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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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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가훈(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 音韻學의 역사와 南北 음운의 차이
1. 음운학音韻學의 역사와 남북南北 음운의 차이
之人, 言語不同, 生民已來, 固常然矣。
무릇 중국 각지에 사는 사람들의 언어言語가 같지 않음은, 사람들이 생긴 이래 늘 그러했음이 분명하다.
춘추春秋》에서 나라 말로 된 해석의 티가 나고, 〈이소離騷〉가 나라 어휘로 쓰인 고전으로 여겨졌는데, 이것은 아마도 언어 차이가 비교적 뚜렷해지는 초기 단계일 것이다.
後有揚雄著《方言》, , 然皆考名物之同異, 不顯之是非也。
이후 양웅揚雄이 《방언方言》을 저술하자, 이 방면의 논의가 대략 갖추어지기는 하였으나, 대부분 사물事物을 일컫는 이름의 차이만 살피고 있을 뿐, 소리 내어 읽을 때의 옳고 그름은 드러내지 않았다.
, , 許愼造《說文》, , 始有以證音字耳。
정현鄭玄육경六經를 달고, 고유高誘가 《여씨춘추呂氏春秋》, 《회남자淮南子》를 풀이하며, 허신許愼이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짓고, 유희劉熹가 《석명釋名》을 엮으면서부터 비로소 발음상황을 묘술描述하거나 비슷한 독음자讀音字로 환치시키는 방식으로 글자의 발음을 검증하였다.
而古語與今殊別, 其間, 猶未可曉,
그러나 고대의 언어는 지금의 언어와 차이가 많아서 그 사이의 개구음開口音합구음合口音, 청음淸音탁음濁音의 변화를 여전히 밝힐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입 안으로 말한다[내언內言]’느니, ‘입 바깥으로 말한다[외언外言]’느니, ‘급하게 말한다[급언急言]’느니, ‘천천히 말한다[서언徐言]’느니, ‘∼와 같이 읽는다[독약讀若]’느니 같은 주음注音 방식은 지금의 사람들에게 의혹을 가중시켜 왔다.
손숙연孫叔然이 《이아음의爾雅音義》를 처음 지었으니, 나라 말엽의 사람으로서는 홀로 반절법反切法을 깨달았던 것이다.
至於魏世, 此事大行。
나라 때에 이르러 반절법反切法이 크게 유행하였다.
고귀향공高貴鄕公 조모曹髦(모)는 반절법反切法을 이해하지 못하여 괴이하게 여겼으나, 그 후로 음운音韻에 대한 저술이 잇달아 쏟아져 나왔는데
各有土風, 遞相非笑, , 未知孰是。
저마다 향토 방언의 특색을 담아 서로 비방하고 조롱하되, 손가락[]으로 말[]을 설명하는 것처럼 〈상호간의 차이를 두고 시비를 가리며 논쟁할 뿐〉 누가 옳은지를 가리기가 어려웠다.
共以帝王都邑, 參校方俗, 考覈古今, 爲之折衷。
〈그들은〉 모두 제왕帝王이 있는 도읍都邑의 언어에다 사방의 언어습관을 비교하고 고금古今의 언어를 조사하면서 그것들을 서로 절충하였다.
이러한 주장들을 검토하며 헤아려보자면 다만 금릉金陵낙양洛陽의 〈표준말이〉 있을 뿐이다.
, 失在浮淺, 其辭多鄙俗;
남방南方은 풍토가 온화하고 부드러워 이곳의 말소리는 낭랑하고 분명하지만 얕고 들뜬 듯한 흠이 있으며 그 말에 비속어가 많은 데 반하여,
北方山川深厚, 其音沈濁而, 得其, 其辭多古語。
북방北方은 산천이 깊고 두터워 그 말소리가 탁하고 어눌하지만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장점이 있으며 그 말에는 고어古語가 많이 남아 있다.
君子, 南方爲優; 閭里小人, 北方爲愈。
그러나 귀족 계층을 두고 보자면 남방의 말소리가 우월하고, 일반 백성들을 두고 보자면 북방의 말소리가 낫다.
