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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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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형님 모시기를 아버지 대하듯
人之事兄, , 何怨愛弟不及愛子乎?
是反照而不明也。
유진劉璡, 嘗與兄
, , 呼之數聲不應, 方答。
怪問之, 乃曰:“未著衣帽故也。”
以此事兄, 可以免矣。


5. 형님 모시기를 아버지 대하듯
사람들이 형님 섬기기를 아버지 섬기듯이 할 수 없다면서, 어찌 〈형님이〉 아우를 사랑하는 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만 못한다고 원망하는 것일까?
이는 〈아무리〉 뒤집어 살펴봐도 모를 일이다.
패국沛國유진劉璡은 일찍이 그의 형 과 벽을 사이에 두고 한 집에 살았었는데, 〈한번은〉 이 몇 차례 불렀으나 응하지 않다가 한참 만에야 비로소 대답을 했다.
이 이상히 여겨 물어보자 “좀 전에 의관을 미처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런 자세로 형을 섬기면 〈형제간에 불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不可同於事父 : 《爾雅》 〈釋言〉에 “猷는 肯, 可의 뜻이다.”라 하였으므로 肯과 可는 互訓할 수 있는데, 여기서의 ‘可’자는 ‘肯’의 뜻으로 사용되었다.[林思進]
韓愈의 〈故貝州司法參軍李君墓誌銘〉에서 “그 형님 모시기를 마치 아버님 모시듯이 하였으니, 그의 행실에는 감히 벗어남이 있을 수가 없었다.”라 한 것은, 아마 이 글에 근거를 두었을 것이다.[王利器]
역주2 沛國 : 地名이다. 《續漢書》 〈郡國志〉에 따르면 “沛國은 豫州에 속한다.”[趙曦明]
지금의 江蘇省 沛縣 일대이다.[역자]
역주3 瓛(환) : 《南史》 〈劉瓛傳〉에 “瓛은 字가 子圭이고 沛郡 相縣 사람이다. 인정이 많고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며, 訓詁에 널리 통달하였다. 동생 璡은 字가 子璥으로 반듯하고 정직하였으며, 학문적인 품위는 瓛에 못 미쳤지만 문학적인 광채는 그를 능가하였다.”라 하였다.[趙曦明]
劉瓛은 《南齊書》에도 傳이 있다. 《藝文類聚》 38에 인용된 任昉의 〈求爲劉瓛立館啓〉에서 “劉瓛은 몸가짐에 조심하고 德으로 목욕하며 행실을 닦고 경전을 밝혔다.”라 하였고, 《文選》에 수록된 劉孝標의 〈辨命論〉에서는 “근래 沛國의 劉瓛과 그의 동생 璡이 모두 일세의 뛰어난 선비였다. 瓛은 關西의 孔子〈라 불리던 楊震〉처럼 六經에 통달하였고, 차근차근 잘 이끌어주고 儒家의 행실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였으며, 璡은 뜻이 매섭기가 가을서리 같고, 마음이 곧기가 崑山의 옥 같으며, 꼿꼿하고 우뚝한 모습으로 風塵에 뒤섞이지 않았다. 모두 가난한 집에서 덕을 길러 함께 천지에 명성을 날렸다. 그런데 관직은 侍郞의 보잘것없는 자리에 머물렀고 지위는 궁궐 侍衛官에도 오르지 못하고서 연이어 죽었으니, 조상의 제사조차 받들 사람이 없게 되었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4 : 환
역주5 連棟隔壁 : 이어진 용마루에 벽을 사이에 두다. 즉 한 집에서 벽을 사이에 두고 살다.[역자]
역주6 良久 : 상당히 오래되다. 제법 오래 지나다.[역자]
역주7 向來 : ‘아까, 방금 전’의 뜻이다.[역자]

안씨가훈(1)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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