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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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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죽음도 함께한 王玄紹 형제
왕현소王玄紹, 弟효영孝英자민子敏, 兄弟三人, 特相友愛,
所得甘旨新異, 非共聚食, 必不先嘗,
色貌,
陷沒, 왕현소玄紹以形體, 爲兵所圍, 二弟爭共抱持, 各求代死, 終不得解, 遂爾。


6. 죽음도 함께한 王玄紹 형제
강릉江陵왕현소王玄紹와 아우 효영孝英, 자민子敏 형제 셋은 남달리 서로 우애가 깊었다.
맛있고 별난 새로운 음식이 생길 경우 함께 모여서 먹지 않으면 결코 먼저 맛보지 않았고, 부지런하고 간절한 태도로 대하면서도 서로 만나면 마치 충분히 잘해주지 못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서대西臺 함락 때 왕현소王玄紹가 몸집이 장대해서 적병들에게 에워싸이자, 두 동생이 앞다투어 함께 끌어안고 각기 대신 죽고자 하였지만,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함께 죽었다.


역주
역주1 江陵 : 梁 元帝가 처음 荊州刺史가 되었을 때의 治所이다.[趙曦明]
역주2 孜孜(자자)色貌 : 부지런하고 간절한 태도이다.[역자]
역주3 孜孜 : 자자
역주4 相見如不足者 : 《論語》 〈鄕黨〉의 “그 말씀은 부족한 것처럼 하셨다.[其言似不足]”에 대한 邢昺의 疏에서 “其言似不足이란 흥분을 가라앉히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것이 흡사 부족한 것 같다는 뜻이다.”라 하였다. 이 글은 형제 세 사람이 비록 서로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만나면 여전히 충분히 못해주었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뜻이다.[王利器]
역주5 西臺 : 《資治通鑑》 144 胡三省의 注에 “江陵이 서쪽에 있어서 西臺라고 불렀다.”라 하였고, 《梁書》 〈元帝紀〉에 “承聖 원년 겨울 11월 丙子日에 世祖는 江陵에서 帝位에 올랐다. 3년 9월 西魏에서 柱國 萬紐와 于謹을 보내어 침범해왔는데, 반역자들이 西魏 군사를 받아들여 世祖가 사로잡히자, 西魏 측에서 世祖를 해하여 결국 붕어하셨다.”라 했다.[趙曦明]
역주6 魁梧 : 《漢書》 〈張良傳〉의 顔師古 注에 의하면, 魁는 큰 모양이고, 梧는 그것이 놀랄 만하다는 뜻이다.[盧文弨]
역주7 幷命 : 따라서 죽는 것을 말한다. ‘幷命’은 漢‧魏‧南北朝시대 사람들의 관용어로 ‘倂命’으로 쓰기도 한다.[王利器]

안씨가훈(1)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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