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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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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因果應報에 대한 해명
釋二曰:
夫信謗之徵, 有如影響, 耳聞目見, 其事已多。
或乃精誠不深, 未感, 時儻, 終當獲報耳。
善惡之行, 禍福所歸。
, 皆同此論, 豈獨釋典爲虛妄乎?
之短折, 伯夷、之凍餒, 之福壽, 之富强:
若引之先業, 冀以後生, 更爲通耳。
如以行善而偶鍾禍報, 爲惡而儻値福徵, 便生怨尤, 卽爲欺詭,
則亦堯、舜之云虛, 周、孔之不實也, 又欲安所依信而立身乎?


7. 인과응보因果應報에 대한 해명
두 번째 비난에 대한 해명이다.
믿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하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증험들 중에는, 마치 〈몸체에 따라오는〉 그림자나 〈소리에 이어지는〉 메아리처럼 귀로 들리고 눈에 보이는 분명한 것들이 있으며, 그러한 사례는 이미 많다.
간혹 정성이 깊지 못하거나 업연業緣을 아직 느끼지 못해서 때로는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지만, 결국에는 응보應報를 받게 되어 있다.
을 행하느냐 을 행하느냐에 따라 이 돌아간다.
9개 학파의 여러 학자들도 모두 이 주장에 동의하였는데 어찌 불경佛經만 허망하다고 하는가?
총명했던 항탁項橐안회顔回는 요절하였고, 청렴했던 백이伯夷원헌原憲은 춥고 배고팠으며, 큰 도적이었던 도척盜跖장교莊蹻는 복을 누리며 장수했고, 무도했던 제 경공齊 景公과 〈송 경공宋 景公의〉 총신寵臣이던 환퇴桓魋는 부유하고 권세가 높았는데,
만약 이런 일들을 전생前生업인業因 때문이라고 보고 후생後生을 기대한다면 더욱 쉽게 이해될 것이다.
만약 선을 행하였는데도 뜻하지 않게 응보應報를 당하게 되고, 악을 행하였는데도 간혹 의 조짐을 보게 된다면, 바로 원망과 비난이 생겨나 인과응보因果應報의 가르침은 속임수가 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 임금의 말씀은 허튼소리가 되고, 주공周公공자孔子는 진실하지 못한 분이 될 터이니, 무엇을 믿고 의지하며 입신立身하려고 하겠는가?


역주
역주1 業緣 : 불교에서 말하는 業報의 因緣을 말한다.[역자]
역주2 差闌 : 闌은 늦어진다[晩]는 뜻이다. 報應이 간혹 지체되어 늦어짐을 말한다.[盧文弨]
역주3 九流百氏 : 《漢書》 〈藝文志〉에 당시의 학파들을 10家流로 제시하여 “一儒家流, 二道家流, 三陰陽家流, 四法家流, 五名家流, 六墨家流, 七縱橫家流, 八雜家流, 九農家流, 十小說家流.”라 하고, 그중 볼만한 것은 小說家流를 제외한 九家뿐이라고 하였다.[趙曦明]
儒家를 포함한 諸子百家의 대표적인 9개 학파를 말한다.[역자]
역주4 項橐(탁) : 《戰國策》 〈秦策〉에서 “甘羅가 ‘項橐은 태어난 지 7년 만에 孔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하였다.” 하였다.[盧文弨]
《抱朴子》 〈內篇 塞難〉에서 “그랬다면 項託과 楊烏에겐 요절의 슬픔이 없었을 것이다.”라 하였고, 〈外篇 自敍〉에서는 “그래서 項氏에게는 이삭을 머금은 채 오그라진 탄식[含穗之嘆]이 있었고, 楊烏에게는 일찍 죽는 슬픔[夙折之哀]이 있었다.”라 하였다. 《弘明集》 〈正誣論〉에서 “顔氏와 項氏는 요절하였다.”라 하였다. 모두 項橐이 일찍 죽었음을 말하였다.[王利器]
