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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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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허황하다는 비난에 대한 해명2
凡人之信, 唯耳與目, 耳目之外, 咸致疑焉。
儒家說天, 自有數義:
, , 若所親見, 不容不同;若所測量, 寧足依據?
何故信凡人之臆說, 迷大聖之妙旨, 而欲必無也?
亦有。山中人不信有魚大如木, 海上人不信有木大如魚;
漢武不信, 魏文不信;胡人見錦, 不信有蟲食樹吐絲所成。
昔在江南, 不信有千人氈帳;及來河北, 不信有二萬斛船:皆實驗也.


5. 허황하다는 비난에 대한 해명2
사람들이 믿는 것은 오직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뿐이며,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 외의 것에 대해서는 모두 의심을 한다.
유가儒家에서 천체天體를 설명하는 방식에는 본래 몇 가지가 있는데, 혼천설渾天說이나 개천설蓋天說, 혹은 선야설宣夜說이나 안천설安天說 등이 그것이다.
〈북두칠성의〉 두병斗柄을 축으로 회전하는 천체의 운행이나 〈천체를 지탱하는〉 관유管維가 매어 있는 것을, 만약 직접 보았다면 〈천체를 설명하는 견해가 이렇게〉 다를 수 없을 것이요, 만약 추측한 것이라면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는가?
어떻게 보통 사람들의 억설은 믿으면서 대성인大聖人의 오묘한 뜻은 의심하며, 갠지스 강의 모래알만큼 무한한 세계가 있고 가는 먼지의 수만큼 무한한 시간이 있음을, 어떻게든 부정하려고만 하는 것일까?
추연鄒衍에게도 구주九州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산 속에 사는 사람은 나무만큼 큰 물고기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물고기만큼 큰 나무가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한 무제漢 武帝는 끊어진 활시위를 잇는 아교가 있음을 믿지 않았고, 위 문제魏 文帝는 불에 타지 않는 옷감이 있음을 믿지 않았으며, 호인胡人들은 비단을 보고도 벌레가 나뭇잎을 먹고 실을 토해내어 만들어진 것임을 믿지 못한다.
예전에 강남江南에 있을 적에는 〈사람들이 하북河北에〉 천 명이 들어가는 천막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고, 하북河北에 와보니 〈사람들이 강남江南에〉 2만 을 싣는 배가 있음을 믿지 않았다. 이 모두 실제로 겪은 일이다.


역주
역주1 或渾或蓋 乍宣乍安 : 《晉書》 〈天文志〉에 “옛날 천체에 대한 설명은 세 가지 학설이 있었는데, 첫째가 蓋天說이요, 둘째가 宣夜說이며, 셋째가 渾天說이다. 漢 靈帝 때 蔡邕이 북방에서 올린 상서에서, ‘宣夜說은 모범이 될 만한 원칙이 끊어지고 없습니다. 周髀法이 다 남아있긴 하지만 천체의 현상을 검증해보면 어긋나고 맞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오직 渾天說만이 실정에 가깝습니다.’라 했다. 蔡邕이 말한 周髀法이 바로 蓋天說이다. 이 학설은 周公이 殷 高宗에게 전수받았다. 그 주장에 따르면 하늘은 삿갓과 같고 땅은 쟁반을 엎어놓은 것 같으며, 하늘과 땅 모두가 가운데가 높고 바깥이 낮다고 한다. 宣夜說에 관한 책은 漢代에 秘書郞이었던 郗萌記 先師가 전하였는데,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절로 허공에 떠 있고 어디에 매인 곳이 없다고 한다. 成帝 咸寧 연간에 會稽 사람 虞喜가 宣夜說에 의거하여 安天論를 만들었다. 渾天說의 이론이 오묘함에도 학자들 중에는 의심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張衡과 陸績 등은 모두 渾天說보다 더 상세한 것은 없다고 여겼다.”라 하였다.[趙曦明]