易服而與之談, 南方士庶, 數言可辯; 隔垣而聽其語, 北方朝野, 終日難分。
옷을 바꾸어 입고 이야기해보더라도 남방에서는 몇 마디 말만으로 그가 사족士族인지 서민庶民인지 신분을 알아볼 수 있으나, 담을 사이에 두고 말을 들어보면 북방에서는 벼슬아치인지 농부인지 종일토록 구분하기가 어렵다.
而南染吳、越, 北雜夷虜, 皆有深弊, 不可具論。
하지만 남방의 말은 이미 지역의 사투리에 물들어 있고, 북방의 말에는 이미 오랑캐의 어휘가 섞여 들어와 양자 모두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여기서 이를 자세히 논할 수는 없다.
其謬失輕微者:則南人以錢爲涎, 以石爲射, 以賤爲羨,
대개 그 오류 중에 가벼운 것을 예로 든다면, 남방인들은 (전)을 (연)이라 발음하고, (석)을 (사)라고 발음하며, (천)을 (선)이라 발음하고,
以是爲舐; 北人以庶爲戍, 以如爲儒, , 以洽爲狎。
(시)를 (지)라고 발음하며, 북방인들은 (서)를 (수)라고 발음하고, (여)를 (유)라고 발음하고, (자:[tsje])를 (자:[tsjěi])라고 발음하고, (흡)을 (압)이라 발음한다.
如此之例,
이런 예들처럼 양쪽 지역에 오류가 아주 많다.
내가 업성鄴城으로 건너온 이래, 숙질叔姪간인 최자약崔子約최섬崔贍 두 사람과 형제兄弟간인 이조인李祖仁이울李蔚 두 사람만이 언어 연구에 힘써 적으나마 교정 작업을 수행하는 것을 보았을 뿐,
이계절李季節은 《음운결의音韻決疑》를 지었으나 때때로 착오가 있었으며, 양휴지陽休之는 《절운切韻》을 펴내었으나 아주 거칠었다.
吾家兒女, 雖在孩稚, 便漸督正之, 一言, 以爲己罪矣。
우리 집 아이들은 비록 어릴 적이라도 바른 말을 할 수 있도록 지도를 계속하여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이를 나 자신의 불찰로 여겼다.
云爲, 未考書記者, 不敢輒名, 汝曹所知也。
여러 물품을 말할 때에도 책이나 기록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감히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던 일들을 너희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九州 : 고대 中國을 일컫던 말의 하나이다. 고래로 중국인들이 천하를 9개 지역으로 구분해오던 관습에 따른 표현으로, 《尙書》 〈禹貢〉의 기록에 의하면 九州란 徐州, 冀州, 兗州, 青州, 揚州, 荊州, 梁州, 雍州, 豫州를 가리킨다.[역자]
역주2 春秋標齊言之傳 : 《春秋公羊傳》 隱公 5년의 《公羊傳》에 “공께서는 무엇 하시려고 물고기를 보러 멀리 가시오? 얻어오려고[登來] 그리 합니다.”라는 글 밑의 注에 “登來란 得來를 말한 것이다. 得來란 齊나라 사람의 말씨이다. 제나라 사람은 ‘구한다[求得]’는 말을 ‘얻어온다[得來]’고 하는데, 그 말소리가 크고 급하다 보니 〈咽頭를 채 막지 않아 入聲 소리를 잃은 채〉 입 안에서 〈공명하는〉 소리를 낸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桓公 6년조에서도 “正月에 이 이가 왔다.[正月寔來]”는 經文 밑의 傳에도 “어찌하여 ‘이 이가 왔다[寔來]’고 하였는가? 함부로 말한 것이다. 어찌하여 함부로 말하였는가? 나한테 ‘어긋나게 굴었기[化]’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아래 注에서 “〈州國 淳于都의 제후가 魯나라의 도읍을 거쳐 가면서도 魯나라 조정에 알현치 않고〉 그냥 지나가버려 무례했던 점을 ‘어긋나게 굴었다[化]’고 한 것은 제나라 사람들의 말씨이다.”라고 하였다.[趙曦明]
