猶以書工, 崎嶇
之間, 辛苦筆硯之役, 嘗悔恨曰:“假使吾不知書, 可不至今日邪!”
왕일소王逸少(왕희지王羲之)는 풍류 있는 재사才士였고 성품이 시원시원한 명인名人이었건만, 세상에서는 오직 그의 글씨만 알아주었으니, 글씨 잘 쓰는 것 때문에 도리어 〈그의 식견과 인품이〉 가려지고 말았다.
소자운蕭子雲은 늘 탄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제서齊書》를 지어 하나의 전범典範을 엮어내었는데, 문장의 광대한 뜻이 스스로도 볼 만하다 하겠건만, 오직 필적으로만 명성을 얻었으니 또한 이상한 일이로다.”
왕포王褒는 집안의 문벌이 높고 재주와 학식이 뛰어나서, 뒤에 비록 〈포로가 되어〉 관중關中으로 들어갔지만 그곳에서도 예우를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글씨를 잘 썼기 때문에 비석碑石들 사이에서 고생하며 글씨 쓰느라 힘들었는데, 일찍이 후회하며 이렇게 한탄한 적이 있다. “만약 내가 글씨 쓸 줄을 몰랐다면, 오늘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겠지!”
이런 일들로 볼 것 같으면, 절대로 글씨를 가지고 자부해서는 안 된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비천한 사람들 중에는 글씨 잘 쓰는 것으로 발탁된 이들이 많다. 그러니 도道가 같지 않으면 더불어 일을 꾀하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