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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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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孤陋한 학자들
見有閉門讀書, , , 謬誤差失者多矣。
춘추곡량전穀梁傳》稱:“공자우公子友거나挐相搏, 。’”
孟勞者, 之寶刀名,
近在북제時, 有강중악姜仲岳謂:“者, 公子左右, 姓, 多力之人, 爲國所寶。” 與吾
, 當世碩儒, 助吾證之, 然而伏。
云:“영제靈帝殿柱題曰:‘堂堂乎자장,
전봉郞。’” , 偶以四言, 경조인京兆人전봉田鳳也。
有一才士, 乃言:“時장경조張京兆전랑田郞二人皆堂堂耳。”
聞吾此說, 初大驚駭, 其後尋焉。
강남江南有一, 讀誤本, 解“蹲鴟, 芋也”, 乃爲字。
人饋羊肉, 答書云:“蹲鴟。”
擧朝驚駭, 不解, 久後, 方知如此。
之世, 在時, 有一才學중신重臣, 新得, 而頗, 誤전욱顓頊字, 전욱當爲許錄反, 錯作許緣反。
遂謂朝士言:“從來謬音專旭, 當音專耳。”
此人先有高名, 信行, 期年之後, 更有碩儒, 苦相究討, 方知誤焉。
한서漢書왕망전王莽贊云:聲, 餘分閏位。” 謂以僞亂眞耳。
昔吾嘗共人談書, 言及왕망王莽形狀。
有一俊士, 自許史學, 甚高, 乃云:“왕망王莽非直鴟目虎吻, 亦紫色蛙聲。”
又《예악지禮樂志》云:“給挏馬酒。” 이기李奇注:“以馬乳爲酒也,
乃成。”
二字竝從手, 揰挏, 此謂之, 今爲亦然。
向學士又以爲種桐時, 태관太官釀馬酒乃熟, 其孤陋遂至於此。


18. 孤陋한 학자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묻기를 좋아하면 〈아는 것이〉 많아진다.”고 하였으며,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혼자 배워서 친구가 없으면 고루孤陋하고 견문見聞이 좁다.”고 하였으니, 대개 모름지기 갈고 닦으면서 서로 계발해야 할 것이다.
문을 닫아걸고 책을 읽어서 선입견을 스승 삼아 자기가 옳다고 여기다가 많은 사람들이 널리 앉아 있는 자리에서 오류와 착오를 범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 일컫기를 “공자우公子友거나莒拏와 서로 밀치며 싸우자, 좌우의 사람들이 ‘맹로孟勞〈로 죽이라〉!’ 하고 소리쳤다.” 하였다.
맹로孟勞나라 보검의 이름이니 《광아廣雅》에도 보인다.
그런데 근래 북제北齊에 있을 때 강중악姜仲岳이란 이는 “맹로孟勞공자公子의 측근으로 성이 이고 이름이 이니, 힘이 장사라 온 나라에서 보배로 여겼다.”고 하면서 나와 끈질기게 다투었다.
그 무렵에 청하군淸河郡의 군수 형치邢峙는 당대의 대학자인데 그가 나를 도와 이를 증명해주고 나서야 얼굴을 붉히면서 승복하였다.
또 《삼보결록三輔決錄》에 이르기를 “영제靈帝전각殿閣 기둥에 ‘당당하도다 자장子張이여!
경조인京兆人 전봉田鳳이 그러하리니.’라고 써놓았다.”고 하였으니, 대개 《논어論語》를 인용하여 사언四言으로 대우對偶를 맞추어 경조京兆 사람 전봉田鳳을 평가한 것이었다.
어떤 재자才子가 있어 이를 두고 말하기를 “당시에 장경조張京兆전랑田郞 두 사람이 다 위풍당당하였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설명해주는 말을 듣자 그는 처음에는 크게 놀라더니, 나중에는 이내 이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뉘우쳤다.
강남江南의 어떤 세도가가 오류가 있는 판본으로 〈촉도부주蜀都賦注〉를 읽었는데 “준치蹲鴟란 토란[芋]이다.”라고 풀이한 데서 〈‘’자가〉 그만 ‘’자로 되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양고기를 선물하자 답서에 이르기를 “외람되이 토란[蹲鴟]을 받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온 조정이 다 놀랐으나,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이해를 못하다가 한참 뒤에 짐작해서 비로소 이와 같은 줄을 알게 되었다.
북위北魏 시기에 낙양洛陽에 있을 때 재학才學을 겸비한 어떤 중신重臣이 새로 《사기음史記音》을 얻었는데, 오류가 많아서 ‘전욱顓頊’이라는 반절反切을 잘못 써놓아 ‘’이 ‘’와 ‘’의 반절反切로 쓰였어야 하는데 ‘’와 ‘’의 반절反切로 잘못 쓰여 있었다.