‘標’는 ‘명시하다[顯出]’ 혹은 ‘標明하다’의 뜻이다.[역자]
역주3 離騷目楚詞之經 : 《史記》 〈屈原傳〉에 “근심과 번민 속에서 〈離騷〉를 지었으니, 離騷란 ‘근심을 만났다.’는 뜻이다.”라고 하였으며, 王逸의 〈離騷經序〉에서는 “經이란 徑, 곧 正道의 뜻이다. 이미 쫓겨나 떠나온 다음 마음속이 근심스럽자, 오히려 正道에 기대어 군왕에게 風諫을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생각건대, 王逸의 주장은 옳지 않다. 經자는 후인들이 첨가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離騷〉에 楚나라 사람의 말이 많다고 한 것은 예컨대, 羌자나 些자 등이 그런 것들이다.[趙曦明]
目은 ‘간주하다’ 혹은 ‘인식하다’의 뜻이다.[역자]
역주4 其言大備 : 《隋書》 〈經籍志〉에 의하면 “揚雄의 《方言》은 13권이며, 郭璞이 注를 달았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5 聲讀 : 소리 내어 읽다(有聲閱讀). 黙讀(無聲閱讀)의 반대말이다.[역자]
역주6 鄭玄注六經 : 《後漢書》 〈鄭玄傳〉에 의하면 “鄭玄은 字가 康成으로, 北海郡 高密縣 사람이다. 黨錮의 사건으로 벼슬길이 막히자 마침내 칩거하고 經書를 연구하며 두문불출하였다. 鄭玄이 주석한 책으로는 《周易》, 《尙書》, 《毛詩》, 《儀禮》, 《禮記》, 《論語》, 《孝經》, 《尙書大傳》, 《尙書中候》, 《乾象曆》 등이 있는데 모두 백여만 자의 분량에 이른다.”고 하였다.[趙曦明]
顔之推의 글에서는 六經을 얘기하고 있으나, 范曄의 《後漢書》에서 들고 있는 것은 五經뿐이다. 《通志》 〈鄭玄傳〉에 의하면, 《冊府元龜》 605에는 范曄의 《後漢書》에서 들고 있는 五經 이외에도 《周官禮注》가 있다. 史承節의 〈鄭公祠堂碑〉에도 이러한 주석이 있으며, 《周官禮注》 12권은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므로 이는 아마 范曄의 《後漢書》를 傳寫하던 이가 우연히 탈락시킨 것일 뿐이다.[王利器]
六經은 《詩經》, 《尙書》, 《禮記》, 《周易》, 《春秋》, 《樂記》를 가리킨다.[역자]
역주7 高誘解呂覽淮南 : 《隋書》 〈經籍志〉에 의하면 “《呂氏春秋》 26권과 《淮南子》 21권은 모두 高誘가 주석하였다.”고 하였다.[趙曦明]
高誘는 涿縣 사람으로, 《水經注》 〈易水〉에 보인다. 《淮南子》 〈敘目〉에 실린 바에 의하면, 高誘는 젊을 때 같은 縣의 盧植에게 배웠으며, 建安 10년에 司空掾의 벼슬이 내려졌다.[王利器]
역주8 劉熹製釋名 : 《隋書》 〈經籍志〉에 의하면 “《釋名》 8권은 劉熙가 지었다.”고 하며, 《冊府元龜》에 의하면 “漢나라 때 劉熙는 安南太守로 《禮謚法》 8권과 《釋名》 8권을 지었다.”고 하며, 《直齋書錄解題》에서는 “漢나라 때의 徵士 北海郡 劉熙 成國이 지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劉熹라고 하였다. 《文選注》에서는 李登의 《聲類》를 인용하여 “熹는 熙와 같다.”고 하였다.[盧文弨]
