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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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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임금에게 글을 올리는 일
2. 임금에게 글을 올리는 일
글을 올려 의견을 진술하는 일은 전국시대戰國時代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양한兩漢에 이르러 그 기풍은 더욱 보편화되었다.
原其:攻人主之長短, 諫諍之徒也;群臣之得失, 之類也;
그 형식과 태도를 따져보면, 군주의 장단점을 공격하는 것은 간쟁諫諍하는 사람들이고, 신하들의 잘잘못을 들추어내는 것은 고발하는 부류이며,
陳國家之利害, 之伍也;帶, 之儔也。
나라와 집안의 이익과 손해에 대해 진술하는 것은 대책對策을 만드는 계열이고, 개인적 속셈에 따른 이해관계를 가진 것은 유세遊說하는 무리들이다.
總此四塗:以求位,
이 네 가지의 방식을 종합해보면, 충성忠誠을 팔아서 지위地位를 구하는 것이요, 말[]을 팔아서 녹봉祿俸을 구하는 것이다.
或無絲毫之益, 而有之困, 幸而感悟人主, 爲時所納, 初獲之賞, 終陷不測之誅,
때로는 털끝만큼의 이득도 없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곤혹을 치르기도 하고, 요행히 임금을 깨닫게 하고 일시적으로 받아들여져서 처음에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포상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은 예상치 못한 형벌에 빠지고 마는데,
〈예를 들면〉 엄조嚴助, 주매신朱買臣, 오구수왕吾丘壽王, 주보언主父偃 등과 같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良史所書, 蓋取其, 論政得失耳, 非士君子守法度者所爲也。
역사歷史에 기록된 것은 대개 과격하거나 고집이 세고 지조가 굳어 변치 않는 사람들이 정치의 잘잘못을 논한 사례들뿐이며, 법도를 지키는 사군자士君子가 할 일은 아니다.
今世所睹, 者, 悉恥爲之。
오늘날 보건대, 아름다운 을 품고 향기로운 난초나 계수나무를 거머쥔 사람들은 다들 그런 일 하는 걸 부끄럽게 여긴다.
守門詣闕, 獻書言計, 率多空薄, , 無之大體, 咸之微事, 十條之中, 一不足採。
문을 지키며 기다리고 대궐로 찾아가서 글을 바치고 계책을 말하지만, 대부분은 공허하고 경박하게 자기 자랑이나 하면서 세상을 경영할 만한 중요한 핵심은 없고 모두 쓸데없는 자질구레한 일들이라, 열 가지 중에 한 가지도 채택할 만한 것이 없다.
縱合時務, , 非謂不知, 但患知而不行耳。
설사 당장의 일에 부합한다 해도 이미 알려져 다들 아는 것이므로,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직 알면서도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걱정일 뿐이다.
或被發姦私, , 事途,
때로는 간악한 사심私心이 드러나 얼굴을 맞대고 따지다 보면 일이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할 수가 없어, 도리어 〈자신의〉 허물을 두려워하게 되기도 한다.
人主, , 此乃僥倖之徒,
군주가 대외적으로 명망을 지키며 교화시키려고 어쩌면 용인해줄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결국 요행을 바라는 자들이니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족하지 않다.
