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梁효원제孝元在
時, 撰
, 亦以不偶於世, 無
故也。
有詩、賦、銘、
、
서書、表、啓、疏二十卷, 吾兄弟始在
, 竝未得編次, 便遭火盪盡, 竟不傳於世。
우리 집안의 문장은 매우 점잖고 곧았으며 세간의 시류時流에 따르지 않았다.
양梁 효원제孝元帝가 번진藩鎭에 있을 때 《서부신문西府新文》을 편찬하였지만 한 편도 수록되지 못한 까닭은, 아무래도 당시의 조류에 맞지 않고 〈부박한〉 정鄭‧위衛의 음音이 없었던 탓이었을 것이다.
시詩, 부賦, 명銘, 뇌誄, 서書, 표表, 계啓, 소疏 등의 문장 20권이 있었는데, 우리 형제가 막 상을 당하고서 채 정리도 하기 전에 전란을 만나 다 없어져 끝내 세상에 전하지 않게 되었다.
원통하고 한스러운 마음이 가슴에 사무치는구나!
〈우리 집안의〉 품행은 《양사梁史》 〈문사전文士傳〉과 효원제孝元帝의 《회구지懷舊志》에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