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以爲人將犬行, 犬好豫在人前, 待人不得, 又來迎候,
如此往還, 至於終日, 斯乃豫之所以爲未定也, 故稱猶豫。
或以《爾雅》曰:“猶如麂, 善登木。” 猶, 獸名也,
《예기禮記》에 “망설이는 것[유예猶豫]을 확정짓고, 의심쩍은 것[혐의嫌疑]을 결정한다. [정유예定猶豫 결혐의決嫌疑]”는 구절이 있고,
《이소離騷》에는 “심중에 망설이며 의심쩍어한다[심유예이호의心猶豫而狐疑]”는 구절이 있으나, 옛 유학자들 가운데는 해석해놓은 이가 여태 없다.
생각건대, 《시자尸子》에서는 “오척五尺이나 자란 개가 유猶이다.”라고 하며,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농서隴西에서는 강아지를 유猶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이 개를 데리고 가면 개는 주인의 앞에서 나서기를 좋아하나 사람을 기다리다 못해 다시 맞이하느라 되돌아오는데,
이처럼 앞서 가다 돌아오기를 종일토록 하므로, 이것이 바로 예豫가 ‘망설인다’는 뜻이 된 까닭이며, 이 때문에 ‘개처럼 망설인다[유예猶豫]’고 말한 것이다.
혹은 《이아爾雅》에서 “유猶는 고라니[궤麂]같이 생겼으나, 나무 타기를 즐긴다.”고 한 데에 근거하자면, 유猶는 〈고라니 같기도 하고 원숭이 같기도 한〉 짐승의 이름이니,
일단 사람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먼저 나무에 오르고 보는데, 이처럼 오르락내리락하므로, ‘원숭이나 고라니처럼 망설인다[유예猶豫]’고 말한 것이다.
여우란 짐승 역시 의심이 많아서, 황하黃河가 얼어도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조차 그친 후에야 건너기를 감행한다.
오늘날 항간에 “여우처럼 의심하고, 범처럼 점친다.”고 하는 말이 곧 이러한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