마침내 조신朝臣들에게 말하기를 “종래에는 ‘전욱專旭’과 같은 음으로 잘못 읽었으나 ‘전현專翾’과 같이 읽어야 마땅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사람이 일찌감치 명성을 떨치고 있었으므로 일제히 그 말을 믿고 따라 읽다가 1년이나 지난 뒤에 다른 대학자가 끈덕지게 연구, 토론하고서야 비로소 이것이 오류였음을 알게 되었다.
한서漢書》 〈왕망전王莽傳에 이르기를 “순정純正치 못한 색깔과 순정純正치 못한 소리이니 여분의 순정純正치 못한 지위이다.[紫色䵷聲 餘分閏位]”라고 하였으니, 이는 〈모두가 비정통의 왕조를 형용한 것으로써〉 가짜가 진짜를 어지럽혔음을 일컬은 말이다.
과거에 언젠가 내가 여러 사람들과 책 얘기를 하다가 화제가 왕망王莽의 모습에 이르렀다.
출중한 선비 하나가 스스로 사학史學에 정통했노라 자부하였고 명망도 아주 높았는데, 말하기를 “왕망王莽은 올빼미의 눈에 범의 입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낯빛은 자주색이고 목소리는 개구리 소리였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또 《한서漢書》 〈예악지禮樂志〉에 “태관太官에게 동마주挏馬酒를 주었다.”고 하였는데, 이기李奇는 주석을 달기를 “마유馬乳로 만든 술로, 위아래로 흔들면[揰挏] 만들어진다.”고 하였다.
충동揰挏 두 글자가 모두 손수변[扌]을 따르며, 여기서 충동揰挏이란 세게 부딪치며 위아래로 흔듦을 말한 것으로, 지금도 낙주酪酒를 만들 때는 역시 그렇게 한다.
전번의 그 학사學士는 또 오동을 심을[種桐] 때에 태관太官이 빚은 낙주酪酒가 그제야 익는다고 여겼으니 그 고루孤陋함이 마침내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태산太山양숙羊肅 역시 학문으로 칭송되는 이였으나 반악潘岳를 읽고 “ 문왕文王 시절의 약지조弱枝棗”라는 구절에서 〈‘’자를〉 ‘지팡이[杖策]’라고 할 때의 ‘’자인 줄 알았으며, 《세본世本》에 보이는 “황제黃帝사관史官 용성容成이 역사[歷]를 서술하였다.”는 구절에서 ‘’자를 ‘디딜방아와 맷돌[碓磨]’이라고 할 때의 ‘’자인 줄 알았다.


역주
역주1 好問則裕 : 仲虺가 훈계한 글이다.[趙曦明]裕는 見識이 많음을 뜻한다. 《書經》 〈仲虺之誥〉篇에 보이는 구절이다.[역자]
역주2 獨學而無友 則孤陋而寡聞 : 《禮記》 〈學記〉篇의 글이다.[趙曦明]
역주3 切磋 : 《詩經》 〈衛風 淇奧〉에 “끊는 듯 가는 듯.[如切如磋]”이라 하였으니, 《爾雅》 〈釋訓〉에 “끊는 듯 가는 듯.[如切如磋]이란 배움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郭璞은 이에 대하여 “뼈와 상아는 모름지기 ‘끊어내고 갈아야[切磋]’ 그릇이 되며, 사람은 모름지기 배우고 물어야 덕을 완성시킨다.”고 하였다.[王利器]
끊어내고 갈다.[역자]
역주4 相起明 : 《論語》 〈八佾〉篇에 보이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起] 자는 商이다.”라는 구절의 何晏(魏)의 《集解》에는 “包氏에 따르면, 孔子는 子夏야말로 내 뜻을 환히 밝혀낼[發明] 수가 있다고 말하였다.”고 하였다.[王利器]
서로가 일깨워 밝혀내다.[역자]
역주5 師心自是 : 《莊子》 〈齊物論〉에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成心(선입견)을 좇아 스승으로 삼는다면[隨其成心而師之] 누군들 어찌 장차 스승 삼을 이가 없겠느냐?”라고 하였다.[盧文弨]
선입견을 스승 삼아 자기가 옳다 여기다.[역자]
