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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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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古樂府》의 ‘三婦’와 ‘丈人’
, 先述三子, 次及三婦, 婦是對舅姑之稱。
其末章云:“丈人且安坐, 調絃。”
古者, 子婦供事舅姑, 旦夕在側, 與兒女無異, 故有此言。
丈人亦長老之目, 今世俗猶呼其祖考爲
又疑“丈”當作“大”, 北間風俗, 婦呼舅爲大人公, “丈”之與“大”, 易爲誤耳。
近代文士, 頗作, 乃爲匹嫡並耦己之群妻之意,


33. 《고악부古樂府》의 ‘삼부三婦’와 ‘장인丈人
고악부古樂府》 〈상봉행相逢行〉의 가사에서 우선 세 명의 아들을 서술한 다음 세 명의 며느리[삼부三婦]를 언급하고 있으니, 며느리[]란 시부모에 대한 상대적인 호칭이다.
그 마지막 장에 “시아버지[장인丈人] 편안히 앉으셨는데, 거문고 가락 금방 끝나지는 않으리.[미거앙未遽央]”라는 시구가 있는데,
옛날에는 며느리가 시부모를 공양하고 섬김에 아침저녁으로 곁에 머물기를 딸과 다를 바가 없이 하였으므로, 이러한 가사가 있게 된 것이다.
장인丈人이란 또한 집안 어른에 대한 호칭呼稱으로, 지금 세간에서는 아직도 돌아가신 조부祖父를 ‘선망장인先亡丈人’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자는 마땅히 ‘’가 되어야 하지 않나 의심되기도 하는데, 북방北方의 풍속에는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대인공大人公’이라고 부르는 데다 ‘’자는 ‘’자와 잘못 쓰이기도 쉽기 때문이다.
근래의 문인들이 적잖이 〈삼부염三婦艶를 짓곤 하는데, 〈이때의 ‘삼부三婦’는〉 곧 정실正室로서의 배필配匹과 함께 자신과 짝 지워진 많은 처첩妻妾들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인 데다가,
음란한 가사까지 더하였으니, 고상하기 그지없는 군자君子들이 어찌 이리도 그릇되었는가?


역주
역주1 古樂府歌詞 : 고대의 樂府歌詞이다. 樂府란 漢 武帝 때 설립된 宮廷의 音樂官署로 처음에는 宴會나 行樂 시에 쓰이던 音樂을 관장하였으나, 民間의 詩歌를 정리하는 일도 맡으며 차츰 音樂이나 文學의 體裁를 가리키게 되었다. 詩體의 이름으로서는 魏‧晉에서 唐代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樂府歌詞를 모방한 것이나 音樂에 배합된 詩歌까지를 널리 포함시키기도 한다. 歌詞란 읊조리기 위한 시, 곧 徒詩가 아니라 음악에 맞추어 부른 노래가사라는 뜻이다. 郭茂倩(宋)의 《樂府詩集》은 漢‧魏시대로부터 唐‧五代에 이르기까지의 樂府歌辭와 先秦시대로부터 唐 末葉까지의 歌謠 5천여 首를 輯錄하였는데, 《詩經》 〈國風〉 이후 가장 완비된 民間詩歌의 總集이다. 이 절에서 논의하는 古樂府 歌詞는 《樂府詩集》에 수록된 〈相和歌辭 清調曲 相逢行〉이다.[역자]
역주2 未遽央 : 《愛日齋叢鈔》에서는 渠未央으로 되어 있다.[周法高]
