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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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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서야 할 일과 말아야 할 일
此言爲善則預, 爲惡則去, 不欲黨人非義之事也。
凡損於物, 皆無與焉。然而, 仁人所憫, 況死士歸我, 當棄之乎?
, , , , 前代之所貴, 而吾之所行也, 以此得罪, 甘心瞑目。
至如, , 之徒, 非君子之所爲也。
如有逆亂之行, 得罪於君親者, 又不足卹焉。
親友之迫危難也, 家財己力, 當無所吝, 若, 無理請謁, 非吾敎也。
墨翟之徒, 世謂熱腹;楊朱之侶, 世謂冷腸, , 當爾。


6. 나서야 할 일과 말아야 할 일
왕자진王子晉이 말하기를 “밥 짓는 일을 거들면 맛을 볼 수 있고, 싸움을 거들면 다치게 된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착한 일은 함께하고 나쁜 일은 피하며, 남들의 의롭지 못한 일에 함께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남에게서 손해 입을 일에는 다들 간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곤궁한 새가 품안으로 날아드는 것도 어진 사람이라면 불쌍하게 여기는 법, 하물며 위급해진 선비가 나에게 의탁해 오는데 그를 내쳐서야 되겠는가?
오원伍員이 어부에게 의탁한 일, 계포季布가 상여수레에 오른 일, 공융孔融장검張儉을 숨겨준 일, 손숭孫嵩조기趙岐를 숨겨준 일 등은 전대에 귀하게 여긴 일로서 나라도 그렇게 할 것이며, 이런 일로 죄를 짓게 된다면 마음으로 달게 받아들이고 눈을 감겠다.
곽해郭解가 남 대신에 원수를 갚아준 일이나, 관부灌夫가 땅을 요구한다고 마구 화를 낸 일 등은, 협객俠客들이나 하는 일이지 군자君子가 할 일은 아니다.
만약 역란逆亂의 행위로 임금과 어버이에게 죄를 지은 자라면 불쌍하게 여길 것도 없다.
가까운 친구에게 어려움이 닥치게 되면 가재家財와 자신의 힘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지만, 만약 멋대로 계략을 꾸며 이치에 맞지 않는 청탁을 해오는 경우라면 내가 어찌 하라고 할 바가 아니다.
묵적墨翟의 무리를 세상에서 뜨거운 가슴이라 하고, 양주楊朱의 무리를 세상에서 차가운 가슴이라고 하는데, 가슴은 차가워서도 안 되고 뜨거워서도 안 되며, 마땅히 인의仁義로써 조절해야 한다.


역주
역주1 王子晉云……佐鬪得傷 : 王子晉은 周 靈王의 太子이다. 《國語》 〈周語 下〉에서 “밥 짓는 일을 거드는 자는 맛을 보게 되고, 싸움을 거드는 자는 다치게 된다.[佐雝者嘗焉 佐鬪者傷焉]”라 하였다. 雝(옹)은 饔과 통용된다.[趙曦明]
《淮南子》 〈說林訓〉에서 “제사를 거드는 자는 음식 맛을 보게 되고, 싸움을 말리는 자는 상처를 입는다.[佐祭者得嘗 救鬪者得傷]”라 한 것도 王子晉의 말에 근거한 것이다. 《意林》에서 《唐子》를 인용하여, “싸움을 거드는 자는 다치고, 남의 일에 간여하는 자는 망한다.[佐鬪者傷 預事者亡]”라고 했다.[王利器]
역주2 窮鳥入懷 : 《魏志》 〈邴(병)原傳〉에서 “邴原은 같은 郡 출신의 劉政과 함께 용맹하고 지략이 있으면서 씩씩한 기상을 지녔다. 遼東太守 公孫度가 劉政이 두렵고 싫어서 죽이려 하자 그는 곤궁하고 다급해져서 邴原에게 의탁해왔다.”라 하였고, 裴松之의 注에서 《魏氏春秋》를 인용하여, “劉政이 邴原에게 의탁하며 말하기를 ‘곤궁한 새가 품속으로 들어가오.[窮鳥入懷]’라고 하자, 邴原이 ‘이 품속이 들어갈 만한지 어떻게 알았소?’라 했다.” 하였다.[趙曦明]
역주3 伍員(운)之託漁舟 : 《史記》 〈伍子胥傳〉에서 “伍子胥는 楚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員이다. 吳나라로 달아나는데, 추격하는 자가 뒤에 있었다. 한 어부가 배를 타고 있다가 伍子胥가 급한 것을 알고서 그를 건너게 해주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4 季布之入廣柳 : 《史記》 〈季布傳〉에서 “季布는 楚 사람이었다. 기질이 의리가 있고 俠氣를 지녀 楚 지역에서는 유명하였다. 項籍이 군사를 거느리도록 하자 여러 차례 漢王을 곤경에 빠뜨렸다. 項羽가 멸망하자 漢 高祖가 季布를 잡아들이려고 千金을 현상금으로 내걸었다. 季布는 濮(복)陽의 周氏에게 숨었는데, 周氏는 계책을 내어 季布의 머리를 깎고 형틀을 씌우고 거친 베옷을 입혀서, 상여를 싣는 커다란 수레에다 싣고서[置廣柳車中] 魯 땅으로 가서 朱家의 집에다 팔아넘겼다. 朱家는 속으로 季布인 줄 알고 사서는, 그를 밭에다 두고서 그의 자식들에게 단단히 일러서 함께 식사하도록 했다.” 하였다.[趙曦明]
《史記集解》에서 “服虔은 ‘東郡에서는 廣轍車를 廣柳車라 한다.’라고 했고, 鄧展은 ‘상여수레’라 했으며, 李奇는 ‘크고 높은 수레이다.’라고 했고, 瓚은 ‘오늘날 운행하는 큰 수레가 이것이다.’라고 했다.” 《索隱》에서는 “《周禮》에서 이르기를 ‘柳翣(삽)을 설치한다.’라고 했고, 《周禮》의 鄭玄 注에서 ‘柳는 모은다는 뜻으로, 여러 장식들을 모은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상여수레를 柳라고 한 것이다.”라고 했다.[盧文弨]