역주9 譬況假借 : 陸德明의 《經典釋文》 〈敘錄〉에 의하면 “고인들이 독음을 기록할 때는 譬況의 방식에 그쳤으나, 孫炎에 이르면 비로소 反切語의 방식이 시작된다.”고 하였으며, 張守節의 《史記正義》 〈論例〉에서도 “선대의 학자들이 글자를 注音할 때는 비유의 방식으로 독음을 하였으나, 魏나라 때의 秘書 孫炎에 이르면 反切音을 쓰기 시작한다.”고 하였다.[王利器]
發音 狀況을 描述하거나 비슷한 讀音字로 환치시키다. 譬況의 주음방식이란 反切이 생기기 전에 漢字를 注音하던 방법으로, 描述的인 언어로 漢字의 발음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다. 예컨대 ‘급하게 말한다[急言]’, ‘느리게 말한다[緩言]’, ‘짧게 말한다[短言]’, ‘길게 말한다[長言]’ 같은 것들이 그러한 예이다. 이는 흔히 ‘讀若’, ‘讀如’, ‘直音’ 등과 함께 쓰이는 특징이 있다. 예컨대 《淮南子》 〈地形訓〉의 “旄牛와 무소가 많이 있다.[多旄犀]”는 구절에 대해, “旄는 綢繆라고 할 때의 繆처럼 읽되, 語氣를 급하게 하여 말하면 그 발음을 얻는다.[旄讀綢繆之繆 急氣言乃得之]”고 한 高誘의 주석이 그러한 예이다. 이에 반하여 假借의 주음방식이란 독음이 같거나 비슷한 다른 글자를 빌려 해당 글자를 주음하되, 한편으로는 차용된 글자의 의미도 함께 좇고 있는 방식이다. 예컨대, 帛書 《老子》 甲本 〈德經〉에 보이는 “그 얕은 곳에 머물지 않는다.[不居其泊]”는 데에서 泊은 薄의 通假字로 쓰인 것이니, 곧 假借法의 주음방식을 사용한 것이다.[역자]
역주10 輕重淸濁 : 輕重이란 중성모음 이하 韻母가 開口音이냐 合口音이냐를 가린 개념이며, 清濁이란 초성자음 聲母가 성대를 울리지 않는 淸音[不帶音]이냐 성대를 울리는 濁音[帶音]이냐를 구분하는 개념이다. 한자의 독음은 전통적으로 聲母와 韻母로 양분되어 인식되는데, 聲母란 대개 국어의 초성자음에 해당하며, 韻母란 대개 국어의 중성모음 이하 종성까지를 포함해서 가리키는 말이다.[역자]
역주11 內言外言 急言徐言 : 예컨대 何休는 《春秋公羊傳》 宣公 8년에서 “乃를 말할 때는 소리가 입 안으로 나고 깊은 반면에, 而를 말할 때는 소리가 입 바깥으로 나고 얕다.”고 하였으니, 이들이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을 추측해볼 수가 있을 뿐이며, 《春秋公羊傳》 莊公 28년에서도 “정벌한 이가 손이 되고, 정벌당한 이가 주인이 되었다.”는 구절에서, 何休는 上句에는 “남을 정벌한[伐人] 이가 손이 되었다 할 때는 伐을 읽을 때 길게 읽는다.” 하고, 下句에서는 “정벌당한[見伐] 이가 주인이 되었다 할 때는 伐을 읽을 때 짧게 읽으니, 이는 모두 齊나라 사람들의 말씨이다.”라고 주석하였다.[盧文弨]
모두 反切이 생기기 이전에 漢字를 注音하던 譬況의 방법이다.[역자]
역주12 讀若之類 : 反切이 창안되기 이전의 주음방식으로 讀若某, 讀如某, 讀與某同이나 直音 등의 방식을 가리킨다. 譬況 방식의 독음과 더러 함께 쓰이는 특징이 있다.[역자]