《樂府詩集》에 실린 노래 〈相和歌辭 清調曲 相逢行〉에서 “큰며느리 비단을 짜고, 둘째며느리 명주를 타면, 막내며느리는 할 일 없어, 거문고 안고 마루에 올라, 시아버지 잠시 편안히 앉으신 곳에, 거문고 가락 막 높아진다.[方未央]”라고 하였다. 생각건대, 또 다른 〈長安有狹邪行〉의 마지막 구절에서는 “시아버지 천천히 즐기시니, 거문고 소리 어찌 끝내리.[詎未央]”라고도 하였다.[趙曦明]
생각건대, ‘어찌 절반에도 이르지 않았으리[詎未央]’란 틀림없이 원래 ‘아직 금방 끝나지는 않으리[未渠央]’였을 것이다. 渠는 遽와 讀音과 意味가 같으므로 顔之推는 이를 ‘未遽央’이라고 인용한 것이다. 만약 詎를 어찌[豈]의 뜻으로 푼다면, ‘어찌 반에도 이르지 않았으랴[豈未央]’란 곧 ‘이미 반을 지났다’는 뜻이니, 詩의 本意와 크게 어긋나지 않겠는가? 《詩經》 〈小雅 庭燎〉편에서는 “밤이 깊었지만 날이 아직 밝지 않았다[夜未央]”는 시구의 鄭玄의 箋에서 “夜未央이란 ‘밤이 아직 금방 끝나지는 않으리[夜未渠央]’라는 말과 같다.”고 하였으므로, 詩의 本意는 이에 근거한 것이다.[盧文弨]
未央이란 ‘아직 절반에도 이르지 못하다[未半]’의 뜻이나, ‘아직 끝나지 않다[未盡]’, 혹은 ‘다함이 없다[無已]’의 뜻으로도 쓰인다. 〈相逢行〉은 편명을 〈相逢狹路間行〉이라고도 하며, 혹은 〈長安有狹斜行〉이라고도 한다.[역자]
역주3 先亡丈人 : 郝懿行에 의하면 “先亡丈人이란 ‘돌아가신 조부’를 널리 일컫는 말이 아니므로 顔之推가 丈자는 마땅히 大자가 되어야 한다고 의심한 것은 옳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4 三婦詩 : 〈〈三婦艶〉의 詩題에 쓰인 ‘艶’이란, 蕭繹이 지은〉 《梁元帝纂要》에 의하면 “楚歌를 艶이라 한다.”라고 하였다.[盧文弨]
南朝시대 宋의 南平王 劉鑠이 처음 樂府 〈相逢行〉의 마지막 6句를 모방하여 지은 〈三婦艶〉 詩를 가리킨다.[역자]
역주5 鄭衛之辭 : 亂世의 음란한 歌辭나 音樂이다. ‘鄭衛之風’이나 ‘鄭衛之音’과 같은 뜻이다.[역자]
역주6 大雅君子 : 《文選》 〈西都賦〉의 “높은 덕행과 비상한 재능으로[大雅宏達] 이곳에 무리 지어 모였다.”는 구절의 李善 주석에 의하면 “大雅란 고상한 자질을 지니고 있음을 말한 것이니, 《詩經》에 〈大雅〉편이 있어 이러한 칭송이 생긴 것이다.”라고 하였다.[王利器]
덕을 지닌 고상한 군자.[역자]
역주7 何其謬乎 : 南朝시대 宋의 南平王 劉鑠은 처음 樂府 〈相逢行〉의 마지막 6句를 모방하여 〈三婦艶〉 詩를 지었으나 아직 그다지 猥褻스럽지는 않더니, 梁의 昭明太子와 沈約에 이르면 모두 ‘낭군님 이제 편히 누우시려니.’라는 구가 생기고, 王筠과 劉孝綽은 여전히 ‘시아버님[丈人]’이라 일컬으나, 吳均에 이르면 ‘佳人’이라 말하며, 陳 後主에 이르면 11首나 되는 같은 이름의 시를 짓되 “젊은 첩 비스듬히 누워 있는데, 교태를 머금고 채 토해내지 못하였구나.”라는 구가 있는데, 이것들이 바로 顔之推가 ‘亂世의 음란한 音樂’이라 일컬었던 시들이다.[盧文弨]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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