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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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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당찮은 揚雄
5. 가당찮은 揚雄
或問揚雄曰:
누가 양웅揚雄에게 물었다.
“吾子少而好賦?”
“그대는 젊을 적에 를 좋아하였지요?”
雄曰:
양웅揚雄이 말했다.
“然。
“그렇소.
, 壯夫不爲也。”
는〉 아이들이 충서蟲書를 파고 각부刻符를 아로새기는 일과 같은 것으로, 어른은 하지 않지요.”
余竊非之曰:
나는 속으로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였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虞舜歌之詩, 周公作》之詠, , 未聞皆在幼年累德也。
임금은 〈남풍南風〉의 를 노래하였고, 주공周公은 〈치효鴟鴞〉의 노래를 만들었으며, 윤길보尹吉甫사극史克의 찬미하는 노래를 지은 자인데, 이들이 모두 젊은 시절에 이 노래들을 지어 이 때문에 인품에 누가 되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공자孔子께서는 “를 배우지 않으면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다.”라고 하셨고, 또 “나라로부터 나라로 돌아온 후에 음악이 바로잡혀서 의 노래들이 제자리를 찾았다.”라고 하셨으며, 효도를 크게 밝히면서 를 인용하여 증명하셨는데, 양웅揚雄이 어찌 감히 이를 무시하는 것일까?
若論, 但知變之而已, 又未知雄自爲壯夫何如也。
시인詩人는 아름다우면서 바른데, 사인辭人는 아름답되 지나치다.”라고 한 말을 논할 것 같으면, 단지 변한다는 것만 알았을 뿐 양웅揚雄 자신이 어른이 되어서 어떻게 될지는 몰랐던 것이다.
, , 怖慴, 不達天命, 童子之爲耳。
극진미신劇秦美新〉을 짓고 망령되이 누각에서 몸을 던졌으며,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 벌벌 떨다가 천수天壽를 다 채우지 못했으니, 〈이런 것은〉 어린아이의 행동일 따름이다.
환담桓譚은 그를 노자老子보다 낫다고 여겼고 갈홍葛洪은 그를 중니仲尼에 견주었으니, 한숨이 나오게 만든다.
이 사람은 단지 산술算術을 좀 알고 음양陰陽을 이해하는 걸 가지고 《태현경太玄經》을 지었는데, 몇몇 사람들이 거기에 현혹된 것일 뿐이다.
其遺言餘行, 孫卿、屈原之不及, 安敢望大聖之?
그가 남긴 말이나 나머지 행동들은 손경孫卿이나 굴원屈原에게조차 미치기 어려운데, 어찌 감히 대성인大聖人의 맑은 먼지를 바라볼 수 있겠는가?
且《太玄》今竟何用乎? 覆醬而已。”
장차 《태현경太玄經》이 결국 어디에 쓰일까 하면, 단지 장독 덮개로나 쓰일 뿐이다.