역주
역주1 上書陳事 起自戰國 : 蘇秦, 蘇厲, 范雎(저), 韓非, 黃歇 같은 무리들이 모두 이들이다.[趙曦明]
陳事는 사정이나 의견을 진술한다는 뜻이다.[역자]
역주2 逮於兩漢 風流彌廣 : 《文心雕龍》 〈章表〉에 따르면, “戰國時代로 내려왔지만 옛날 법식은 아직 변함이 없어, 임금에 대한 言事를 모두 上書라고 불렀다. 秦나라 초기에 제도를 정하면서 書를 고쳐 ‘奏’라고 했다. 漢代에 禮儀를 정하면서 네 종류가 있게 되었는데, 첫째가 章, 둘째가 奏, 셋째가 表, 넷째가 議였다. 章으로는 은혜에 감사하고, 奏로는 탄핵하여 꾸짖고, 表로는 사정을 진술하여 간절하게 청원을 하고, 議로는 다른 입장을 나타낸다.” 하였다. 《漢書》 〈趙充國辛慶忌傳〉의 贊에서 “오늘날 노래하며 慷慨하는 데에 아직도 그 기풍이 남아있다.”라고 했다.[王利器]
역주3 體度 : 體裁와 態度로서, 여기서는 上書의 형식과 上書를 올리는 태도를 말한다.[역자]
역주4 訐(알) : 들추어내다. 폭로하다.[역자]
역주5 訟訴 : 사정기관에 고발하거나 고소하다.[역자]
역주6 對策 : 군주의 명에 응하여 바치는 政事에 관한 신하의 의견서이다. 《文心雕龍》 〈議策〉에서 “對策이란 詔書에 응하여 정책을 진술하는 것이다.”라 했다.[역자]
역주7 私情之與奪 : 개인적인 속셈에 따른 이해관계를 말한다.[역자]
역주8 遊說(세) : 《史記》 〈蘇秦傳〉에서 “蘇秦의 형제 세 사람은 모두 제후에게 유세하여 이름을 드러내었다.”라고 했다.[王利器]
돌아다니며 자신의 주장을 퍼뜨리다.[역자]
역주9 賈(고)誠 : 충성을 팔다. ‘賈忠’으로 할 것을 隋 文帝의 부친 楊忠의 諱를 피하여 고친 것이다.[王利器]
역주10 鬻(육)言 : 값을 받고 말을 팔다.[역자]
역주11 干祿 : 《論語》 〈爲政〉에서 “子張은 祿 구하는 법[干祿]을 배웠다.”라 했고, 《集解》에서 “干은 구한다는 뜻이고, 祿은 녹봉과 지위이다.”라 했다.[王利器]
역주12 不省(성) : 상대해주지 않다. 거들떠보지 않다.[역자]
역주13 不貲(자) : 《漢書》 〈蓋(합)寬饒傳〉의 顔師古 注에서 “不貲란 그것에 견줄 만한 양의 재물이 없을 만큼 지극히 귀중하다는 말이다.[不貲者 言無貲量可以比之 貴重之極也]”라 하였다.[盧文弨]
《資治通鑑》 50의 胡三省 注에서 “訾가 말하는 것은 量이며, 不貲는 비할 만한 양이 없다는 말이다.”라 하였다.[王利器]
비할 데 없이 많다.[역자]
역주14 嚴助……甚衆 : 《漢書》 〈嚴朱吾丘主父徐嚴終王賈傳〉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嚴助는 會稽 吳 사람이다. 郡에서 賢良으로 천거하자 백여 명과 함께 對策을 올렸는데, 武帝가 嚴助의 對策을 좋게 보고 中大夫로 발탁하였다. 뒤에 朱買臣, 吾丘壽王, 司馬相如, 主父偃, 徐樂, 嚴安, 東方朔, 枚皐, 膠倉, 終軍, 嚴蔥奇 등을 얻어 모두 측근에 두었는데, 淮南王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일이 嚴助와 연루되어 있어 棄市의 형벌에 처하였다.
朱買臣은 字가 翁子로서 吳 사람이다. 대궐에 가서 上書를 올렸는데 때마침 같은 고을 출신의 嚴助가 천자의 총애를 받고 있어 朱買臣을 천거하자, 中大夫에 임명되었고 嚴助와 함께 侍中이 되었다. 뒤에 張湯이 남몰래 일을 꾸민다고 고하여 張湯이 자살을 하자 황제는 朱買臣도 죽였다.
吾丘壽王은 字가 子贛(공)으로 趙 사람이다. 侍中, 中郞이 되었다가 법을 어겨 면직되자 上書하여 匈奴를 치겠다고 청원을 하여 東郡都尉에 임명되었으며, 불려와 光祿大夫 侍中이 되었다가 뒤에 일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했다.
