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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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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자신에 대한 呼稱
昔者, , 自玆以降, 雖공자孔子聖師,
後雖有, 行者蓋亦寡焉。
강남江南輕重, 各有謂號, 具諸
北人多稱名者, 乃古之遺風, 吾善其稱名焉。


13. 자신에 대한 呼稱
옛날 제후諸侯는 자신을 일컬어 , , 불곡不穀 등으로 불렀지만, 그 아래로는 비록 공자孔子 같은 성인이라 할지라도 문하생들과 이야기할 때 늘 〈자신의〉 이름을 칭했다.
뒤에 비록 이니 이니 하는 호칭이 생기긴 했지만, 이것을 쓰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강남江南에서는 지위가 높고 낮음에 따라 각각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있는데, 〈글 쓰는 법을 서술한〉 《서의書儀》 책에 잘 나와 있다.
북방 사람들이 다들 〈자신을〉 이름으로 일컫는 것은 과거의 유풍인데, 나는 이렇게 이름 부르는 것이 좋다.


역주
역주1 王侯自稱孤寡不穀 : 《老子》 〈德經〉에 “그러므로 侯王들이 자신을 孤, 寡, 不穀 등으로 칭한 까닭도 천함을 근본으로 삼은 것이 아니겠는가?”라 하였다.[盧文弨]
옛날 天子와 諸侯는 즉위해서 부모의 3년상을 다 마치지 못하였으면 자신을 孤라 칭하였고, 3년상을 다 마쳤으면 寡人이라 칭했다. 《呂氏春秋》 〈士容〉의 注에 “孤와 寡는 謙稱이다.”라 하였고, 《淮南子》 〈原道〉에서는 “그러므로 신분이 귀한 자는 반드시 천한 이름을 호칭으로 삼았다.”라 하였으며, 또 注에서 “귀한 자란 公, 王, 侯, 伯 등을 말하는데, 孤, 寡, 不穀이라 부르므로 천한 이름을 호칭으로 삼는다고 한 것이다.”라고 풀이하였다. 또 〈人間〉篇의 注에서는 “不穀이란 녹을 받지 못한다는 뜻으로, 임금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컬은 것이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2 與門人言皆稱名也 : 《論語》 〈公冶長〉에서 “左丘明이 부끄러워하였는데, 丘 또한 부끄럽게 생각한다.”라 하였고, 또 “열 집 정도의 마을이라면 거기엔 분명 丘만큼 성실하고 신의 있는 사람이 있겠지만, 丘만큼 배움을 좋아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述而〉篇에서는 “나는 행하고서 너희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것이 丘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王利器]
역주3 臣僕之稱 : 《史記》 〈高祖本紀〉에서 呂公이 劉季(劉邦의 字)와 이야기하며 자신을 臣이라 일컬었고, 張耳와 陳餘의 列傳에서 陳餘가 張耳에 대해 자신을 臣이라 일컬었으며, 《漢書》 〈司馬遷傳〉에 수록된 〈報任安書〉에서는 僕이라 일컬었고, 〈楊惲傳〉에 수록된 〈答孫會宗書〉에서도 僕이라 하였으며, 이 밖에도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다.[盧文弨]
역주4 書儀 : 예를 들자면 《隋書》 〈經籍志〉에 謝元의 《內外書儀》 4卷, 蔡超의 《書儀》 2卷, 王宏의 《書儀》 10卷, 唐瑾의 《書儀》 10卷, 周捨의 《書儀疏》 1卷 등의 목록이 있고, 《舊唐書》 〈經籍志〉에도 王儉의 《弔答書儀》 10卷과 《皇室書儀》 7卷, 鮑衡卿의 《皇室書儀》 13卷 등의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盧文弨]
편지의 격식을 소개하고 편지 쓰는 법에 관해 기술한 책을 말한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과거에는 이런 종류의 저술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역자]

안씨가훈(1)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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