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不
,
, 駕
,
, 坐
, 憑
, 列
於左右, 從容出入, 望若神仙。
及
之後,
遷革,
, 非復
之親;
秉權, 不見昔時之黨。
自
已來, 諸見俘虜。雖百世小人, 知讀《
논어論語》、《
효경孝經》者, 尙爲人師;雖千載
, 不曉
者, 莫不耕田養馬。
양梁나라의 전성시기에 유한有閑 귀족자제貴族子弟 가운데는 학문이라고는 갖추지 못한 이들이 많아서, 속담에 “수레에 오르다 떨어지지만 않으면 곧 저작랑著作郞이요, 〈편지글에〉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치레만 할 줄 알면 곧 비서랑秘書郞이다.”라고 할 지경이었다.
향내를 옷에 쐬고 수염을 말끔히 민 다음 분 바르고 연지를 찍지 않은 이가 없으니, 차양이 긴 편안한 수레를 타고 굽 높은 나막신을 신은 채 바둑판무늬를 짜 넣은 비단방석에 앉아 온갖 색실을 섞어 짠 허리받이에 기대고는 볼 만한 기물을 좌우에 늘어놓고 여유롭게 드나드는 모양은, 바라보자면 신선神仙인가 싶었다.
명경과明經科에 급제를 하고자 사람을 사서 답안을 쓰고, 고관高官들의 연회에 참가하면 남의 손을 빌어 시를 지었다.
〈후경侯景의〉 난리가 벌어진 이후에 조정에 변혁이 일어나자 전형관銓衡官이나 추천관推薦官들이 전에 이를 맡았던 친척도 아니고, 요직에서 권력을 쥔 사람들 가운데서도 옛날 같은 당파의 무리들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제 한 몸에서 구하려 한들 얻을 것이 없고, 세상에 베풀고자 한들 쓸 만한 것이 없었다.
겉으로 거친 옷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속에도 옥이 없고, 겉가죽을 잃어버리자 속 내용도 다 드러나버려서, 외발로 서 있는 모양이 가지 마른 나무 등걸 같고, 주저앉은 모양이 물 마른 강바닥인 듯하니, 실의하여 전란 중에 떠돌다 산골짜기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학문學問과 기예技藝를 갖추고서야 어느 곳에서든 안주할 수가 있는 법이다.
난리통 이래 많은 사람들이 포로가 되었는데 비록 대대손손 신분이 미천하였더라도 《논어論語》와 《효경孝經》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면 오히려 남의 스승이 되었으나, 장구한 세월 벼슬한 집안이었더라도 책을 읽을 줄 모르면 농사나 짓고 말이나 치게 되었다.
이것으로 보건대 어찌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약 항상 수백 권의 책을 간직할 수만 있다면 천년토록 미천한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