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有揚雄著《方言》,
, 然皆考名物之同異, 不顯
之是非也。
共以帝王都邑, 參校方俗, 考覈古今, 爲之折衷。
北方山川深厚, 其音沈濁而
, 得其
, 其辭多古語。
易服而與之談, 南方士庶, 數言可辯; 隔垣而聽其語, 北方朝野, 終日難分。
而南染吳、越, 北雜夷虜, 皆有深弊, 不可具論。
其謬失輕微者:則南人以錢爲涎, 以石爲射, 以賤爲羨,
以是爲舐; 北人以庶爲戍, 以如爲儒,
, 以洽爲狎。
吾家兒女, 雖在孩稚, 便漸督正之, 一言
, 以爲己罪矣。
1. 음운학音韻學의 역사와 남북南北 음운의 차이
무릇 중국 각지에 사는 사람들의 언어言語가 같지 않음은, 사람들이 생긴 이래 늘 그러했음이 분명하다.
《춘추春秋》에서 제齊나라 말로 된 해석의 티가 나고, 〈이소離騷〉가 초楚나라 어휘로 쓰인 고전으로 여겨졌는데, 이것은 아마도 언어 차이가 비교적 뚜렷해지는 초기 단계일 것이다.
이후 양웅揚雄이 《방언方言》을 저술하자, 이 방면의 논의가 대략 갖추어지기는 하였으나, 대부분 사물事物을 일컫는 이름의 차이만 살피고 있을 뿐, 소리 내어 읽을 때의 옳고 그름은 드러내지 않았다.
정현鄭玄이 육경六經에 주注를 달고, 고유高誘가 《여씨춘추呂氏春秋》, 《회남자淮南子》를 풀이하며, 허신許愼이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짓고, 유희劉熹가 《석명釋名》을 엮으면서부터 비로소 발음상황을 묘술描述하거나 비슷한 독음자讀音字로 환치시키는 방식으로 글자의 발음을 검증하였다.
그러나 고대의 언어는 지금의 언어와 차이가 많아서 그 사이의 개구음開口音과 합구음合口音, 청음淸音과 탁음濁音의 변화를 여전히 밝힐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입 안으로 말한다[내언內言]’느니, ‘입 바깥으로 말한다[외언外言]’느니, ‘급하게 말한다[급언急言]’느니, ‘천천히 말한다[서언徐言]’느니, ‘∼와 같이 읽는다[독약讀若]’느니 같은 주음注音 방식은 지금의 사람들에게 의혹을 가중시켜 왔다.
손숙연孫叔然이 《이아음의爾雅音義》를 처음 지었으니, 한漢나라 말엽의 사람으로서는 홀로 반절법反切法을 깨달았던 것이다.
위魏나라 때에 이르러 반절법反切法이 크게 유행하였다.
고귀향공高貴鄕公 조모曹髦(모)는 반절법反切法을 이해하지 못하여 괴이하게 여겼으나, 그 후로 음운音韻에 대한 저술이 잇달아 쏟아져 나왔는데
저마다 향토 방언의 특색을 담아 서로 비방하고 조롱하되, 손가락[지指]으로 말[마馬]을 설명하는 것처럼 〈상호간의 차이를 두고 시비를 가리며 논쟁할 뿐〉 누가 옳은지를 가리기가 어려웠다.
〈그들은〉 모두 제왕帝王이 있는 도읍都邑의 언어에다 사방의 언어습관을 비교하고 고금古今의 언어를 조사하면서 그것들을 서로 절충하였다.
이러한 주장들을 검토하며 헤아려보자면 다만 금릉金陵과 낙양洛陽의 〈표준말이〉 있을 뿐이다.
남방南方은 풍토가 온화하고 부드러워 이곳의 말소리는 낭랑하고 분명하지만 얕고 들뜬 듯한 흠이 있으며 그 말에 비속어가 많은 데 반하여,
북방北方은 산천이 깊고 두터워 그 말소리가 탁하고 어눌하지만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장점이 있으며 그 말에는 고어古語가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귀족 계층을 두고 보자면 남방의 말소리가 우월하고, 일반 백성들을 두고 보자면 북방의 말소리가 낫다.
옷을 바꾸어 입고 이야기해보더라도 남방에서는 몇 마디 말만으로 그가 사족士族인지 서민庶民인지 신분을 알아볼 수 있으나, 담을 사이에 두고 말을 들어보면 북방에서는 벼슬아치인지 농부인지 종일토록 구분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남방의 말은 이미 오吳‧월越 지역의 사투리에 물들어 있고, 북방의 말에는 이미 오랑캐의 어휘가 섞여 들어와 양자 모두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여기서 이를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
대개 그 오류 중에 가벼운 것을 예로 든다면, 남방인들은 전錢(전)을 연涎(연)이라 발음하고, 석石(석)을 사射(사)라고 발음하며, 천賤(천)을 선羨(선)이라 발음하고,
시是(시)를 지舐(지)라고 발음하며, 북방인들은 서庶(서)를 수戍(수)라고 발음하고, 여如(여)를 유儒(유)라고 발음하고, 자紫(자:[tsje])를 자姊(자:[tsjěi])라고 발음하고, 흡洽(흡)을 압狎(압)이라 발음한다.
이런 예들처럼 양쪽 지역에 오류가 아주 많다.
내가 업성鄴城으로 건너온 이래, 숙질叔姪간인 최자약崔子約‧최섬崔贍 두 사람과 형제兄弟간인 이조인李祖仁‧이울李蔚 두 사람만이 언어 연구에 힘써 적으나마 교정 작업을 수행하는 것을 보았을 뿐,
이계절李季節은 《음운결의音韻決疑》를 지었으나 때때로 착오가 있었으며, 양휴지陽休之는 《절운切韻》을 펴내었으나 아주 거칠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비록 어릴 적이라도 바른 말을 할 수 있도록 지도를 계속하여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이를 나 자신의 불찰로 여겼다.
여러 물품을 말할 때에도 책이나 기록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감히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던 일들을 너희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