역주
역주1 或問揚雄曰…壯夫不爲也 : 이 대목은 揚雄의 《法言》 〈吾子〉篇에 나온다.[趙曦明]
역주2 雕蟲篆刻 : 汪榮寶의 《法言義疏》 3에 “아이가 彫蟲篆刻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說文解字》에서 “彫는 무늬를 새긴다.”는 뜻으로 “篆은 붓을 끌어다 쓴다.”는 뜻으로 풀이하였고, 蟲과 刻은 각각 秦代 八書體의 하나인 蟲書와 刻符를 뜻한다. 〈說文解字序〉에서 “學童이 17세 이상이 되면 처음으로 시험을 보는데, 籒書 9천 자를 암송하면 小史가 될 수 있고, 또 八書體의 시험도 본다.”라 하였다. 八書體 중 蟲書와 刻符가 가장 섬세하고 어려운 書體여서 學童들이 가장 힘을 많이 쏟으므로, ‘童子雕蟲篆刻’이라고 하는 것이다. 문장들 중 賦를 書體 중의 蟲書, 篆刻과 같다고 한 것은, 노력에 비해 실용성이 떨어져 小技는 될지언정 大道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揚雄은 〈自序〉에서 “나는 賦를 짓는 일이 당시의 淳于髡이나 優孟 같은 광대들이나 하는 짓이라 法度가 담겨 있지 않고, 현인군자가 詩賦의 바른 길이라 여겨, 그만두고 다시는 賦를 짓지 않았다.”라고 했다.[趙曦明]
역주3 南風 : 《禮記》 〈樂記〉에서 “옛날 舜임금이 五絃琴을 만들어 〈南風〉 詩를 노래했다.”라 하였고, 《孔子家語》 〈辯樂解〉에서는 “옛날 순임금이 오현금을 타면서 〈南風〉 詩를 만들었는데, 그 내용은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들의 노여움을 풀어줄 수 있겠구나. 남풍의 시의적절함이여, 우리 백성들의 재물을 늘여줄 수 있겠구나.’라는 것이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4 鴟鴞(치효) : 〈毛詩序〉에서 “〈鴟鴞〉는 周公이 난을 구하기 위하여 지은 노래인데, 成王이 周公의 뜻을 알지 못하자 周公이 이에 시를 지어 成王에게 주었다.”라 했다.[趙曦明]
역주5 鴟鴞 : 치효
역주6 吉甫史克 雅頌之美者 : 〈毛詩序〉에서 “〈大雅〉 중의 〈嵩高〉, 〈蒸民〉, 〈韓奕〉 등은 모두 吉甫가 宣王을 찬미한 시이고, 〈駉〉은 僖公을 기린 것이다. 僖公이 伯禽의 법을 잘 지키는 것에 대해 魯나라 사람들이 존경하자, 季孫行父가 周나라에 명을 청하여 史克이 이 頌歌를 지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7 不學詩 無以言 : 《論語》 〈季氏〉篇에 나온다. 《漢書》 〈藝文志 詩賦略〉에서 “옛날 제후나 卿大夫들은 이웃 나라들과 접촉할 때 微言으로 서로를 떠보았고, 또 예를 갖추어 인사할 때에 반드시 詩를 읊어 그 뜻을 넌지시 전하였는데, 대개 그렇게 함으로써 어진지 그렇지 않은지를 구별하고, 그 나라의 성쇠를 살폈다. 그래서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시를 배우지 않으면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다.’라 하셨던 것이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8 自衛返魯…雅頌各得其所 : 《論語》 〈子罕〉篇에 나오는데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衛나라로부터 魯나라로 돌아온 후에 音樂이 바로잡혀서 雅와 頌이 각기 제자리를 찾았다.’라고 하셨다.” 《史記》 〈孔子世家〉에서는 “옛날에 詩가 3천여 편 있었는데, 孔子에 이르러 중복되는 것을 버리고 禮와 義에 따라 베풀 수 있는 것만 취하여, 위로는 契과 后稷으로부터 채집하여 따왔고, 중간에는 殷나라와 周나라의 흥성하던 시절을 서술하였으며, 〈마지막의〉 幽王과 厲王 때의 부족한 시절에는 이부자리[衽席] 사이의 일에서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關雎〉의 노래는 風의 시작이 되었고, 〈鹿鳴〉은 小雅의 시작이 되었으며, 〈文王〉은 大雅의 시작이 되었고, 〈淸廟〉는 頌의 시작이 되었다.’라고 한다. 305편을 孔子는 모두 현악기에 맞추어 노래하면서, 韶, 武, 雅, 頌 등의 음률에 맞추려고 하였으니, 이로부터 비로소 禮樂을 서술할 수 있게 되었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9 大明孝道 引詩證之 : 《孝經》을 말한 것이다.[趙曦明]