역주13 孫叔言創爾雅音義 : 叔言은 곧 叔然을 가리키며 孫炎의 자이다. 王應麟의 《玉海》 〈小學類〉에 의하면 “세상에서는 倉(蒼)頡이 한자를 창제하고 孫炎이 反切音을 만들고 沈約이 韻을 지었다고 하니, 모두가 살도 없는 바퀴를 굴리기 시작하듯 효시가 된 이들이다.”라고 하였다.[王利器]
《隋書》 〈經籍志〉에 의하면 “《爾雅音義》 8권은 孫炎이 지었다.”고 하였다.[趙曦明]
《魏志》 〈王肅傳〉에 의하면 孫叔然은 이름이 晉 武帝와 같았으므로 그의 字로 불렸다고 한다. 陸德明의 《經典釋文》에서도 “炎의 字는 叔然이다.”라고 하였으나, 지금 여기서 叔言이라 한 것은 이 또한 《莊子》의 “위대한 말은 담담하다.[大言炎炎]”는 언급을 취지로 삼은 것이다. 어찌 孫炎에게 두 개의 자가 있을 수가 없겠는가? 그러므로 이를 그대로 쓴 것이다.[盧文弨]
역주14 漢末人獨知 : 孫炎 이전에도 《漢書》의 服虔 注 같은 데에 단편적이나마 反切이 사용된 예가 보이나, 反切을 정리하여 《爾雅音義》를 지었으므로 일반적으로 反切의 創始人으로서는 孫炎을 들고 있다. 服虔은 河南 滎陽人으로 대략 168년을 전후한 漢 桓帝와 靈帝 연간에 생존하였으며, 孫炎은 三國시대 魏(220~265)나라 樂安(지금의 博興縣) 사람으로 漢末의 靈帝 이후 獻帝 무렵까지 鄭玄(127~200)에게 배웠으며 司馬氏가 曹氏의 魏나라 정권을 찬탈하여 晉(265~420)을 세우고 그를 秘書監으로 초빙하였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대개 265년 무렵까지 생존하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 漢末이란 대개 獻帝(189~220)의 시대를 가리키는 말이다.[역자]
역주15 反語 : 反切法에서 각각 자음과 모음을 대표하며 연이어 놓인 2음절어의 注音字를 가리키는 말이다. 혹은 反, 翻, 切, 혹은 反切, 反切語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反切法이란 연이은 2개 한자의 독음 중 앞 자에서는 자음을, 뒷 자에서는 모음을 서로 모아 1음절 한자의 독음을 조합해내는 전통적인 한자의 注音方法이다.[역자]
역주16 高貴鄕公 : 《三國志》 〈魏志 三少帝紀〉에 의하면 “高貴鄕公은 諱가 髦(모)이며, 字는 彦士로, 文帝의 손자이며, 東海定王 曹霖의 아들이다, 7년간 재위하였으나, 賈充에게 시해되었다.”라고 하였다.[趙曦明]
역주17 不解反語 以爲怪異 : 《經典釋文》 〈敘錄〉에 “高貴鄕公 曹髦(모)에게 《春秋左傳音》 3권이 있다.”고 하였으니, 여기서 “高貴鄕公 曹髦는 反切法을 이해하지 못하여 괴이하게 여겼다.”는 말은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다. 《經典釋文》에 高貴鄕公의 反切音 관련 기록이 있는 것은 아마 본래 譬況音이었던 것을 後人이 改作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周祖謨]
洪煨蓮에 의하면 “曹髦가 처음에 반절어를 괴이하게 여겼을지라도 나중에 그것을 익혔다면 그럴 수 없는 일도 아닐 것이다.”라고 하였다.[周法高]
역주18 自玆厥後 : ‘이로부터 그 이후로[從此以後]’와 같은 뜻이다.[王利器]
역주19 指馬之諭 : 손가락(能指:언어)으로 말(馬:사물)을 설명하다. 곧, 상호간의 차이를 두고 시비를 가리며 논쟁하다. 혹은, 彼我간의 우연성을 두고 논쟁하다.