乍는 或과 같다.[王利器]
중국 고대의 宇宙論 4가지를 말한 것이다. ‘渾’은 渾天說로서, 천체의 모양이 탄환처럼 둥근 모양이고, 하늘과 땅의 관계는 알 껍질이 노른자위를 품고 있는 것과 같다고 보는 견해이다. ‘蓋’는 蓋天說을 말한다. 이 說은 초기에 하늘은 넓게 펼쳐진 우산과 같고 땅은 네모난 바둑판 같은 것으로 보다가, 뒤에 하늘은 하나의 삿갓 모양이고 땅은 엎어놓은 쟁반과 같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으며, 해와 달, 별들은 하늘의 덮개를 따라서 운동한다고 하였다. ‘宣’은 宣夜說이다. 이 說에 따르면 하늘은 어떠한 形質을 갖지 않고 氣體가 끝없는 우주를 구성하며, 해와 달, 별들은 무한한 허공 속에 매인 데 없이 절로 떠다닌다고 한다. ‘安’은 安天說을 가리킨다. 이 說은 晉나라 虞喜가 하늘을 固體로 가정하는 蓋天說을 비판하기 위해서 만든 宇宙構造論이다. 이것은 宣夜說을 계승한 것으로 당시 상식이었던 고체로서의 하늘을 부정한 학설이었다.[역자]
역주2 斗極所周 : 《史記》 〈天官書〉에서 “北斗 자리의 일곱 별은, 이른바 璿璣玉衡을 살펴 七政을 바로잡는다는 별이다. 杓는 角宿를 끌고, 衡은 斗宿를 마주하며, 魁는 參宿의 머리를 베고 있다. 황혼에 寅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杓인데, 杓의 分野는 華山 서남 지역이다. 한밤중에 寅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衡인데, 衡의 分野는 中州의 황하와 濟水 사이 지역이다. 새벽에 寅을 가리키는 것은 魁인데, 魁의 分野는 東海에서 泰山에 이르는 동북 지역이다. 北斗 자리는 天帝가 타는 수레로서 하늘의 정중앙을 운행하면서 사방을 통제한다. 陰陽을 나누고 사계절을 정하고 五行을 조절하며 절기를 바꾸고 諸紀(歲, 日, 月, 星辰, 曆數 등의 법도)를 확정 짓는 것이 모두 北斗 자리에 연계된다.”라 하였다.[趙曦明]
斗極이 중심이 되어 천체가 운행함을 말한다. 斗極은 북두칠성의 손잡이 부분의 세 별, 즉 斗柄이다. 고대인들은 이 斗柄이 천체 운행의 축이 되어 천체가 도는 것으로 보았다.[역자]
역주3 管維所屬 : 《楚辭》 〈天問〉에서 “천체를 굴리는 끈[筦維]은 어디에 매어 있나? 하늘의 끝은 어디에 잇닿아 있나?”라 하였다. 筦은 幹이라고도 쓴다. 《淮南子》 〈天文訓〉에서 “동북쪽이 報德의 끈이요, 서남쪽이 背陽의 끈이며, 동남쪽이 常羊의 끈이요, 서북쪽이 蹄通의 끈이다.”라 하였다. 張衡의 〈靈憲〉에서 “8가닥의 끈은 길이가 2억3만 2,030리이다.”라 하였다.[盧文弨]
管(筦)維가 매어있는 곳이다. 管維는 斡(알)維라고도 하며, 북두칠성의 斗柄에 매달아 전체를 돌아가게 만든 8가닥의 끈이다.[역자]
역주4 恒沙世界 : 《金剛經》에서 “부처님 세상이 갠지스 강의 모래알[恒沙] 전체 개수와 같거늘, 어찌 많다고 하지 않겠소?”라 하였다.[趙曦明]
恒河의 모래알만큼 무한한 세상을 말한다. 恒河는 인도의 갠지스 강이다. 불교에서는 우주 공간 속에 세상이 아주 많다고 한다.[역자]
역주5 微塵數劫 : 《法華經》에서 “만약 사람의 힘으로 大千世界의 흙을 부수어 가루로 만들고, 또 그 가루를 모조리 갈아 먼지로 만들어서 그 먼지 하나를 1겁이라 한다면, 이 작은 먼지의 모든 수보다 그 劫의 세월은 더 많다.”라 하였다.[趙曦明]
가는 먼지 수만큼 무한한 시간을 말한다.[역자]
역주6 鄒衍 : 陰陽五行說을 주장한 전국시대 齊나라의 사상가이다.[역자]
