고, 또 1년이 지나면 大祥이 되며, 달을 사이에 두고 禫祭를 지낸다.”라고 했다.[盧文弨]
喪中에 치르는 갖가지의 祭祀를 뜻한다. 초하루와 보름날의 제사, 돌아가시고 1년이 되는 小祥과 2년이 되는 大祥에 올리는 제사, 그리고 돌아가시고 27개월 되는 달에 올리는 禫祭를 통칭한 것이다.[역자]
역주20 餟酹(체뢰) : 땅에 술을 부으며 올리는 추도를 말한다.[역자]
역주21 內典功德 : 佛經을 외는 일과 같은 佛敎의 여러 가지 功德을 뜻한다. 당시 儒家 經典을 外典이라 하고, 佛經을 內典이라 하였다.[역자]
역주22 生資 : 요즘의 생활비이다. 元結의 〈舂(용)陵行〉에서 “그 집을 다 뒤지게 했지만, 먹고 살 것[生資]도 없었다.”라 하였고, 《資治通鑑》 238의 胡三省 注에서 “재물과 논밭은 사람이 살아가는 밑천인데[人資以生], 이를 일컬어 資産이라고 한다.”라 하였는데, ‘生資’와 뜻이 같다.[王利器]
역주23 勿死其親 : 그 양친을 죽지 않게 하다. 즉 그 어버이의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게 만든다는 뜻이다.[역자]
역주24 殺生爲之 翻增罪累 : 본서 제16 〈歸心〉편 11에서 “살생을 좋아하는 사람은 죽음에 임하여 應報의 증험이 나타나고, 자손들은 재앙을 당한다.”라고 했다.[王利器]
역주25 霜露之悲 : 《禮記》 〈祭義〉에서 “서리나 이슬이 내리고 나서 군자가 그것을 밟으면 분명 슬픈 마음이 드는데, 그것이 차가워서 그런 것이 아니로다!”라 하였고, 注에서 “차가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함은, 슬프고 근심이 드는 것이 모두 시절을 느끼어 어버이를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라고 했다.[王利器]
이슬과 서리를 밟는 슬픔, 즉 계절의 변화에 따라 느끼는 어버이에 대한 그리움을 말한다.[역자]
역주26 齋供 :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리다.[역자]
역주27 七月半盂蘭盆(우란분) : 《盂蘭盆經》에서 “目蓮은 그의 돌아가신 어머니가 餓鬼들 사이에 살아 계신 것을 보고 발우에다 밥을 가득 담아 어머니께 먹였는데, 입으로 채 들어가기도 전에 불이 붙어서 벌건 숯이 되니 결국 먹을 수가 없었다. 目蓮은 크게 울부짖으며 달려 돌아와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어머니는 죄가 중하여, 너 혼자서는 어찌할 수가 없다. 마땅히 시방 여러 스님들의 위엄과 신통력이 있어야 하는데, 7월 15일이 되면 액난 중에 계시는 7대의 부모와 조상님을 위하여, 온갖 맛의 음식과 다섯 가지 과일을 동이에다 담아서 시방의 大德 스님들께 공양하라.’고 하셨다. 부처님은 모든 스님들에게 명을 내리기를, 다들 施主가 되어서 7대 부모를 위해 축원을 하고, 참선을 하고 뜻을 정한 다음에 음식을 받게 하였다. 이때 目蓮의 어머니는 일체 餓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目蓮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미래 세상의 佛弟子들로서 孝順을 행한 자 역시 마땅히 盂蘭盆을 받들어 공양을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자, 부처님께서 ‘아주 훌륭하구나.’라고 말씀하셨다.”라 하였다. 後人들은 이를 바탕으로 화려하게 장식을 해서, 나무에 새기고 대나무를 쪼개고 밀랍을 먹여, 오색 무늬를 펼쳐 꽃잎 모양을 만들어서 극도로 교묘하게 꾸미게 되었다.[盧文弨]
盂蘭盆은 본래 梵語 Ullambana의 音譯으로서 ‘거꾸로 매달리다.’의 뜻이다. 夏安居의 마지막 날인 음력 7월 보름날, 돌아가신 부모가 이러한 고통 속에 있는 것을 구제하기 위해 스님들께 供養하는 것을 盂蘭盆齋라고 한다.[역자]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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