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顔氏家訓(1)

안씨가훈(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안씨가훈(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35. 生日 풍속
35. 生日 풍속
江南風俗, 兒生一朞, 爲製新衣, 盥浴裝飾, 男則用弓矢紙筆, 女則縷, 竝加飮食之物, 及珍寶服玩, 置之兒前, 觀其發意所取, 以驗貪廉愚智, 名之爲
강남江南의 풍속에 아이가 태어나 첫돌이 되면 새 옷을 짓고 목욕시켜 치장을 하고서, 사내아이이면 활과 화살, 종이와 붓을, 여자아이이면 가위와 자, 바늘과 실을 준비하여, 음식과 진귀한 보물, 옷과 장난감 등과 함께 아이 앞에 차려놓고서, 아이가 마음대로 잡는 것을 보고 욕심이 많은지 청렴한지, 어리석은지 지혜로운지를 미리 예측하는데, 이를 돌잡이라고 한다.
親表聚集, 致讌享焉。
이날 친가親家외가外家의 친척들이 모여서 잔치를 벌인다.
自玆已後, 二親若在, 每至此日, 常有酒食之事耳。
이 이후로 양친이 계실 경우 늘 이날이 되면 술과 음식을 함께 나누는 일이 있었다.
, 其日皆爲, 酣暢聲樂, 不知有所感傷。
못 배운 사람들은 양친이 이미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이날 다들 음식을 마련해놓고서 실컷 먹고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리워하고 슬퍼해야 할 바가 〈따로〉 있음을 모른다.
梁孝元年少之時, 每八月六日之辰, , 薨歿之後, 此事亦絶。
원제元帝는 젊었을 때 매년 8월 6일 생일이면 늘 음식을 마련하여 스님들을 공양하고 불경佛經하였지만, 모친 원수용阮修容이 돌아가신 후로는 이 일도 끊었다.
역주
역주1 刀尺鍼(침)縷 : 가위, 자, 바늘, 실이다. 刀는 가위[剪刀]이다. 鍼은 옛날에 ‘箴’으로 쓰다가 오늘날에는 또 ‘針’으로 쓰기도 한다. 縷는 실이다.[盧文弨]
역주2 : 침
역주3 試兒 : 《事文類聚》 後集 5에는 ‘試兒’가 ‘試週’로 나와 있다. 자식이 태어나 1년이 된 것을 일컬어 晬라고 하는데, 《說文解字》에 나온다. 試兒에 사용하는 물건들을 요즘 사람들은 晬盤(오늘날에는 보통 돌상 혹은 생일상이란 뜻으로 쓰임.[역자])이라 부른다.[盧文弨]
오늘날 四川 지역에서 試兒를 抓周라고 부른다. 《愛日齋叢鈔》 1에서 “晬란 자식이 태어나 1년이 된 것을 일컫는데 《顔氏家訓》에서…운운하였고, 《玉壺淸話》 1에 曹武惠王이 태어나 1년이 되던 날 부모가 온갖 장난감을 자리에 늘어놓고서 그가 무엇을 잡는지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武惠王은 왼손으로 방패와 창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祭器를 들었는데, 금방 한 번에 집고서는 나머지 것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曹氏는 眞定 사람이었는데, 江南의 遺風이 바로 여기에 남아 있었다. 오늘날 세상에서 試周라고 일컫는 것이 이것이다.”라 하였다. 이것을 보면 《事文類聚》에서 祝穆이 ‘試兒’를 ‘試週’로 고친 것도 바로 時俗을 따른 것이었다.[王利器]