《莊子》 〈齊物論〉에 의하면 “손가락(能指:언어)을 들어서 손가락(能指:언어)이 손가락(受指:사물)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은 손가락이 아닌 것을 들어서 손가락이 손가락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만 못하다. 말(馬:사물)을 들어서 말(馬:사물)이 말(馬:언어)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은 말이 아닌 것을 들어서 말이 말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만 못하다. 천지는 한 가지 손가락(能指:언어)이요 만물은 한 가지 말(馬:사물)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莊子》의 이 비유는 道의 입장에서 사물을 관찰하자면 피아의 구분이 없는 본연의 자세로 사물을 초월하여 자연에 맡김으로써 사물에 관한 논쟁을 종식시킬 수가 있다는 점에서 ‘양시양비[兩行]’의 입장을 말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顔之推는 여기서 이를 名과 實, 곧 언어와 사물의 상관관계를 토론한 말로 간주하여 어원이 같음에도 지엽적인 소리에서의 차이를 낳는 방언의 속성을, 피아의 구분을 허물기만 하면 천지가 곧 한 가지 언어로 통하며, 만물이 저마다 한 마리 말과 통한다는 《莊子》의 이러한 주장에 비유하며, 천지간의 만물이 그러하듯 언어가 지닌 개연성을 망각하고 방언의 우연성에만 몰입하는 시류를 지적한 것이다.[역자]
역주20 搉(각)而量之 : 《文心雕龍》 〈通變〉편에 의하면 “검토하여 논한다.[搉而論之]”고 하였다.[王利器]
판본에 따라 搉은 權으로도 쓰여 원문이 ‘저울질하며 헤아려보다[權而量之]’로 되어 있기도 한다. 搉은 ‘두드린다[敲擊]’는 본의에서 널리 ‘검토한다[硏討]’는 파생의로 쓰인다. 이 경우에는 흔히 通假字 榷(각)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 글자가 權으로 잘못 쓰인 것이라 여겨 여기서는 王利器 본의 搉을 따랐다.[역자]
역주21 獨金陵與洛下耳 : 金陵은 지금 江南의 江寧府이니, 吳, 東晉, 宋, 齊, 梁, 陳이 모두 이곳에 도읍하였으며, 洛下는 지금의 河南 開封府이니, 周, 漢, 魏, 晉, 後魏가 모두 이곳에 도읍하였다. 그러므로 그곳의 음은 正音에 가까우며 외진 시골과는 다르다.[盧文弨]
金陵은 곧 建康이니 南朝의 都城이며, 洛下는 곧 洛陽이다. 《世說新語》 〈雅量〉편에서 謝安이 〈洛生詠〉을 지었다고 하였는데, 劉義慶은 이에 대하여 宋 明帝의 《文章志》에서 ‘어찌 洛下 書生의 노래를 지을 수가 있으랴?’라고 하였다 하니, 이는 洛陽을 민간에서 洛下라 불렀던 것인바, 洛陽은 魏, 晉, 後魏의 都城이다. 대개 韻書를 지을 때 북방인들은 대부분 洛陽의 讀音을 위주로 하며, 남방인들은 建康의 독음을 위주로 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이러한 주장들을 검토하며 헤아려보자면 다만 金陵과 洛陽의 말이 있을 뿐이다.’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隋書》 〈經籍志 小學類〉에 의하면 “《河洛語音》 1권이 있는데 王長孫이 지었다. 대개 帝都의 독음을 正音으로 삼되, 사방의 俗音을 비교하고 古今의 언어를 조사하면서 折衷한 것이다.”라고 하였다.[周祖謨]