춘추시대 魯나라 사람으로, 項託이라 하기도 한다. 《三字經》에 의하면, 그가 7세일 때 아이들과 길에서 성 쌓기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孔子가 수레를 타고 길을 가고 있었다. 공자가 수레가 지나가도록 성을 터줄 것을 요구하자 항탁은 못하겠다며, 세상에서는 수레가 성에게 양보하는데 어떻게 성이 수레에게 양보할 수가 있겠느냐며 항변하였다. 그러자 공자는 난처해져서, 결국 공손하게 “네가 정말 나의 스승이로구나!”라고 했다고 한다.[역자]
역주5 顔回 : 孔子의 弟子로서 요절한 인물이다. 《孔子家語》 〈弟子解〉에서 “顔回는 29세에 머리가 세었고, 31세로 일찍 죽었다.”라 하였다.[盧文弨]
역주6 原憲 : 《韓詩外傳》 1에서 “原憲은 魯나라에 살았는데, 조그마한 집은 명아주로 이은 지붕에 쑥을 엮어 만든 문과 깨진 항아리로 만든 창문으로 이루어졌고, 뽕나무 서까래에 지도리도 없이 지붕은 새고 바닥은 축축하였다. 그는 여기에 똑바로 앉아서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 子貢이 그를 만나러 갔더니, 原憲은 닥나무 갓에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문에 마중 나왔는데, 갓을 바로잡자 갓끈이 끊어졌고 옷자락을 털자 팔꿈치가 나왔으며, 신을 신자 발꿈치가 터져 나왔다. 子貢이 ‘그대는 무슨 병이라도 들었습니까?’라고 하자, 原憲은 쳐다보면서 응답하기를 ‘저는 가난한 것이지 병든 것이 아닙니다.’라 하였다.”고 하였다.[盧文弨]
가난하기로 유명하였던 孔子의 제자로서, 이름은 思이고 憲은 그의 字이다.[역자]
역주7 盜跖(척) : 춘추시대 말기의 유명한 도적이다. 《史記》 〈伯夷列傳〉에서 “盜跖은 매일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사람의 고기를 먹었으며, 포악하고 방자하게 굴며 수천 명의 도적떼를 모아 천하를 횡행하였지만, 결국 天壽를 누리고 죽었다.”라 하였고, 《莊子》 〈盜跖篇〉에는 孔子의 친구인 柳下惠의 동생으로 나온다.[역자]
역주8 莊蹻(교) : 《華陽國志》 〈南中志〉에서 “南中은 옛날 夷와 越의 땅이었다. 周나라 말에 楚 威王이 장군 莊蹻를 시켜 沅水를 거슬러 올라가 且蘭으로 나가서 夜郞을 정벌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夜郞의 항복을 받아내었으나, 秦나라에서 楚나라 黔中의 땅을 빼앗아 되돌아갈 길이 없어지자, 결국 滇池에 머무르며 왕 노릇을 하였다. 莊蹻는 楚 莊王의 후손이었다.”라 하였다.[趙曦明]
《淮南子》 〈主術篇〉에서 “직분을 밝혀 보이면, 盜跖과 莊蹻의 간악함도 그만두게 된다.”라 하였고, 高誘의 注에서 “莊蹻는 楚 威王의 장군으로서 크게 되어 도적이 되었다.”라 하였다.[盧文弨]
전국시대 楚나라의 장군이었으나, 뒤에 滇池에 할거하여 왕을 칭하였다.[역자]
역주9 齊景 : 齊 景公에게 말이 4천 필 있었다는 이야기가 《論語》 〈季氏〉에 나온다.[盧文弨]
춘추시대 齊 景公을 말하는데, 그는 재위 기간 동안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켜 백성들을 괴롭혔다.[역자]
역주10 桓魋(퇴) : 《禮記》 〈檀弓 上〉에 “司馬였던 桓魋는 직접 石槨을 만들었는데, 3년이 지나도 완성하지 못했다.”라 한 것으로 보아, 그가 부유하고 힘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盧文弨]
춘추시대 宋 景公의 寵臣으로서 집안이 부유하였는데, 뒤에 景公을 살해하려다가 실패하여 국외로 달아났다.[역자]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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