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不可避, 亦當忍之, 猶如伯叔兄弟, 酷類先人, 可得終身腸斷, 與之絶耶?
孝
원제元經牧
, 遣往
督事, 郡縣民庶, 競修牋書, 朝夕
, 几案盈積。
書有稱“嚴寒”者, 必對之流涕, 不省取記, 多廢公事, 物情怨駭, 竟以不辦而退:
《예기禮記》에 “〈3년상을 마치고 길을 가다가, 부모와〉 닮은 사람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지고, 〈부모의〉 이름을 들으면 마음이 놀란다.”라고 하였다.
〈마음에〉 느끼고 닿는 바가 있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인데, 만약 조용한 평상시라면 가급적 그 사정을 밝혀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꼭 불가피할 경우에는 참아야 할 것이니, 예를 들어 백부伯父나 숙부叔父 같은 〈선친先親의〉 형제분이 선친을 빼닮았다고 해서 평생 애간장을 태우고 그분들과 절교絶交를 할 수 있겠는가?
또 “글 쓸 때에는 피휘避諱하지 아니하고, 사당에서도 피휘하지 않으며, 임금이 계신 곳에서도 개인적인 피휘는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니 〈선친의〉 이름자를 들었을 경우에도 반드시 상황의 고려가 있어야 하며, 반드시 허둥지둥 당황하면서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하는 것은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양대梁代에 사거謝擧는 명성이 아주 높았지만, 〈부친의〉 휘자諱字만 들으면 반드시 통곡을 하곤 하여 세인들의 비난을 받았다.
또한 장봉세臧逢世라는 이가 있었는데, 장엄臧嚴의 아들로서 학문에 열심이고 행실을 바르게 닦아 집안의 명망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양梁 원제元帝가 〈제위에 오르기 전〉 강주자사江州刺史로 있을 때 〈장봉세臧逢世를〉 건창建昌으로 파견하여 업무를 살피게 하였는데, 군현의 백성들이 앞다투어 문건을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몰려드니 책상에 가득 쌓였다.
이 글들 중에 ‘엄한嚴寒’이라는 말만 나오면 그때마다 그걸 보고 눈물을 흘리느라 제대로 살펴 기록하지도 못하고 공무를 중단하는 일이 많았는데, 사람들 사이에 원망이 생기고 물의가 일자 결국엔 일처리를 못한다는 것으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