主父偃은 齊國 臨淄(치) 사람이다. 대궐 아래에서 上書하여 아침에 上奏를 하자 저녁에 불려가 황제를 뵈었다. 이야기한 것이 아홉 가지 일이었는데 그중 여덟 가지는 律令에 관한 것이고, 한 가지는 匈奴의 토벌에 대한 간언이었다. 이때 徐樂과 嚴安도 모두 上書하여 세상일에 대해 의견을 내었다. 황제는 세 사람을 불러 만나며 말하기를 ‘그대들은 모두 어디에 있었는가? 어찌 이리 늦게 만났을까!’라 하였다. 모두 郎中에 임명되었다. 主父偃은 자주 上疏하여 일에 대해 이야기하였는데, 그해 안에 백성들을 서쪽으로 이주시키도록 하였다. 대신들은 모두 그의 입을 두려워하며 뇌물로 수천 금을 바쳤다. 齊나라 일을 보면서 齊王을 헐뜯어 몰래 일을 꾸민다고 하자 齊王이 자살을 하였다. 황제는 크게 노하여 하급관리들을 불러들여 다스렸다. 公孫弘은 齊王이 자살을 함으로써 後嗣가 없게 된 것에 대해, 主父偃을 죽이지 않으면 천하에 사과할 길이 없다고 하여, 마침내 主父偃의 일족을 멸했다.”[趙曦明]
역주15 狂狷(견)一介 : 《論語注疏》 〈子路〉에서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中正한 사람을 얻어 함께할 수 없다면, 반드시 과격한 사람이나 고집 센 사람[狂狷]을 택하겠다. 과격한 사람[狂者]은 진취적이고 고집 센 사람[狷者]은 하지 않는 짓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하였고, 包咸의 注에서 “狂者는 바른 도에 대해 진취적이고, 狷者는 절개를 지키며 하지 않는다.”라 하였다. 《尙書》 〈周書 秦誓〉에서 “만약 한 마음의 지조 굳은 신하[一介臣]가 있다면”이라 하였고, 《釋文》에서 “一介란 지조가 굳고 한 마음으로 변치 않으며 바르고 성실한 자이다.”라고 했다.[王利器]
과격하거나 고집이 있으며, 지조가 굳어 변치 않는 사람을 말한다.[역자]
역주16 懷瑾瑜而握蘭桂 : 瑾瑜는 아름다운 옥이고, 蘭桂는 특별한 향기를 가지고 있다. 이것으로 재주 있고 덕을 지닌 선비가 남이 하는 짓을 따라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비유하였다.[盧文弨]
《楚辭》 〈九章 懷沙〉에서 “아름다운 옥을 품고 보물을 거머쥐고서도[懷瑾握瑜兮],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끝내 모르겠다.”라 하였고, 補注에서 “옷에 품는 것이 懷요, 손에 잡는 것이 握이다. 瑾瑜는 아름다운 옥이다.”라 하였다. 《拾遺記》 6의 《後漢錄》에서는 “丹石은 갈아낼 수는 있어도 그 굳은 빛깔은 빼앗을 수가 없고, 난초와 계수나무[蘭桂]는 분지를 수는 있어도 그 꼿꼿한 향기는 막을 수가 없다.”라 하였다.[王利器]
아름다운 옥을 품고 향기로운 난초와 계수나무를 거머쥐다. 재능과 지조를 가지고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역자]
역주17 高自矜夸 : 《漢書》 〈地理志 下〉에서 “공적과 명예를 자랑하다.[矜夸功名]”라 하였고, 黃叔琳은 “秀才 노릇은 정절을 지키는 여자처럼 해야 마땅하다. 上書하여 일을 진술하는 것이 저자 문에 기대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做秀才當如守貞之女 上書陳事 何異倚市門乎]”라고 했다.[王利器]
이익을 구하려고 자신을 높이고 자랑한다는 뜻이다.[역자]
역주18 經略 : 《文選》의 〈三國名臣贊序〉에서 “元首인 임금이 나라를 경영하고[經略], 股肱(고굉) 같은 신하들이 힘을 다한다.”라 하였고. 呂向의 注에서 “經略은 경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王利器]