역주22 南方水土和柔……其辭多古語 : 北方에 古語가 많음은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시장이나 마을 길거리에서 서로 주고받는 말들도 이를 正史의 기록에서 살펴보면 고대와 다르지가 않다. 學士들은 늙어 죽도록 깨우치지를 못하는데 항간의 아동들은 어려서도 익숙히 알고 있으니, 어찌 유독 꼴 베던 사내들만 王道를 말하지 않느냐고 선비를 비웃었겠으랴? 내가 《證俗文》을 지어 그러한 일들을 자못 상세히 밝혔다.[郝懿行]
《經典釋文》 〈敘錄〉에 이르기로 ‘方言의 차이란 것이 진실로 절로 다르거니와 江北과 江南은 가장 크게 달라서 혹은 들뜨고 낭랑한 데에 흠이 있는가 하면, 혹은 무겁고 탁한 데에 결함이 있다.’고 하였으니, 顔之推의 말과 같다. 顔之推가 남방인들의 말씨에 비속한 점이 많다고 한 것은 그것이 中原의 雅音과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니, 말씨가 비속하다는 것은 고대에 그 근거가 없다.[周祖謨]
역주23 淸擧 : 맑고 높다.[역자]
역주24 切詣 : 切至와 뜻이 같다. 《文心雕龍》 〈樂府〉편에 의하면 “뛰어난 표현은 절실하다.[奇辭切至]”고 하였다.[王利器]
여기서는 발음을 두고 말한 것이므로 ‘분명하다’의 뜻으로 의역했다.[역자]
역주25 鈋鈍(와둔) : 본래는 ‘둔하다’의 뜻이지만, 여기서는 ‘어눌하다’의 뜻으로 의역했다.[역자]
역주26 質直 : 《論語》 〈顔淵〉편에 의하면 “소박하고 정직하며 의로움을 좋아한다.[質直而好義]”고 하였다.[王利器]
소박하고 자연스럽다.[역자]
역주27 冠冕君子……不可具論 : 여기서는 남북의 士族과 庶民의 말소리가 저마다 우열이 나뉨을 토론하고 있다. 대개 五胡가 중국을 어지럽힌 이후 中原의 옛 귀족들은 江東 지역으로 이주한 이들이 많다. 이 때문에 南朝에서는 사대부들로 말하자면 여전히 북방음을 위주로 하고 있으나 서민들로 말하자면 대부분 吳語를 쓰고 있으므로, ‘옷을 바꾸어 입고 이야기해보더라도 남방에서는 몇 마디 말만으로 그가 士族인지 庶民인지 신분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한 것이나, 북방은 華夏族들이 예로부터 살던 곳이어서 사족과 서민들의 말소리에 차이가 없으므로, ‘담을 사이에 두고 말을 들어보면 북방에서는 벼슬아치인지 농부인지 종일토록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한 것이다. 다만 북방인들의 경우 오랑캐들의 말소리가 많이 섞였으므로 말씨가 바르지 못한 점이 많아서 오히려 남방의 사대부들의 말소리가 우아한 것만 못할 따름이다. 항간의 사람들의 경우에는 남방인들의 말이 비속해서 북방인들의 말이 단정함만 못한 것이다.[周祖謨]
역주28 冠冕 : 古代 帝王이나 官員이 쓰던 모자. 혹은 관직에 있는 사람.[역자]
역주29 以紫爲姊 : 紫는 將此切로 四紙韻에 있고, 姊는 將几切로 五旨韻에 있으므로, 두 韻이 古音에서는 크게 구분되었다.[段玉裁]
《廣韻》에 의하면, 姉(자:[tsjěi])는 將几切로 旨韻에 속하며, 紫(자:[tsje])는 將此切로 紙韻에 속하여, 비록 똑같이 止攝(支, 脂, 之, 微韻을 통괄하는 ‘i’류 운모의 韻部)의 開口呼(韻母의 앞머리나 주요 모음 자리에 ‘i’, ‘u’, ‘ü’가 없는 것)에 해당하나 韻이 서로 다르다. 다만, 姉(자:姊)는 남방의 潮州에서는 지금도 항간의 속음으로 姉(저:姐)와 같이 읽히므로, 남방의 독음에 익숙한 顔之推에게 북방 사람들이 말하는 紫(자)가 흡사 현재 중국 남방의 속음으로서의 姉(저:姐)의 발음처럼 들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위에서 顔之推가 인식하고 있던 紫(자:[tsje])와 姉(자:[tsjěi]) 간의 독음의 주요한 차이점을 밝히기 위해 附記한 ‘[tsje]’와 ‘[tsjěi]’ 등의 독음표기 방식은 국어사전에는 없으나 영어사전에서는 사용하는 ‘국제음성부호(IPA) 표기법’이다. 이하에도 국어 한자음으로 구별하기가 어렵거나, 국어 한자음을 근거로 삼기가 어려운 경우 필요에 따라 현대 漢語의 한어병음이나 ‘국제음성부호(IPA) 표기법’ 등을 이용한 中古시대 漢語音을 附記하여 그 독음을 밝히되, ‘국제음성부호(IPA) 표기법’을 따른 것은 반드시 그 독음을 [ ] 안에 표기하였다. 《廣韻》의 독음은 董同龢(화)가 추정한 中古漢語音을 따랐다.[역자]
