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而聰慧, 무성제帝及后竝篤愛之, 衣服飮食, 與東宮相準。
及
,
,
, 不與諸
낭야왕王等, 太后猶謂不足, 常以爲言。
嘗朝
남전南殿, 見
進新冰,
獻早李, 還索不得, 遂大怒,
曰:“至尊已有, 我何意無?”
, 又懼有救, 乃勒麾下軍士,
,
, 受勞而罷, 後竟坐此幽薨。
북제北齊 무성제武成帝의 아들 낭야왕琅邪王은 태자太子와 한 배에서 난 아우였다.
나면서부터 총명하였으므로 무성제武成帝와 황후皇后가 함께 그를 몹시 친애하여 의복이며 음식을 태자와 똑같이 해주었다.
황제는 매번 그의 면전에서 칭찬하기를 “요 똑똑한 녀석, 꼭 큰일을 이룰 것이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즉위하게 되자 낭야왕琅邪王은 별궁別宮에 거처하였는데 예우가 분수에 넘쳐서 다른 여러 왕들과 대우가 달랐음에도 태후太后는 오히려 〈예우가〉 부족하다고 여겨서 늘 이를 이야깃거리로 삼았다.
나이가 열 살 남짓 되면서는 교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어져 기물이며 의복이나 기호품을 반드시 황제를 따라 같이 하였다.
언젠가 남전南殿에서 황제를 뵐 때 황실의 주방을 맡던 관리가 막 꺼낸 얼음을 진상하고, 과수원을 맡던 관리가 철 이른 오얏을 헌상하는 것을 보고서 낭야왕琅邪王이 집에 돌아와 이를 찾다가 얻지를 못하자, 마침내 크게 화를 내며 꾸짖기를 “황상皇上은 이미 가졌는데, 내게는 어찌하여 없는가?”라고 하였다.
분수를 모르기가 대개 이 지경이었으므로 식견 있는 이들은 춘추시기의 숙단叔段과 주우州吁에 비겨 낭야왕琅邪王을 비난하였다.
나중에는 재상을 미워하다가 조칙을 멋대로 고쳐 그를 참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를 구원하려는 세력이 있을까 두려워 휘하의 군사를 지휘하여 궁궐문을 지키게까지 하였는데, 어차피 반란을 일으키려는 의도는 없었으므로 황제의 위로를 받자 곧 군사를 물렸으나, 나중에는 마침내 이 일에 연루되어 유폐된 채 죽임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