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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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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脫喪 후 자손의 모습
27. 脫喪 후 자손의 모습
江左朝臣, 子孫初, 二宮, 皆當泣涕, 二宮爲之改容。
강남江南 조정의 신하들은 자손이 막 상복을 벗고 나면 입조入朝하여 황제와 태자를 뵙는데, 모두가 눈물을 흘렸으며, 황제와 태자는 그들을 위해 낯빛을 고쳤다.
頗有膚色, 無哀感者, 梁 武薄其爲人, 多被
자못 피부빛에 윤기가 흐르고 슬픈 느낌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무제武帝가 그 사람됨이 야박하다고 여겨 쫓아내는 경우가 많았다.
出服, 武帝, 枯槁, ,
배정裴政은 탈상을 하고서 무제武帝에게 불교식으로 합장을 하고 몸을 구부려 절을 하였는데, 몸은 야위어 바짝 말랐고 눈물이 넘쳐흘렀다.
武帝目送之曰:“不死也。”
무제武帝는 눈으로 그를 보내며 “〈그대의 부친〉 배지례裴之禮는 죽지 않았구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釋服 : 뒤에 나오는 ‘出服’과 같은 뜻으로, 服喪의 기간이 끝나 상복을 벗는 것을 말한다.[王利器]
역주2 朝見(현)二宮 : 二宮은 天子와 太子이다[盧文弨]
《文選集注殘本》에 수록된 王仲寶의 〈褚淵碑文〉에 나오는 “兩宮을 오르내린다.”에 대한 鈔注에서 “兩宮은 上臺와 東宮이다.”라 하였고, 李周翰의 注에서는 “兩宮은 天子와 太子를 말한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3 : 현
역주4 充澤 : 《離騷》 注에서 “澤은 바탕에 윤기가 흐르는 것이다.”라 하였다.[王利器]
충실하고 윤기가 흐르다.[역자]
역주5 抑退 : 누르고 물리쳐 내쫓다.[王利器]
역주6 裴政 : 裴之禮의 아들로서 字는 德表이다. 梁나라 承聖 연간에 給事黃門侍郞에 임명되었고, 隋나라에서는 襄陽總管을 지냈으며, 《北史》에 傳이 있다.[역자]
역주7 問訊 : 《僧史略》 上에서 “比丘를 만났을 경우 몸을 구부리고 합장을 하고서 입으로는 ‘찾아뵙지 못한 지가 얼마인지.’ 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몸과 입과 마음의 세 가지 業이 귀의하는 것으로, 이를 일컬어 問訊이라고 한다.”라 하였다. 아마 梁 武帝가 불교를 신봉하였으므로 裴政이 스님의 예로써 만나뵈었을 것이다.[王利器]
역주8 貶瘦(수)枯槁 : 《文選》 〈西征賦〉의 注에 “貶은 덜다, 줄이다는 뜻이다.”라 하였다. 《楚辭》 〈漁父〉의 “모습이 말랐다.[形容枯槁]”에 대한 注에서 “여위고 파리하다.[癯瘦瘠也]”라 하였다.[王利器]
몸이 여위고 마르다.[역자]
역주9 : 수
역주10 涕泗滂沱(타) : 《詩經》 〈陳風 澤陂〉의 ‘涕泗滂沱’에 대해 《毛傳》에서는 “눈에서 나오는 것을 涕라 하고, 코에서 나오는 것을 泗라 한다.”라고 풀이하였다.[王利器]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다.[역자]
역주11 : 타
역주12 裴之禮 : 《南史》 〈裴邃傳〉에서 “아들 之禮는 字가 子義이다. 모친 상중에 보리밥만 먹었다. 사당은 光宅寺 서쪽에 있었는데, 건물이 넓고 높았으며 소나무‧잣나무가 울창하였다. 范雲의 사당은 三橋에 있었는데 쑥을 베지 않았다. 梁 武帝가 남쪽 교외로 나갔다가 길이 두 사당을 거치게 되어 있어 돌아보고서 탄식을 하면서 말하기를 ‘范雲은 이미 죽었고, 裴之禮는 다시 살아났구나.’라고 하였다. 裴之禮는 少府卿으로 있다가 죽었는데, 諡號를 莊이라 하였다. 아들 裴政은 承聖 중에 지위가 給事黃門侍郎에 올랐고, 西魏가 江陵을 함락시키자 통례대로 長安으로 들어갔다.”라 하였다.[王利器]

안씨가훈(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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