역주7 九州之談 : 천하에는 작은 바다로 둘러싸인 9개의 州가 있다는 주장을 말한다. 《史記》 〈孟子荀卿列傳〉에서 “騶衍의 著書는 10여만 言이 되는데, 유가에서 말하는 中國이란 天下의 81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고, 中國을 赤縣神州라고 명명하였다. 赤縣神州 안에는 본래 9州가 있었는데, 禹임금이 정리한 九州가 바로 이것으로서 州로서 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하였다. 中國 바깥에 赤縣神州와 같은 것이 아홉이 있는데 이것이 이른바 九州이며, 여기에 작은 바다가 九州를 두르고 있어서 사람과 짐승들이 서로 통하지 않으며, 한 구역 안에 있는 것을 1州라 하였다. 또 이와 같은 것이 아홉이 있어 큰 바다가 그 바깥은 두르고 있는데, 이것이 하늘과 땅의 끝이라고 했다.”라 하였다. 騶와 鄒는 同字이다.[趙曦明]
역주8 弦膠 : 《雲笈七籤》 26에 인용된 《十洲記》의 鳳麟洲 條에 “仙家에서 봉황의 부리와 기린의 뿔을 삶아 함께 달여서 아교를 만드는데, 그것을 續弦膠 혹은 連金泥라 한다. 이 아교로는 활이나 쇠뇌의 끊어진 시위를 이어 붙이거나 부러진 칼 같은 쇠붙이를 이을 수 있으며, 더구나 아교로 붙인 곳을 힘센 사람을 시켜 당겨보게 하면 다른 곳이 끊어질지언정 이어 붙인 곳은 끝내 떨어지지 않는다. 天漢 3년에 武帝가 北海에 행차하여 恒山에서 제사를 지냈다. 4월에 서역 나라 왕의 사자가 와서 영험한 아교 4냥과 吉光의 털로 만든 갖옷을 바치자 武帝는 받아서 바깥 창고로 넘겼다. 아교와 갖옷의 묘함은 알지 못하고, 서방 나라가 비록 멀기는 하지만 조공으로 바친 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면서, 使者를 머무르게 한 채 돌려보내지 않았다. 한참 후 武帝가 華林園에서 범을 쏘다가 쇠뇌의 시위가 끊어졌는데, 그 사자가 행차를 따라오다가 아교 1푼을 바치자 침을 발라서 시위를 이었다. 황제가 깜짝 놀라면서 ‘별난 물건이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무사 몇 사람을 시켜 함께 마주보고 잡아당기게 하였지만 종일 당겨도 벗겨지지 않았고 시위를 잇기 전과 다름이 없었다. 이 아교는 색이 푸른 것이 마치 벽옥 같았다.”라고 되어 있다. 《博物志》 2에도 이 일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王利器]
활이나 쇠뇌의 끊어진 시위를 이을 수 있다는 아교를 말한다.[역자]
역주9 火布 : 《魏志》 3 〈少帝紀〉에 “景初 3년 西域에서 통역을 거듭하여 와서 火浣布를 바쳤다. 大將軍과 太尉에게 나와서 시험하여 百僚들에게 보여주도록 했다.”라 하였다. 《搜神記》에서 “일찍이 漢나라 때 서역에서 이 옷감을 바쳐왔는데, 중간에 끊어진 지 오래되었다. 魏나라 초에 사람들은 그런 옷감의 존재를 의심하였다. 文帝(曹丕)는 불의 성질이 매섭고 생명을 머금는 기운이 없다고 생각하여, 《典論》을 지으면서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明帝가 즉위하고 《典論》을 바위에 새겨서 종묘 문 밖과 太學에 세우게 하여, 이 주장이 영원히 刊滅되지 않도록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西域에서 그것을 바쳐오자 이 주장은 刊滅되었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라 하였다.[趙曦明]
《抱朴子》 〈內篇 論仙〉에서 “魏 文帝는 많이 읽고 두루 들어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일은 없다고 자부하며, 천하에는 옥을 자를 칼은 없고 불에 타지 않는 옷감도 없다고 하였다. 《典論》을 저술하며 일찍이 이 일을 기술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이 두 가지 물건이 모두 나타나자, 文帝는 탄식을 하면서 이 주장을 지웠다. 일이 반드시 어떨 것이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 아마 이런 일 때문이다.”라 하였다.[王利器]
불에 타지 않는 옷감을 말한다.[역자]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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