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자식 교육의 成功과 失敗 - 王僧辯과 어떤 學士
왕승변王在
분성城時, 爲三千人將, 年踰四十, 少不如意, 猶捶撻之, 故能成其勳業。
時, 有一
, 聰敏有才, 爲父所寵, 失於敎義, 一言之是, 徧於
, 終年譽之;一行之非,
藏文飾, 冀其自改。
3. 자식 교육의 成功과 失敗 - 王僧辯과 어떤 學士
〈양梁나라의〉 대사마大司馬 왕승변王僧辯의 어머니 위부인魏夫人은 성품이 매우 엄격하고도 단정하였다.
왕승변王僧辯이 분성湓城에 있을 때 휘하에 3천 명을 거느린 장수로서 나이가 마흔이 넘었건만 조금이라도 〈어머니의〉 뜻에 어긋나기만 하면 여전히 회초리를 들었으니, 이 때문에 그는 공훈을 이룰 수 있었다.
양梁 원제元帝 때의 어떤 학사學士는 총명하고 재주가 있어 아버지에게 총애를 받았으나 〈그 아버지는〉 올바른 도리를 가르치는 데에는 실패하였으니, 어쩌다 〈그의 자식이〉 옳은 말이라도 한마디 하면 낯선 사람들에게까지 두루 알리고 한 해가 다 가도록 자랑하다가, 어쩌다 〈그의 자식이〉 잘못을 저지르면 이를 감추고 변명해주면서 스스로 고치기만 바랐다.
결혼하고 벼슬할 나이가 되자 포악하고 교만함이 날로 심해져 마침내 말을 가리지 않고 내뱉다가 주적周逖에게 창자가 뽑히고 피가 북에 발라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