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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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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義兄弟 맺기
必有, 令終如始者, 方可議之。
之後, 命子拜伏, 呼爲丈人, ;身事彼親, 亦宜加禮。
比見北人, 甚輕此節,
, 望年觀貌, 不擇是非,


39. 義兄弟 맺기
세상 사람들이 형제의 관계를 맺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반드시 뜻이 같고 의기가 투합해야 하며, 끝까지 처음 같을 수 있어야 비로소 논의해볼 만하다.
일단 그렇게 〈형제가〉 된 후에는 자식들로 하여금 엎드려 절하게 하고 장인丈人으로 불러 아버지 친구로서 경의를 표하게 하며, 자신도 상대의 양친兩親을 섬기면서 예우해야 한다.
근자에 북방 사람들을 보았더니 이러한 예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길을 가다가 만나서 바로 형 아우를 정하기도 하고 연배나 모습만 보고 옳고 그름도 따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아버지뻘 되는 분을 형으로 삼고 자식뻘 되는 이를 아우로 삼는 경우도 있다.


역주
역주1 四海之人 結爲兄弟 :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이 형제가 된 사례로 史傳에 기록된 것은, 대개 軍中에서 군사들이 목숨을 바쳐 생사를 함께하기로 약속한 일에서 유래하였다. 예를 들면 《史記》 〈項羽本紀〉의 “漢王이 말하기를 ‘나는 項羽와 더불어 北面을 하고서 懷王께 명을 받아 형제가 되기로 약속을 하였으므로, 나의 아버지가 바로 너의 아버지이다.’라고 하였다.”와 같은 경우로, 이것이 史書에서 맨 처음 나오는 사례이다. 《北齊書》 〈神武紀 上〉에서 “爾朱兆가 말하기를 ‘향불을 켜고 거듭 맹세를 하였는데, 걱정할 게 무엇이오?’라 하자, 紹宗이 ‘친형제조차도 믿기 어려운데 향불을 어찌 논하겠소?’라 하였다.”라고 한 것, 《北齊書》 〈漁陽王紹信傳〉에서 “그리하여 大富 사람 鍾長命과 의형제를 맺었고, 王妃는 鍾長命의 아내와 의자매를 맺었다.”라 한 것, 《北史》 〈司馬消難傳〉에서 “처음에 隋 武帝와 梁 元帝가 맞이할 때 司馬消難과 의형제를 맺어 정분이 아주 두터웠고, 隋 文帝는 그를 叔父의 예로써 섬겼다.”라고 한 것, 《北史》 〈唐瑾傳〉에서 “于謹이…周 文帝에게 말하기를 ‘唐瑾은 학식과 행실을 둘 다 겸비하였으니, 그와 同姓이 되어 형제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라 했다.”라고 한 것 등을 통해, 당시 北人들의 節義와 氣槪를 살펴볼 수 있다.[王利器]
역주2 志均義敵 : 《漢書》 〈董賢傳〉에서 “孔光은 평소에 공경해왔지만, 임금이 董賢을 존중하고 아낀다는 것을 알고서는 마중하고 배웅하는 일을 아주 조심스럽게 하여, 감히 賓主간의 대등한 예[鈞敵之禮]로써 대하지 않았다.”라 하였고, 《易林》 〈需之同人〉에서 “두 창이 서로 찌르며 용기와 힘이 팽팽했다.[鈞敵]”라고 하였으며, 翟云升의 《校略》에서는 “均은 옛날에 ‘鈞’자와 통용되었다.”라 하였다.[王利器]
뜻이 같고 意氣가 투합하다. 여기서 ‘均’이나 ‘敵’은 모두 같다, 대등하다는 뜻이다.[역자]
역주3 一爾 : 《資治通鑑》 69 胡三省 注에서 “一爾는 ‘일단 이와 같다.[一如此]’라는 말과 같다.”라 하였다.[王利器]
여기서 爾은 그러하다[然]는 뜻이다.[역자]
역주4 申父友之敬 : 옛날에는 자식들이 서로 친구가 되면 양친께 절을 올렸는데, 이를 ‘拜親之交’라 하였다. 馬援이 병이 나자 梁松이 문병을 와서 혼자 침상 아래에서 절을 올렸지만 馬援은 응답하지 않았다. 孔融은 본래 陳紀와 친구 사이였는데, 뒤에 그의 아들 陳群과 교유를 맺게 되자 다시 陳群을 위해 陳紀에게 절을 하였다. 魯肅은 呂蒙의 모친에게 절을 함으로써 그와 친구관계를 맺고서 헤어졌다. 역사의 기록에 이와 같은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盧文弨]
역주5 比見北人…便定昆季 : 《北齊書》 〈宋遊道傳〉에 “頓丘 출신의 李獎과 한번 만나더니 바로 깊은 교분을 맺었다.”라고 한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王利器]
여기서 比는 근자, 근래의 뜻이다.[역자]
역주6 至有結父爲兄 託子爲弟者 : 이렇게 형제관계를 맺는 것은 사실 당시 人倫을 어지럽히는 養子 제도와 상응하여 생겨난 것이다. 동생을 낮추어 자식으로 삼고, 손자를 높여 자식으로 삼는 현상은 상당히 보편적이었다. 종법제도가 이와 같아졌으니 친구관계를 맺는 것은 더 논할 것도 없다. 예를 들면 唐 德宗은 順宗의 아들 謜을 여섯 번째 아들로 삼았으니, 손자를 아들로 삼은 것이다. 《五代史》 〈晉家人傳〉에서는 “重允은 高祖의 동생인데, 高祖가 그를 아껴 입양해서 아들로 삼았다.”라 하였고, 《宋史》 〈周三臣傳〉에서는 “李守節은 李筠의 아들이었는데, 李守節이 끝내 後嗣가 없자 李筠의 첩이 낳은 자식을 後嗣로 삼았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안씨가훈(1)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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