역주6 稠人廣坐 : 《史記》 〈灌夫傳〉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널리 퍼진 무리들[稠人廣衆] 가운데서 지위 낮은 인재를 추천하고 장려하였으니, 이 때문에 그곳에 선비들이 많아졌다.”고 하였다.[王利器]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널리 나앉다.[역자]
역주7 左右呼曰 孟勞 : 이는 僖公 元年에 일어난 일이다.[趙曦明]
淸나라의 朱亦棟의 《群書札記》 10에 “생각건대 ‘孟勞’라는 두 글자는 ‘反切語’이니 ‘刀’의 뜻이다. 이는 좌우에 있던 사람들의 隱語인바, 바로 당시의 반절음이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8 亦見廣雅 : “孟勞는 칼[刀]이다.”라는 말이 《廣雅》 釋器에 보인다.[趙曦明]
역주9 苦諍 : 끈덕지게 다투다. 끈덕지게 충고하다.[역자]
역주10 淸河郡守邢峙 : 《北齊書》 〈儒林傳〉에 “邢峙는 字가 士峻으로, 河間郡 鄚縣 사람이다. 《三禮》와 《春秋左氏傳》을 꿰뚫고서 皇建 연간 초기에 淸河太守가 되어 은혜 넘치는 정치를 베풀었다.”고 하며, 《隋書》 〈地理志〉에 “冀州에 淸河郡이 있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11 : 난
역주12 三輔決錄 : 《隋書》 〈經籍志〉에 “《三輔決錄》 7권은 漢代의 太僕 趙岐의 편찬으로, 摯虞가 주석하였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13 京兆 : 《漢書》 〈百官公卿表〉에 “右扶風과 左馮翊, 그리고 京兆尹, 이 셋이 三輔를 이룬다.”고 하였다.[趙曦明]
秦나라는 전국을 통일하자 郡縣制를 실시하며 首都 咸陽에 內史를 설치하고 京畿 各縣을 관할하였으니, 郡縣에 속하지 않는 中央政府의 직속 행정단위이자 직책이었다. 漢 武帝 때에는 이 內史를 京兆尹과 右扶風, 左馮翊으로 나누어 三輔라 일컬은 것이니, 南北朝 시기 이래로는 京兆郡을 설치하기도 하였다.[역자]
역주14 蓋引論語 : 《論語》 〈子張〉篇에 “당당하도다 子張이여! 함께 인덕을 행하기는 어려우리라.”고 하였다.[周法高]
역주15 : 《初學記》 11에 인용된 《三輔決錄》의 주석에 “田鳳은 尙書郎으로 용모와 규범이 단정하므로 상주를 올릴 일로 조정에 들어오면 靈帝가 눈길을 주었다.[目送之]”고 하였다.[趙曦明]
눈여겨보다. 평가하다.[역자]
역주16 媿悔 : 창피해하며 뉘우치다.[역자]
역주17 權貴 : 세도가, 권세와 지위가 높은 사람, 혹은 실력자를 이른다.[역자]
역주18 蜀都賦注 : 李善의 《文選注》에 “左思가 〈三都賦〉를 완성하자, 張載가 이를 위해 〈魏都賦〉를 주석하고, 劉逵는 이를 위해 〈吳都賦〉와 〈蜀都賦〉를 주석하였다.”고 하였다.[趙曦明]
역주19 : 그 글자의 篆文의 ‘(양)’자는 ‘芋’자와 자형이 비슷하여 잘못 쓰기가 쉽다.[郝懿行]
역주20 損惠 : 외람되이 은혜를 입다. 분수에 넘친 은혜를 입다.[역자]
역주21 事義 : 본서 제9 〈文章〉篇 8에 근거하자면 顔之推가 사용하는 事義라는 어휘는 《文心雕龍》 〈事類〉篇에서 일컫는 ‘事類’나 〈文選序〉에서 일컫는 “소재[事]는 깊은 사색에서 나오고, 그 의미[義]는 아름다운 修辭로 귀결된다.”에서의 事義와 같다.[王利器]
이야깃거리와 그 의미, 혹은 文章의 思想內容을 이른다.[역자]
역주22 尋迹 : 짐작해서 파악하다. 다시 생각해보다.[역자]
역주23 元氏 : 《魏書》 〈高祖孝文皇帝紀〉에 의하면 “太和 18년 11월 代에서 洛陽으로 천도하자, 21년 正月 조칙을 내려 拓拔氏를 元氏로 고쳤다.”고 하였다.[趙曦明]
《太平廣記》에 의하면 元氏가 元魏로 쓰여 있다.[王利器]
元魏란 곧 北魏이다. 魏 孝文帝는 洛陽으로 천도하자 본디 姓인 拓跋을 元으로 고쳤으므로 北魏를 元魏라고도 불렀다.[역자]
역주24 洛京 : 洛陽이다.[역자]
역주25 史記音 : 《隋書》 〈經籍志〉에 의하면 “《史記音》 3卷은 梁나라 輕車都尉參軍 鄒誕生의 편찬이다.”라고 하였다.[趙曦明]
