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其時俗遞相
, 所有
, 楷正可觀, 不無俗字, 非爲大損。
蕭子雲改易字體, 邵陵王頗行
, 朝野
以爲
,
, 多所傷敗。
北朝喪亂之餘, 書跡鄙陋, 加以專輒造字, 猥拙甚於江南。
진晉‧송宋 이래로 글씨를 잘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당시 세간에 서로들 영향을 받아 각종 서적에서 해서楷書의 정자체正字體가 볼 만하였고, 속자俗字가 없지는 않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양대梁代 천감天監 연간에 이르러서도 이 기풍은 변함이 없었는데, 대동大同 말엽에 와자訛字와 대체자代替字가 많이 생겨났다.
소자운蕭子雲은 글자 모양을 바꾸어 고쳤고, 소릉왕邵陵王은 변형된 글자[위자僞字]를 상당히 썼는데, 조야朝野에서 다들 이를 따라하려다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꼴이 되어 손상되고 망그러진 것이 많았다.
글자 하나를 썼다는데 오직 점 몇 개만 보일 뿐이고, 때로는 되는 대로 짐작하여 멋대로 바꾸었으니, 이후로 나온 책들은 거의 볼 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북조北朝에서는 전란의 여파로 글씨체가 비루해진 데에다 멋대로 글자를 만들어냈으니, 졸렬함이 강남江南보다 더 심하였다.
그리하여 백百과 염念을 조합하여 우憂를 뜻하는 글자(𢞘)를 만들고, 언言과 반反을 조합하여 변變을 뜻하는 글자(반䛀)를 만들며, 불不과 용用을 조합하여 파罷를 뜻하는 글자(용甭)를 만들고,
추追와
내來를 조합하여
귀歸를 뜻하는 글자(
)를 만들며,
갱更과
생生을 조합하여
소蘇를 뜻하는 글자(
소甦)를 만들고,
선先과
인人을 조합하여
노老를 뜻하는 글자(𠈣)를 만들었는데,
이와 같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경전經傳 여기저기에 가득하였다.
오직 요원표姚元標만이 해서楷書와 예서隷書를 잘 썼고 문자학文字學에도 유의하였으므로, 후진들 중에 그를 스승으로 삼는 이들이 많았다.
북제北齊 말에 이르러서는 왕실 비각祕閣의 도서를 고치고 베껴 쓰는 일이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