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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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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史記》의 ‘媚’
22. 《사기史記》의 ‘
太史公論曰:“禍之興自愛姬, 。”
태사공太史公이 〈《사기史記》에서〉 영포英布에 대해 하기를 “재앙이 총애하던 희첩姬妾으로부터 일어났으니, 질투[투미妬媚]에서 생겨나 마침내 일국一國멸망滅亡시키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고 하였으며,
又《漢書・外戚傳》亦云:“。”
또한 《한서漢書》 〈외척전外戚傳〉에서도 말하기를 “총애하던 희첩姬妾들이 질투[투미妬媚]로 인해 주살誅殺되는 결말을 조성하였다.”라고 하였다.
此二“媚”並當作“媢”, 媢亦妬也,
이 두 문장의 ‘’자는 모두 ‘’자가 되어야 마땅하다. 도 시샘한다[]는 말로, 이러한 뜻은 《예기禮記》와 《삼창三蒼》에 보인다.
且《五宗世家》亦云:“。”
나아가 《사기史記》 〈오종세가五宗世家〉에서도 “상산常山 헌왕憲王왕후王后가 질투하였다[투모妬媢].”고 하였고,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에서는 “시샘하는[] 남편과 강샘하는[] 부인이 사노라면 분노하고 송사訟事를 일으킨다.”고 하였으니, 의 다른 표현임을 더욱 알 수가 있다.
原英布之誅爲耳, 不得言媚。
영포英布주살誅殺된 일의 원인을 살펴보면 분혁賁赫을 의심한 데서 비롯된 것일 따름이니, 애교떨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주
역주1 英布 : 《史記》 〈黥(경)布列傳〉에 의하면 “英布는 六縣 사람으로 성이 英씨이다. 楚나라를 배반하고 漢나라에 귀의하여 淮南王으로 추대되었다. 韓信과 彭越이 모두 被殺되자 英布는 크게 두려워 몰래 군대를 모아놓고 이웃 州郡이 위급해지는지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英布가 총애하던 姬妾이 병이 나서 의원에게 가보기를 요청하였다. 의원의 집이 中大夫 賁赫과 門을 마주하고 있으므로 賁赫은 자신이 侍中이 되고자 후한 뇌물을 주고 姬妾과 의원의 집에서 술을 마셨다. 姬妾이 英布를 모시다가 賁赫이 뛰어난 인물임을 칭찬하다 그를 만난 상황을 말하자, 英布는 그녀가 그와 함께 음란한 일을 저질렀으리라 의심하고 賁赫을 잡아들이고자 하였다. 賁赫은 長安으로 달아나 劉邦에게 고변하기를 英布에게 모반의 단서가 있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趙曦明]
英布는 黥布로도 불린다. 秦나라 말기 農民 叛軍의 領袖 중 한 사람으로 뒷날 項羽에게 귀의하여 西楚의 名將이 되었으나, 나중에는 劉邦에게 항복하여 淮南王으로 봉해졌으며, 끝내는 謀反罪로 죽임을 당하였다.[역자]
역주2 生於妬媚 以至滅國 : 今本의 《史記》에 의하면 “재앙은 총애하던 희첩으로부터 일어났으니 질투가 환난을 낳아 마침내 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았다.”고 하였다. ‘妒’가 본디 자이나 ‘妬’로도 쓰여 서로 통한다.[盧文弨]
역주3 成結寵妾妬媚之誅 : 《漢書》 〈外戚列傳〉에 이르기를 “孝成皇后 趙飛燕과 여동생 趙昭儀 姊妹는 10여 년간 총애를 독차지하였다. 마침내 둘다 아들이 없고 成帝가 갑자기 죽자 皇太后가 조칙을 내려 大司馬 王莽이 御史, 丞相, 廷尉 등과 함께 發病한 상황을 추궁하게 하니 昭儀는 自殺하였다. 哀帝가 卽位하고 皇后가 皇太后로 추존되자 司隷校尉 解光이 上奏하여 趙氏가 後宮 소생의 여러 아들들을 죽였으므로 이 일을 추궁하도록 요청하였으나, 哀帝가 太子였을 때 趙太后의 힘을 자못 빌었으므로 마침내 이 일을 추궁하지 않았다. 哀帝가 죽은 다음 王莽이 太后께 아뢰고 조칙을 내리자, 〈趙飛燕은〉 孝成皇后로 폄하되었다가 다시 庶人으로 폐위되고 그녀의 私家로 돌아가 自殺하였다.”고 하였다. 생각건대, 인용된 ‘成結寵妾妬媚之誅’ 구는 議郎 耿育의 疏에 보이는 말로 今本의 《漢書》에도 여전히 媚자로 되어 있으나, 《史記》 〈黥布列傳〉의 《索隱》에서는 이를 인용하며 媢자를 쓰고 있다.[趙曦明]
역주4 義見禮記三蒼 : 《禮記》 〈大學〉의 “시기 질투하여 그를 미워한다.[媢疾以惡之]”는 구절에, 鄭玄은 “媢란 妒와 뜻이 같다.”고 하였다. 《史記》 〈五宗世家〉의 《索隱》에 의하면 “郭璞이 《三蒼》을 주석하여 이르되 ‘媢란 丈夫가 질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다시 ‘妒란 여인이 질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였다.[盧文弨]
역주5 常山憲王后妬媢 : 《史記》 〈五宗世家〉에 의하면 “常山의 憲王 舜은 孝景帝 5년에 皇子의 신분으로 常山王이 되었다. 王에게는 총애받지 못한 姬妾이 낳은 長男 梲(탈)이 있었으나, 王后 脩가 太子 勃을 낳았다. 王의 침전에는 총애받는 姬妾이 많았으므로, 王后는 총애받기를 고대하다가 憲王이 병들자, 질투심에 그다지 병구완을 하지 않고 번번이 숙소로 돌아가버렸으며, 御醫가 藥을 바쳐도 太子 勃은 몸소 藥을 맛보지도 않았고 밤새 간병을 하지도 않았다. 王이 죽자 王后와 太子가 왔으나, 憲王이 평소에 梲을 皇子로 여기지도 않은 데다 太子가 帝位를 잇고서도 역시 梲을 제대로 거두지 않았으므로, 梲은 王后와 太子를 원망하였다. 漢 皇帝의 使者가 憲王의 장례를 보러 오자, 梲은 王이 病들었을 때 王后와 太子가 병구완을 하지도 않다가 죽은 지 6일 만에 상복을 벗고 숙소로 나갔으며, 勃이 몰래 간통한 일들을 고해바쳤다. 해당 관헌이 王后 脩를 廢位하고, 勃을 귀양 보내며, 家屬들을 陝西省 房縣 境內의 房陵에 감금하기를 주청하자, 皇帝가 이를 允許하였다.”라고 하였다.[趙曦明]
역주6 妬夫媢婦生 則忿怒鬥訟 : 《論衡》 〈論死篇〉에 의하면 “시샘하는[妬] 남편과 강샘하는[媢] 부인이 같은 방을 쓰며 사노라면 음란하고 행실을 잃으며 분노하고 訟事를 일으킨다.”고 하였다.[盧文弨]
역주7 益知媢是妬之別名 : 沈揆에 의하면 “《說文解字》에서 ‘媢란 丈夫가 부녀자를 질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顔之推의 주장을 더욱 입증해준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8 : 의심하다.[역자]
역주9 賁(비)赫 : 宋本의 原注에 의하면 “賁는 독음이 肥(비)이다.”라고 하였다.[趙曦明]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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