역주5 孔融之藏張儉 : 《後漢書》 〈黨錮傳〉에서 “張儉은 字가 元節이고 山陽 高平 사람이다.”라 하였고, 〈孔融傳〉에서 “孔融은 字가 文擧이고 魯國 사람으로 孔子의 20대 손이다. 山陽의 張儉이 中常侍 侯覽의 미움을 받아 刊章(고발인의 이름을 뺀 체포영장)으로 張儉을 체포하려 하였을 때, 張儉은 孔融의 형인 孔褒와 친분이 있어 달아나 孔褒에게 갔으나 만나지 못했다. 당시 孔融은 나이가 열여섯이었는데, 그의 궁색한 표정을 보더니 ‘저 혼자서 그대를 맞이하여 주인 노릇은 못하겠지요?’라 하고서는 그를 집에 머무르게 하였다. 뒤에 일이 누설되었으나 張儉은 벗어날 수 있었고, 孔氏 형제는 서로 죽겠다고 하였는데, 詔書에서 결국 孔褒의 죄만 묻도록 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6 孫嵩之匿趙岐 : 《後漢書》 〈趙岐傳〉에 따르면, “趙岐는 字가 邠(빈)卿이고 京兆 長陵 사람이다. 환관들을 부끄럽게 여기고 미워하여, 中常侍 唐衡의 형 唐玹이 京兆尹이 되자 그 집안 식구들을 거두어 모조리 다 죽였다. 趙岐는 달아나 스스로 성명을 숨기고 北海의 시장에서 떡을 팔았다. 당시 安丘의 孫嵩이 시장을 돌아보다가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아채고서 불러서 함께 수레에 탔다. 趙岐가 두려워 실색을 하자 孫嵩은 남들을 가리고서 말하기를 ‘나는 北海의 孫賓石이오. 집안 식구가 많아서 구해드릴 형편이 될 수 있을 거외다.’라고 하였다. 결국 함께 집으로 돌아와 2중 벽 속에다 감추어주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7 郭解之代人報讎 : 《史記》 〈游俠傳〉에서 “郭解는 軹(지) 사람으로 字는 翁伯이다. 체구는 작았어도 매우 사나워, 몸을 던져서 친구를 구실 삼아 원수를 갚아주기도 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8 灌夫之橫怒求地 : 《史記》 〈魏其侯傳〉에서 “武安侯 田蚡(분)이 승상이 되더니 籍福을 시켜 魏其侯에게 성 남쪽의 밭을 요구하였지만 허락하지 않았다. 灌夫는 그 이야기를 듣자 籍福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하였지만, 籍福은 두 사람 사이에 틈이 생기는 것이 싫어서 자신은 괜찮은 척하면서 승상에게 그만두게 하였다. 그러고 난 후 武安侯는 魏其侯와 灌夫가 사실은 화가 나서 밭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역시 화를 내며 말하기를 ‘나 田蚡이 魏其侯를 섬기면서 못하는 일이 없었는데, 어떻게 밭 몇 이랑을 아까워한단 말인가? 또 灌夫는 무슨 참견인가?’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灌夫와 魏其侯에 대해 크게 분노하게 되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9 游俠 : 《史記》 〈游俠傳〉의 《集解》에서 荀悅의 말을 인용하여, “意氣를 숭상하고 〈상대방을〉 위압하기도 하고 복을 베풀기도 하면서, 사적인 交遊을 맺어 세상에 굳건함을 세우는 자를 일컬어 遊俠이라 한다.”라고 했다.[盧文弨]
俠客을 말하며 遊俠으로 쓰기도 한다.[역자]
역주10 橫生圖計 : 마구 수단을 부리다. 함부로 계략을 만들어내다.[역자]
역주11 腸不可冷 腹不可熱 : 가슴은 차가워서도 안 되고 뜨거워서도 안 된다. 뜨거운 가슴이란, 儒家의 차등적인 사랑에 대하여 차등 없는 兼愛를 주장하면서 弱者와 賤民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쏟았던 墨翟과 그 일파의 사상을 말한 것이고, 차가운 가슴이란 全性保眞을 이루기 위해 外物로 인해 자신을 손상시킬 수 없다면서 극단적 爲我思想(이기주의)을 주장한 楊朱와 그 일파의 사상을 가리킨다. 원문에는 腸과 腹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모두 마음 또는 가슴으로 풀이해도 무방하다.[역자]
역주12 以仁義 爲節文 : 어진 사람은 남을 사랑하고 베푸는 데 있어 동등하다. 의로운 사람은 자신을 바르게 하며 처신을 합당하게 한다. 墨子의 兼愛는 仁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仁을 해치는 것이고, 楊朱의 爲我는 義와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義를 해치는 것이어서, 孟子가 결단코 거부하며 막았다.
《孟子》 〈離婁 上〉에서 “禮의 핵심은 이 두 가지를 조절하고 꾸며주는[節文] 것이다.”라 하였고, 《史記》 〈禮書〉에서 “禮에는 조절해주고 꾸며주는 것[節文]이 있다.”라고 했다.[盧文弨]
仁義로 조절하고 꾸며주다. 여기서 節文은 조절하고 文飾함을 말한다.[역자]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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