역주19 粃糠(비강) : 《莊子》 〈逍遙遊〉의 《釋文》에서 “粃糠은 秕糠으로도 쓰며, 煩碎와 같다.”라 하였다.[盧文弨]
쭉정이와 겨, 즉 하찮고 쓸데없는 자잘한 것들을 가리킨다.[역자]
역주20 已漏先覺 : 〈그 계책이 군주에게〉 이미 알려져서 미리 눈치채고 있다.[역자]
역주21 面相酬證 : 얼굴을 맞대고 대질하여 조사하다. 酬證은 對證과 같은 뜻으로 對質하여 증거를 조사한다는 뜻이다.[역자]
역주22 迴穴 : 《韓詩》에서 “계책이 迴穴하다.[謀猷迴穴]”라 하였고, 《文選》에 수록된 班固의 〈幽通賦〉에서도 이 낱말을 사용했는데, 曹大家의 注에서 “迴는 기울었다는 뜻이고, 穴은 편벽되다는 뜻이다. 禍福이 상반된다.”라고 했다.[郝懿行]
《文選》의 〈幽通賦〉에서 “어지럽고 곡절이 많음[叛迴穴]이 이와 같다.”라 한 것에 대한 曹大家의 注에서 “迴는 기울었다는 뜻이고, 穴은 편벽되다는 뜻이다. 《韓詩》에서 ‘謀猷迴穴’이라고 했다.” 하였다. ‘穴’은 ‘泬’로도 쓰는데, 潘岳이 〈西征賦〉에서 “일이 바르지 못하고 삐뚤면[迴泬] 원래대로 돌아가는 법.”이라고 한 것에 대한 李善의 注에서 “謀猶迴泬”이라 한 《韓詩》를 인용하였다. ‘穴’과 ‘泬’은 뜻이 통하는데, 李善은 각각 인용된 대로 썼다. 이 두 글자는 이랬다저랬다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李詳]
郝懿行과 李詳의 校勘이 타당하다. 《韓詩》의 “謀猷迴穴”이 《毛詩》 〈小雅 小旻〉에서는 “謀猶回潏”로 되어 있다. 穴과 潏은 음이 비슷해서 통용되는데, 盧文弨는 穴을 宂(용)으로 보았으니 잘못된 것이다. 《文選》에 수록된 宋玉의 〈風賦〉에 “빙빙 돌며 뒤섞인다.[迴穴錯迕]”라 하였고, 李善의 注에서 “모든 일에 안정될 수 없는 것을 迴穴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바람이 안정되지 않는 모습이다.”라고 했다. 《漢書》 〈敍傳〉에서는 “어지러이 곡절이 많음[畔回穴]이 이와 같다.”라 하였고, 顔師古의 注에서 “回穴은 빙빙 돈다는 뜻이다.”라고 했다.[王利器]
구불구불하고 곡절이 많다. 여기서는 어디로 귀착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뜻으로 쓰였다.[역자]
역주23 翻懼愆(건)尤 : 도리어 〈자신의〉 허물을 걱정하게 되기도 한다. 愆은 原文에 𠍴으로 되어 있는데, 𠍴과 ‘愆’은 同字이다.[역자]
역주24 外護聲敎 : 《尙書》 〈夏書 禹貢〉에서 “聲敎가 천하에 퍼져나간다.”라 하였고, 《正義》에서 “聲敎는 명성으로 인한 위엄과 문화적인 敎化이다.”라고 했다.[王利器]
대외적으로 형벌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명망에 의한 德治를 유지하고자 한다는 뜻이다.[역자]
역주25 :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或然]는 뜻이다.[盧文弨]
역주26 含養 : 품어서 길러주다. 포용하다. 용인하다.[역자]
역주27 不足與比肩也 :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여 군주를 섬기기에 부족하다는 말이다.[盧文弨]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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