역주26 紕繆 : 《禮記大傳》의 주석에 의하면 “紕繆는 錯誤[錯]와 뜻이 같다.”고 하였다.[王利器]
역주27 : 反切, 혹은 反切語이다. 두 글자의 독음 중 앞자에서는 자음을, 뒷자에서는 모음을 서로 합하여 한 글자의 독음을 표시하는 전통적인 한자의 注音方法으로 ‘翻’, 혹은 ‘反切’이라고도 말한다.[역자]
역주28 : 현
역주29 翕然 : ‘일제히’의 뜻이다.[역자]
역주30 紫色䵷(와)聲 餘分閏位 : 《太平廣記》나 《類說》에는 ‘䵷’를 인용하며 ‘蛙’라고 쓰고 있으니 같은 字이다. 《續家訓》 7에 “紫色은 〈間色이니〉 純正치 못한 색이요, 개구리 소리[䵷聲]란 純正치 못한 소리요, 여분의 지위[閏位]란 純正치 못한 지위이다. 그러므로 始皇의 秦이니, 後魏니, 朱梁이니 하는 나라는 모두가 여분의 지위[閏位]에 해당한다.”라고 하였다.[王利器]
王莽의 新나라가 비정통임을 표현한 것이다.[역자]
역주31 : 와
역주32 名價 : ‘명망’의 뜻이다.[王利器]
역주33 太官 : 《漢書》 〈百官公卿表〉에 보이는 “少府에 예속된 관리로 太官이 있다.”는 구절의 주석에 의하면 “太官은 식사를 관장한다.”고 하였다.[盧文弨]
역주34 揰挏(충동) : ‘위아래로 밀어치다.[上下推擊]’는 뜻이다. 《類說》에 따르면 ‘揰’은 ‘撞’으로도 쓰인다.[王利器]
역주35 揰挏 : 충동
역주36 撞擣 : 세게 부딪치다.[역자]
역주37 挺挏 : 위아래로 흔들다.[역자]
역주38 酪酒 : 《漢書》 〈百官公卿表〉에 보이는 “武帝 太初 元年에 家馬의 이름을 고쳐 挏馬라고 불렀다.”는 구절에 대한 如淳의 주석에 의하면 “지금도 梁州에서는 馬酪을 가리켜 馬酒라고 한다.”고 하였다.[趙曦明]
馬乳酒, 말젖으로 만든 술이다.[역자]
역주39 太山羊肅 : 太山의 羊肅이다. 《北齊書》 〈文苑傳序〉에 ‘前兗州長史 羊肅’이라는 말이 보인다. 太山의 羊侃이라는 사람이 본서 제6 〈風操〉篇에 보이며, 太山의 羊曼이라는 사람도 본서 제17 〈書證〉篇에 보이므로, 이들과 서로 일족이었던 듯하다.[역자]
역주40 潘岳賦 : 晉代의 潘岳은 字가 安仁으로 〈閒居賦〉를 지었으니, 《文選》에 보인다.[趙曦明]
역주41 周文弱枝之棗 : 《文選》 〈閒居賦〉에 보이는 李善의 注에 의하면 “《西京雜記》에 이르기를 ‘上林苑에는 弱枝棗가 있었다.’ 하며, 晉나라 郭義恭의 《廣志》에 의하면 ‘周 文王 때에는 弱枝棗가 있었는데 몹시 맛이 좋았으므로 사람들이 따가지 못하도록 금지시키며 苑中에 나무를 심은 것이었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李周翰은 이에 대하여 “周 文王 때에 弱枝棗樹가 있었는데 맛이 몹시 좋았다.”고 주석하였다.[王利器]
역주42 世本 : 《漢書》 〈藝文志〉에 보이는 “《世本》은 모두 15篇이다.”라는 구절의 주석에 의하면 “고대 史官이 黃帝 이래로 春秋시대의 諸侯와 大夫에 이르기까지 기록한 책이다.”라고 하나, 생각건대 지금은 전하지 않으며 여러 서적에 인용된 구절이 있을 뿐이다.[趙曦明]
역주43 容成 : 《世本》의 注에 의하면 “容成은 黃帝의 신하이다.”라고 하였다.[趙曦明]
房中術에 뛰어났던 고대의 신선이다. 《列仙傳》에 그 행적이 보인다.[역자]
역주44 以歷爲碓(대)磨之磨 : 段玉裁에 의하면 “古書의 한자에는 假借字가 많다. 《世本》은 ‘磿’을 ‘歷’자로 대신 쓰고 있어 이런 오류를 낳게 된 것이다. 고서에서 ‘磿’과 ‘歷’은 통용자로 독음이 모두 ‘력(郞擊切)’이다.”라고 하였다. ‘碓’는 ‘디딜방아[舂具]’이며, ‘磨’는 《說文解字》에 ‘䃺(마)’로 쓰여 있으니 ‘맷돌[石磑]’의 뜻이다.[趙曦明]
역주45 : 대

안씨가훈(1)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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