역주30 兩失甚多 : 여기서는 북방인의 말소리는 韻을 나눔에 관대하여 남방인들의 엄밀함만 못함을 논한 것이다. 생각건대, 庶와 戍는 초성자음은 함께 審母의 글자들이나, 《廣韻》에서 庶는 御韻이며, 戍는 遇韻이어서 중성모음 이하에 차이가 있으니, 庶는 開口呼인 데 반하여 戍는 合口呼(韻母의 앞머리나 주요 모음 자리에 ‘u’가 있는 것)이다.[周祖謨]
역주31 至鄴已來 : 顔之推가 鄴에 들어온 것은 마땅히 北齊의 天保 8년이었을 것으로, 〈觀我生賦〉의 自注에서 이르기를 ‘鄴에 이르니 바로 陳이 일어났던 때이다.’라는 것이 이것이다.[周祖謨]
역주32 崔子約崔瞻叔姪 : 《北齊書》 〈崔㥄傳〉에 의하면 “아들 瞻은 字가 彦通으로, 聰明하고 열심히 배워 함께 사귀던 이들에게 한때 名望이 있었다. 叔父 子約은 司空祭酒(좨주)를 지냈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33 李祖仁李蔚兄弟 : 李祖仁과 李蔚은 《北史》 권43 〈李諧傳〉에 보인다. 李諧는 頓丘縣 사람으로, 北魏에서 秘書監으로 벼슬을 마쳤는데 史書에서 칭송한 바가 있다. 李諧의 長子 岳은 字가 祖仁으로, 中散大夫를 지냈으며, 李岳의 아우 庶는 단정하고 배우기를 즐겼으니 가풍이 몸에 배어 있었으며, 庶의 아우 蔚은 젊어서 모습도 빼어난 데다 도리를 잘 지키더니 史書를 섭렵하고 글 짓는 데 전념하여 당시에 명예가 높더니 北齊에서 벼슬했고 秘書丞으로 죽었다. 아우 若은 바로 劉臻, 顔之推 등과 함께 陸法言을 방문하고 묵으며 함께 音韻을 토론하던 이로 陸法言의 〈切韻序〉에 보인다.[周祖謨]
역주34 李季節著音韻決疑 時有錯失 : 《隋書》 〈經籍志〉에 의하면 “《修續音韻決疑》 14권은 李槪가 지었다.”고 하며, 저서로 《音譜》 4권도 있다.[趙曦明]
李季節은 《北史》 권33 〈李公緖傳〉에 보인다. 公緖는 趙郡 平棘縣 사람이니 《北史》에 이르길 ‘公緖의 아우 槪는 字가 季節로, 젊어서 배우기를 즐겼으나 성품이 오만하였다.’고 하였다. 그가 지은 《修續音韻決疑》와 《音譜》는 모두 없어졌으나, 《音譜》의 分韻은 敦煌本 王仁昫의 《切韻》에 그 대강이 기록되어 있는바, 예컨대 佳韻과 皆韻이 나뉘지 않았고, 先韻과 仙韻이 나뉘지 않았고, 蕭韻과 宵韻이 나뉘지 않았고, 庚韻과 耕韻과 靑韻이 나뉘지 않았고, 尤韻과 侯韻이 나뉘지 않았고, 咸韻과 銜韻이 나뉘지 않았으니, 모두 《切韻》과는 부합되지 않는다.[周祖謨]
역주35 陽休之造切韻 殊爲疎野 : 《隋書》 〈經籍志〉에 의하면 “《韻略》 1권은 陽休之가 지었다.”고 하였다.[趙曦明]
敦煌本 王仁昫의 《切韻》에는 《韻略》의 分韻한 部類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는바, 예컨대 冬‧鍾‧江韻이 나뉘지 않았고, 元‧痕‧魂韻이 나뉘지 않았고, 山‧先‧仙韻이 나뉘지 않았고, 蕭‧宵‧肴韻이 나뉘지 않았으니, 모두 《切韻》과 부합되지 않는다. 그의 分韻의 느슨함은 李季節의 《音譜》보다 더 심하니, 이 점이 顔之推가 그를 거칠다고 비난한 까닭이다.[周祖謨]
역주36 訛替 : 잘못. 착오. 오류.[역자]
역주37 品物 : 萬物, 器物, 혹은 잡다한 물건.[역자]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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