孔子가 曾子에게 孝道를 진술하여 《孝經》을 지었는데, 각 章 끝에 모두 詩를 인용하여 증명하였다.[王利器]
역주10 詩人之賦麗以則 辭人之賦麗以淫 : 이 부분은 《法言》 〈吾子〉에 나온다.[趙曦明]
汪榮寶의 《法言義疏》에서 “詩人의 賦란 《詩經》 六義 중의 하나인 賦를 말하며, 바로 《詩經》의 詩를 뜻한다.”라 하였고, 또 “詩人의 賦가 아름다우면서 바르다는 것은, 옛날의 詩들이 감정을 나타내면서도 올바름에 그치는 것을 훌륭한 것으로 여겼다는 말이다.”라 하였다. 《漢書》 〈藝文志〉의 顔師古 注에서 “辭人이란 후대의 글 짓는 사람을 일컫는다.”라 하였고, 또 “辭人의 賦가 아름답되 지나치다는 것은, 오늘날 賦 작품들이 과도한 형용을 훌륭한 것으로 여긴다는 말이다.”라 하였다. ‘淫’은 지나치다는 뜻이다.[王利器]
역주11 劇秦美新 : 揚雄이 지은 文章으로 《文選》에 나온다.[趙曦明]
李善의 注에 인용된 李充의 《翰林論》에서 “揚雄은 秦나라의 횡포를 비판하고 新나라의 훌륭함을 칭송하였는데, 이는 그 잘잘못을 따지고 우열을 비교한다는 뜻이다.”라 하였다.[王利器]新은 西漢 말에 王莽이 漢을 찬탈하고 세운 나라이다. 본편 1 주 19) 참조.[역자]
역주12 妄投於閣 : 《漢書》 〈揚雄傳〉에서 “王莽 때 劉歆과 甄豊이 모두 上公이 되었다. 王莽은 符命으로써 스스로 皇帝가 되었지만 그 〈符命의〉 근원을 끊고 싶었는데, 甄豊의 아들 甄尋과 劉歆의 아들 劉棻이 다시 符命을 바쳤다. 〈발끈한 王莽은〉 甄豊 부자를 주살하고 劉棻은 먼 곳으로 보내버렸다. 글에 연루된 사람들은 직접 참여하지 않은 이들도 잡아들였다. 당시 揚雄은 天祿閣에서 도서를 교정하고 있었는데, 獄事를 담당하는 使者가 와서 揚雄을 데려가려 하자, 揚雄은 벗어나기 어렵다고 보고서 스스로 천록각 위에서 몸을 던져 거의 죽을 뻔하였다. 王莽이 그 소식을 듣더니 ‘揚雄은 본래 이 일과는 무관한데,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이 되었는가?’라 하고서 그 까닭을 물어보니, 劉棻이 일찍이 揚雄에게서 奇字(六體書의 하나)를 배운 적이 있어 揚雄이 상황을 잘 모르고 그런 것이라 함에, 문책하지 말도록 명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그 일을 놓고서 ‘오직 寂寞해서 스스로 건물에서 뛰어내렸고, 淸靜해서 符命을 만들어내었다.’라는 얘기를 했다.”라 하였다.[趙曦明]
揚雄이 〈解嘲〉에서 “오직 寂寞하게 德의 집을 지키고, 淸淨하게 神의 뜰에서 노닌다.”라고 하였는데, 서울에서 이 말을 근거로 揚雄을 풍자하였던 것이다.[王利器]
역주13 周章 : 허둥지둥하다. 본서 제6 〈風操〉篇 37 주 4) 참조.[역자]
역주14 桓譚以勝老子 : 《漢書》 〈揚雄傳〉에 의하면, 大司空인 王邑과 納言인 嚴尤가 桓譚에게 묻기를 “그대가 일찍이 揚雄의 책을 칭찬하였는데, 후세까지 전해질 수 있겠소?”라고 하자, 桓譚이 대답하기를 “반드시 전할 것이오. 〈후세에는〉 그대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살펴볼 것이오.…이제 揚雄의 책은 글의 뜻이 지극히 심오하고 논리가 聖人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니, 만약 좋은 임금을 만나게 된다면 다시 그 지혜롭고 현명함이 살펴지게 될 것이고, 훌륭하다는 칭송은 분명 諸子들을 뛰어넘을 것입니다.”라 하였다고 한다.[趙曦明]
