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顔氏家訓(1)

안씨가훈(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안씨가훈(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1. 江南의 文學(2) - 蕭慤의 詩
, 상황후上黃侯之子,
嘗有云:“芙蓉露下落, 楊柳月中疎。” 時人未之賞也。
, 宛然在目。
영천순중거荀仲擧,
제갈한諸葛漢, 亦以爲爾, 而之徒,


21. 江南의 文學(2) - 蕭慤의 詩
난릉蘭陵소각蕭慤 왕실 상황후上黃侯의 아들로서 시를 잘 지었다.
일찍이 〈추시秋詩〉에서 “연꽃에 이슬 내리고, 버드나무 달빛 속에 성글다.”라 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은 그 훌륭함을 채 알아보지 못하였다.
나는 그 의경意境이 한가로우면서도 눈앞에 완연한 것이 좋았다.
영천潁川순중거荀仲擧낭야琅邪제갈한諸葛漢 역시 그렇다고 생각했으나, 노사도盧思道 등은 내내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역주
역주1 蘭陵 : 옛터는 지금의 山東省 嶧縣 동쪽 50里 되는 곳이다.[王利器]
역주2 蕭慤(각) : 《北齊書》 〈文苑傳〉에서 “蕭慤은 字가 仁祖이고, 梁 上黃侯 蕭曄의 아들이다. 天保(550~559) 年間에 北齊로 들어와 武平(570~576) 年間에 太子洗馬가 되었다. 일찍이 가을밤에 시를 지어 云云 하였는데, 知音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3 : 각
역주4 工於篇什(집) : 《隋書》 〈經籍志〉에 “記室參軍 《蕭慤集》 9卷”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邢邵의 〈蕭仁祖集序〉에서 “蕭慤의 문장은 깎아 다듬은 부분이 간간이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옛날 潘岳과 陸機는 궤를 나란히 하며 建安의 시풍을 따르지 않았고, 顔延之와 謝靈運은 소리를 모아서 마침내 太原의 기풍을 변혁하였다. 漢代로부터 晉에 이르면서 〈작품의〉 취향은 오히려 잘 어울리지 못했고, 江北과 江南은 구상과 형식이 본래 다를 수밖에 없었다.”라 하였다.[王利器]
篇什은 詩歌를 뜻한다.[역자]
역주5 : 집
역주6 秋詩 : 《全漢三國晉南北朝詩》 《全北齊詩》에 蕭慤의 이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詩題는 〈秋思〉로 되어 있다.[역자]
역주7 嘗有秋詩云…宛然在目 : 宛然在目은 〈詩句가 그려내는 意境이〉 눈앞에 완연하다는 뜻이다.[역자] 《苕溪漁隱叢話》 後9에서 皮日休의 말을 인용하여 “北齊에서 蕭慤의 ‘연꽃에 이슬 내리고, 버드나무 달빛 속에 성글다.[芙蓉露下落 楊柳月中疏]’라는 詩句를 칭송하였는데, 孟浩然의 시에도 ‘옅은 구름이 은하수에 희미하고, 가랑비가 오동나무에 떨어진다.[微雲淡河漢 疏雨滴梧桐]’라는 구절이 있다.…이는 옛사람과 티끌만 한 것을 놓고서 이기려고 다툰 것이다.”라 하였다. 皮日休의 말은 《孟亭記》에 나온다. 尤袤의 《全唐詩話》 1에도 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許顗의 《許彦周詩話》에는 “六朝詩人의 시는 숙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연꽃에 이슬 내리고, 버드나무 달빛 속에 성글다.’의 경우 詩句의 단련이 이 정도에 이르렀으니, 唐代 이래로 이에 미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韓愈가 ‘齊‧梁에서 陳‧隋에 이르기까지 작품들은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에 대해 내가 감히 논박하지는 못하겠지만 감히 따르지도 못하겠다.”라고 하였다. 《朱子語類》 140에서는 “누군가 묻기를 ‘李白이 「맑은 물에서 연꽃이 피어나니, 자연스럽고 꾸밈이 없네.[淸水出芙蓉 天然去雕飾]」라고 한 것에 대해, 이전 시인들 중에 칭송한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습니까?’라고 하기에 ‘자연스러운 것은 좋지요. 또 「연꽃에 이슬 내리고, 버드나무 달빛 속에 성글다.」라 한 것 같은 경우 더 훌륭하지요.’라 하였다.”라 하였다. 李東陽의 《麓堂詩話》에서는 “ ‘연꽃에 이슬 내리고, 버드나무 달빛 속에 성글다.’가 무슨 깊은 뜻이 있겠나? 그냥 詩家語일 뿐이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8 蕭散 : 《文選》에 수록된 謝玄暉의 〈始出尙書省〉에서 “이때를 틈타 한가로이 지내며, 깊은 계곡 바닥에 낚시나 드리우리.[乘此終蕭散 垂竿深澗底]”라고 한 것에 대한 李周翰의 注에서 “蕭散은 隱逸하겠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또 江文通의 〈雜體詩〉 30首 중 “얽매인 것들을 잊을 수만 있다면, 훨훨 잡념들을 털어버릴 수 있겠건만.[直置忘所宰 蕭散得遺慮]”이라고 한 것에 대한 李延濟의 注에서 “蕭散은 비우고 멀리한다는 뜻이다.”라고 했다.[王利器]
蕭散은 욕심이나 잡념 따위를 다 떨어내어 마음이 한가롭고 고요한 경지를 뜻한다.[역자]
역주9 潁(영)川荀仲擧 : 北齊의 文士이다. 《北齊書》 〈文苑傳〉에서 “荀仲擧는 字가 士高이고 潁川 사람이다. 梁에 벼슬을 하여 南沙令이 되어서 蕭明을 따르다가 寒山에서 붙잡혔는데, 長樂王 尉粲이 그를 정중하게 예우하였다. 尉粲과 함께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다가 尉粲의 손을 뼈에 닿을 만큼 깨물었다. 顯祖가 그걸 알고서 荀仲擧에게 곤장을 100대 때렸다. 누군가 그 까닭을 묻자, 대답하기를 ‘내가 어떻게 알겠소? 당시에는 총채인 줄로만 알았소.’라고 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10 : 영
역주11 琅邪(낭야)諸葛漢 : 北齊의 文士이다. 《北史》 〈文苑傳 下〉에서 “諸葛潁은 字가 漢이고 丹楊 建康 사람이다. 文集 20권이 있다.”라 하였다. 《隋書》에도 傳이 있다. 여기서 琅邪라 한 것은, 아마도 琅邪郡에서 천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王利器]
역주12 琅邪 : 낭야
역주13 盧思道 : 北齊의 文士이다. 《北史》 〈盧子眞傳〉에 “元孫 思道는 字가 子行이고 재주와 학문이 모두 두드러졌지만, 사소한 행실에 조심하지 않고 남들을 얕보고 업신여기기를 잘했다. 文宣帝가 붕어하자 조정의 인사들은 각기 挽歌 10수씩을 지어서, 그중 훌륭한 것을 채택하여 사용하기로 하였다. 魏收 등은 한두 수밖에 채택되지 못했는데 盧思道 혼자만 8수나 채택되어, 당시 사람들은 그를 八米盧郞이라 불렀다.”라 하였다.[趙曦明] 《隋書》에도 그의 傳이 있다.[王利器]
역주14 雅所不愜(협) : 여기서 雅는 ‘평소, 평상시’의 뜻이다. 愜은 ‘만족하다, 흡족해하다’는 뜻이다.[역자]
역주15 : 협

안씨가훈(1)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