역주4 無敎之徒…不知有所感傷 : 《愛日齋叢鈔》 5에서 “梁 元帝는 생일이 되면 그때마다 禁食과 禁肉을 하면서 佛經을 강독하였다. 唐 太宗은 長孫無忌에게 ‘오늘이 내 생일이요. 세상에서는 생일을 맞으면 다들 기쁘다고 하지만, 짐은 도리어 슬픔을 느낀다오. 이제 천하에 군림하면서 四海를 다 차지하였지만, 슬하에서 얼굴을 뵈옵고 싶어도 영영 할 수 없으니, 이것이 子路가 느꼈던 負米의 恨이겠지요. 《詩經》에서 「슬프구나, 부모님, 날 낳으시느라 고생하셨으니.」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고생하신 날에 잔치를 벌이고 즐기겠소?’라고 말하고서 눈물을 몇 줄기 흘리자, 신하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예전에는 임금도 생일을 중시하지 않았는데, 생일 축하가 풍속이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5 孤露 : 嵇康의 〈與山巨源絶交書〉에서 “어려서 부친을 잃었다.[少加孤露]”라 하였다.[李詳]
《北史》 〈趙隱傳〉에서 “어려서 부친을 잃었다.[幼小孤露]”라 하였고, 《綱目集覽》 49에서 “孤란 어려서 부모가 없는 사람이고, 露란 밖에서 햇볕을 쬐고 이슬에 젖는 일이다.”라 하였다. 唐人들은 이를 일컬어 ‘偏露’라 하였는데, 孟浩然의 시 〈送莫氏甥〉에서 “생애에 일찍 아버님을 잃었다.[平生早偏露]”라고 하였다. 이 견해는 《日志錄》 13에 근거한 것이다.[王利器]
역주6 供頓 : 《少儀外傳》 下에는 ‘供頓’이 ‘燕飮’으로 되어 있는데, 아마 당시의 용어에 따라 고쳤을 것이다. 《唐書》 〈高紀〉에 “도중에 식사를 제공한 지역[所過供頓]은, 올해 세금의 반을 면해주도록 명하였다.”라 하였고, 《資治通鑑》 190의 胡三省 注에서 “中頓은 중도에 성이 있고 식량이 있어 머물러 밥 먹을 수 있음을 말한다. 식사를 제공해주는 곳을 頓이라 한다. 唐人들은 置頓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라 하였다. 供頓은 置頓과 뜻이 비슷하다. 오늘날 밥 한 끼 먹는 것을 일컬어 ‘吃一頓飯’이라 하는데,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王利器]
역주7 載誕 : 태어남. 誕生.[역자]
庾信의 〈周大將軍司馬裔神道碑〉에서 “이제 유복자로 태어나[今遺腹載誕], 도적들 사이에 떠돌았다.”라고 하였고, 唐 穆宗 長慶 元年의 詔에서 “7월 6일은 짐이 태어난 날[載誕之辰]이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8 常設齋講 : 늘 음식을 마련해 스님들을 공양하고 佛經을 講했다. 設齋는 음식을 마련하여 스님을 공양한다는 뜻이고, 講은 佛經을 講하는 일을 가리킨다.[역자]
역주9 自阮修容薨歿之後 此事亦絶 : 《封氏聞見記》 4 〈降誕〉에 “근래 풍속에 자식이 슬하에 있을 때면 늘 생일에 잔치를 한다. 하지만 양친이 돌아가셨는데 또 이날에 잔치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梁 元帝가 어릴 적에 늘 생일이면 음식을 마련하여 스님들께 공양하고 佛經을 講하였지만, 모친 阮修容이 돌아가시고 난 후 이 일도 끊었다.”라 하였는데, 바로 이 이야기를 근거로 한 것이다.[王利器]
역주10 阮修容 : 《梁書》 〈后妃傳〉에서 “高祖(즉 武帝)의 阮修容은 諱가 令嬴이고 本姓은 石이며 會稽 餘姚 사람으로서, 齊나라 始安王 遙光이 맞아들였는데, 遙光이 패한 후 東昏侯의 궁으로 들어갔다. 建康 성이 평정되자 高祖가 궁녀로 받아들였다. 天監 5년 8월에 世祖(즉 元帝)를 낳고 얼마 안 있어 修容의 지위에 올라 世祖를 따라 藩鎭으로 나갔다. 大同 6년 6월 江州의 內寢에서 죽었다. 世祖가 즉위하자 文宣太后로 追贈하였다.”라 하였다.[趙曦明]
《金樓子》에서는 “宣修容은 會稽 上虞 사람이고 大同 9년 太歲 癸亥 6월 2일에 돌아가셨다.”라고 하여, 正史와는 다르다.[盧文弨]
修容은 魏 文帝가 제정한 爵位인데, 晉 이후로 지위가 九嬪에 들었다. 《資治通鑑》 165의 胡三省 注에 나온다.[王利器]

안씨가훈(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