桓譚은 《新論》에서 “《太玄經》은 수백 년이 지나도 반드시 전해질 것이다. 세상에서 다들 옛 것을 높이고 지금 것은 낮추므로 경시하는 것이다. 만약 정말 좋은 일을 만나게 된다면 분명 《太玄經》이 五經 다음이 될 것이다.”라고 칭찬하였고, “老子는 그 마음이 玄遠하여 道와 합치한다.”라고 하였다.[吳承仕]
역주15 葛洪以方仲尼 : 《晉書》 〈葛洪傳〉에서 “葛洪은 字가 稚川이고 丹陽 句容 사람이다. 自號를 抱朴子라 하였는데, 이를 책 이름으로 삼았다.”라 하였다. 이 책의 〈尙博〉篇에서 “세상에서 다들 오래된 옛날은 신비하고 귀하게 여기고, 동시대의 것은 업신여기고 천하게 여기니, 비록 세상에 유익한 책이라 할지라도 전대에서 전해진 글만 못하다고 한다. 그래서 仲尼는 당시에 존중받지 못했고, 《太玄經》도 동시대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했다.”라고 하였다.[趙曦明]
《抱朴子》 〈吳失〉篇에서 “孔子, 墨子의 道가 예전에는 시행된 적이 없었고, 孟軻와 揚雄 역시 곤경에 처하였으니, 덕이 있어도 때를 만나지 못함은 본래 그 유래가 있다.”라고 한 것도, 葛洪이 揚雄을 仲尼에 견준 증거이다.[王利器]
역주16 直以曉算術 : 《漢書》 〈藝文志 數術略〉에 許商의 《算術》 26卷과 杜忠의 《算術》 16卷이 있다. 오늘날 《九章算術》이 세상에 전한다. ‘直’은 ‘단지[特]’의 뜻이다.[王利器]
역주17 陰陽 : 《漢書》 〈藝文志 諸子略〉에서 “陰陽家 부류는 아마도 天文 관서인 羲和之官에서 나온 듯하며, 하늘을 받들어 따르면서 日月星辰을 살펴 책력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때를 알려주는 일을 하는데, 이것이 그들이 잘하는 사항이다. 〈이 이론에〉 구속된 자가 하는 것을 보면, 금기에 얽매이고 술수에 사로잡혀, 사람이 할 일을 내던지고 귀신에게 다 맡겨버린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18 太玄經 : 揚雄의 傳에서 “經典은 《周易》만 한 것이 없다고 여겨 《太玄經》을 지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19 數子爲所惑耳 : 原文에는 ‘爲數子所惑耳’로 되어 있지만, 向宗魯의 견해에 따라 고쳤다.[王利器]
數子는 桓譚과 葛洪을 가리키므로, 문맥상 向宗魯와 王利器의 견해가 옳다.[역자]
역주20 淸塵 : 《文選》에 수록된 盧子諒의 〈贈劉琨詩幷書〉에서 “스스로 맑은 먼지[淸塵]를 받든다.”라 하였고, 李善의 注에 “楚辭에 ‘赤松子의 맑은 먼지[淸塵]에 대해 들었다’라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길을 가노라면 먼지가 나게 마련이므로, 존귀한 분을 직접적으로 지칭하지는 못하고 먼지를 빌어서 말한 것이다. 맑다고 함은 존중의 뜻이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21 不啻(시)覆醬瓿(부)而已 : 揚雄의 傳에서 “劉歆이 揚雄에게 ‘쓸데없이 사서 고생을 하십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봉급을 받아도 여전히 《周易》의 의미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데, 또 어떻게 玄의 세계를 밝히신다는 것입니까? 저는 後人들이 그걸로 장독이나 덮을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자, 揚雄은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라 하였다. 顔師古의 注에 의하면, 瓿는 音이 ‘부’이고 작은 항아리라는 뜻이다.[趙曦明]
역주22 : 시
역주23 : 부

안씨가훈(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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