客有
主人曰:“今之經典, 子皆謂非, 《說文》所言, 子皆云是, 然則許愼勝孔子乎?”
主人
大笑, 應之曰:“今之經典, 皆孔子手迹耶?”
答曰:“許愼檢以
,
, 使不得誤, 誤則覺之, 孔子
。
且余亦不專以《說文》爲是也, 其有援引經傳, 與今乖者, 未之敢從。
無妨自當有禾名䆃, 非相如所用也。‘禾一莖六穗於庖’ 豈成文乎?
縱使相如天才鄙拙, 强爲此語, 則下句當云‘麟雙觡共抵之獸’, 不得云犧也。
吾嘗笑許純儒, 不達文章之體, 如此之流, 不足憑信。
大抵服其爲書,
有條例, 剖析窮根源, 鄭玄注書,
。
어떤 이가 내게 따져 물었다. “지금의 경전經典을 당신은 모두 틀렸다 하고,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옳다고 하니, 그렇다면 허신許愼이 공자孔子보다 더 낫다는 말인가요?”
내가 박장대소拍掌大笑하며 대답하였다. “지금의 경전經典이 모두 공자孔子의 친필親筆로 이루어진 것이겠소?”
어떤 이가 말하였다. “지금의 《설문해자說文解字》가 모두 허신許愼의 친필親筆로 이루어진 것인가요?”
내가 대답하였다. “허신許愼은 육서六書에 의거하여 〈문자를〉 검토하고 부수部首를 통해 체계를 세워 오류가 생길 수 없게 한 데다 오류가 있다면 바로 깨달을 수 있게 하였으나, 공자孔子는 〈그 문자의〉 의미를 남겼을 뿐 문자 자체에 대해서는 토론하지 않으신 것이지요.
예전의 유학자儒學者들은 오히려 〈경전經典에 쓰인〉 문자文字를 고쳐 읽으며 그 의미를 좇았거늘, 하물며 〈오랜 세월〉 베껴 적으며 유전流轉되어온 경우야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지止자와
과戈자가 합쳐
무武자가 되고,
정正자(
)를 〈좌우로〉 뒤집어
핍乏자(
)가 되고,
명皿자 위에
충蟲자가 놓여
고蠱자가 되고,
해亥자는 머리가 2획이고 몸이 6획이라고 한 사례 같은 것들은 후세 사람들이 경솔히 고칠 수도 없거니와,
어찌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거하여 감히 그 시비是非를 따질 수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나 역시 《설문해자說文解字》만이 옳다고 여기지는 않아서,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인용된 경전經傳의 자구字句가 지금의 것과 어긋난 것이라도 있으면 감히 이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봉선서封禪書〉에서 이르길 ‘한 줄기에 여섯 이삭이 달린 가화嘉禾를 부엌에다 골라[도導]놓았으며, 한 쌍의 뿔이 하나의 뿌리에서 함께 난 짐승을 희생으로 드렸다.[도일경육수어포導一莖六穗於庖 희쌍격공저지수犧雙觡共抵之獸]’고 하였는데,
여기서 도導자는 ‘고른다[택擇]’는 뜻으로 풀이되니, 광무제光武帝의 조서詔書에서 이르길 ‘공연히 미리 〈악무樂舞를〉 교육시키고 〈기인妓人을〉 골라내는[도택導擇]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비도유예양도택지로非徒有豫養導擇之勞]’고 했던 것이 이것입니다.
그런데도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도䆃란 벼의 이름이다.’라고 하면서 〈봉선서封禪書〉를 인용해 증거로 삼았습니다.
벼의 이름으로 도䆃자가 있다는 점이야 당연한 일이니 무방하겠지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사용했던 뜻은 이것이 아니지요. ‘화일경육수어포禾一莖六穗於庖’라고 해서야 어찌 글이 되겠습니까?
설령 사마상여司馬相如의 타고난 재능이 졸렬해서 굳이 이러한 구절句節을 썼다고 한다면, 그 아래 구절句節〈의 대구對句〉에서는 마땅히 ‘인쌍격공저지수麟雙觡共抵之獸’라고 해야 할 것이니 희犧자를 운위云謂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일찍이 허신許愼은 순수한 유학자儒學者일 뿐, 문체에는 통달하지 못했다고 비웃었던 적이 있는데, 〈《설문해자說文解字》의〉 이와 같은 사례들은 신빙성이 부족합니다.
대체로 허신許愼의 책에 감탄하는 까닭은 자형字形을 바로잡음에 체계가 분명하고 자의字意를 분석함에 근원까지 파고들었기 때문이니, 정현鄭玄도 경서經書를 주석할 때 자주 그의 책을 인용하여 증거로 삼았습니다.
만약 그의 설명說明을 믿지 않는다면, 〈문자文字의〉 점點 하나, 획劃 하나에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