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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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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라의 存亡이 그의 生死에 - 楊遵彦과 斛律明月
6. 나라의 存亡이 그의 生死에 - 楊遵彦과 斛律明月
卽位數年, 便, 略無
북제北齊문선제文宣帝가 즉위하고 몇 년이 지나면서 주색酒色에 빠져 방종하니 도무지 〈나라에〉 기강이 없었다.
尙能委政尙書令, 內外淸謐, 朝野, 各得其所, 物無異議, 終之朝。
그래도 정치를 상서령尙書令양준언楊遵彦(楊愔)에게 맡겨서 나라 안팎이 조용하고 조야朝野가 편안하였으며, 각기 제자리를 찾아 큰 논란 없이 천보天保 연간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遵彦後爲, 於是衰矣。
뒤에 양준언楊遵彦효소제孝昭帝에 의해 피살되면서 형벌과 정치가 이때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律明月齊朝, 無罪被誅, , 周人始有呑齊之志, 關中至今譽之。
곡률명월斛律明月은 적의 공격을 무찔러 나라를 지킨 북제北齊의 신하였지만, 죄 없이 주살되어 장수와 병졸들이 흩어지자 북주北周 사람들이 북제北齊를 삼킬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관중關中 지역에서는 지금까지도 그를 기리고 있다.
此人用兵, 豈止而已哉!
이 사람의 용병술이 어찌 만민의 바람을 채워줄 정도에 그칠 뿐이랴!
國之存亡, 係其生死。
나라의 존망存亡이 그의 생사生死에 달려 있었다.
역주
역주1 齊文宣帝 : 《北齊書》 〈文宣帝紀〉에 “顯祖 文宣皇帝는 諱가 洋이고 字는 子建이며, 高祖의 둘째 아들로 世宗의 同母弟이다. 東魏의 선양을 받아 皇帝의 지위에 올라 연호를 武定 8년에서 天保 元年으로 고쳤다. 6, 7년 후에 공적을 자랑하며 술에 빠져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미쳐 날뛰기가 그지없었으며, 어리석고 사악하며 잔인하고 난폭하기가 근자에 그 유례가 없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2 沈湎縱恣 : 주색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방종하다.[역자]
역주3 綱紀 : 紀綱. 紀律. 규율과 질서.[역자]
전체를 지탱하는 것이 綱이요, 나누어 맨 것이 紀이다. 응용하여 紀律의 뜻을 갖는다. 《詩經》 〈大雅 棫樸〉에서 “부지런한 우리 임금, 사방의 기강이 되시도다.[綱紀四方]”라 하였고, 또 〈假樂〉에서는 “綱이 되며 紀가 되어[之綱之紀], 편안함이 벗에게까지 미치도다.”라 하였다. 《史記》 〈夏禹本紀〉에서는 “부지런하고 화목하여, 綱이 되고 紀가 되었다.[爲綱爲紀]”라 했다.[王利器]
역주4 楊遵彦 : 北齊人 楊愔이다. 遵彦은 그의 字이다. 北齊의 뛰어난 정치가로서 昏主였던 文宣帝를 대신하여 善政을 펼쳐 후대 논자들의 칭송을 받은 인물이다.[역자]
《北齊書》 〈楊愔傳〉에서 “愔은 字가 遵彦이고 弘農 華陰 사람으로, 小名은 秦王이었다. 楊遵彦이 죽자 中書令 趙彦深이 중요한 업무를 대신하여 통괄하였는데, 鴻臚少卿이었던 陽休之가 몰래 남에게 ‘천릿길을 떠날 판에 준마를 죽이고서 노둔한 나귀에 채찍을 가하고 있으니, 참으로 서글프도다.’라고 말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5 晏如 : 편안하다. 《漢書》 〈諸王侯表〉의 ‘海內晏如’에 대한 注에서 “편안하다.”라고 했다.[王利器]
역주6 天保 : 北齊 文宣帝의 年號로, 550년에서 559년까지이다.[역자]
역주7 孝昭所戮 : 《北齊書》 〈孝昭帝紀〉에서 “諱는 演이고 字는 延安이며, 神武帝의 여섯 번째 아들로서 文宣帝의 同母弟이다. 文宣帝가 붕어하고 어린 임금이 즉위하자, 太傅錄尙書事에 임명되어 조정의 政事가 모두 그에 의해 결정되었다. 乾明 元年에 廢帝를 따라 鄴에 가서 領軍府에 머물렀다. 당시 楊愔 등은 孝昭帝의 위세와 명망이 이미 높으므로 마음속으로 孝昭帝의 위세에 핍박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孝昭帝를 太師, 司州牧 및 錄尙書事로 삼고, 京畿大都督에서는 해임할 것을 건의하였다. 孝昭帝는 자신이 왕실의 자손이라서 시기와 배척을 당한다고 여기고서 마침내 長廣王과 모의하고는, 대궐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술을 몇 차례 돌리더니, 앉은 자리에서 楊愔 등을 잡아 御府 안에서 斬首하였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8 刑政 : 형벌과 정치이다. 《春秋左氏傳》 隱公 11년에서 “君子가 말하기를, 鄭나라 莊公은 정치와 형벌을 제대로 행하지 못했다. 정치로써 백성들을 다스리고 형벌로써 부정을 바로잡는 것인데, 德政이 없을 뿐 아니라 위엄 있는 형벌도 없었으니, 그래서 부정한 일이 생기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困學紀聞》 13에서 “高洋의 죄악은 石虎나 浮生보다 더하지만, 楊愔 한 사람이 능히 백성들의 고통을 건져줄 수 있었도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9 斛(곡)律明月 : 北齊의 左丞相 斛律光이다. 《北齊書》 〈斛律金傳〉에서 “斛律金의 아들 光은 字가 明月이었다. 北周의 장군 韋孝寬은 斛律光의 용맹을 꺼려, 마침내 流言을 만들어서 첩자를 시켜 그 글을 鄴에 누설시켰는데, 祖珽과 穆提婆가 마침내 서로 손잡고 모의하여 그 流言을 황제에게 알렸다. 〈황제는〉 使者를 보내어 斛律光에게 駿馬를 하사하고는 그가 사죄하러 오자, 涼風堂으로 끌어들여 劉桃枝가 뒤에서 잡아 죽였다. 그리하여 詔書를 내려 斛律光이 모반을 했다고 하고, 곧 그의 일족을 다 멸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北周 武帝가 뒤에 鄴에 들어가 그를 上柱國公으로 追贈하고서, 조서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만약 있었더라면, 짐이 어떻게 鄴에 들어올 수가 있었겠느냐?’라고 말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10 : 곡
역주11 折衝之臣 : 《呂氏春秋》 〈召類〉에서 “孔子께서 ‘廟堂에서 수련을 하고 천 리 바깥에서 折衝을 하는 자란, 바로 司城子罕을 일컫는 말이로다!’라고 하셨다.”라 했고, 注에서 “衝車란 적에게 부딪히는 수레이다. 道가 있는 나라는, 공격하려고 하는 자로 하여금 천 리 바깥에서 수레가 부딪혀 돌아가게 하여, 감히 못 오게 만든다.”라 하였다.[盧文弨]
折衝이란 적의 창을 꺾고 전차에 부딪혀서 상대의 공격을 무찔러 막는다는 뜻인데, 轉하여 외교적인 교섭에서 담판을 하거나 흥정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역자]
역주12 將士解體 : 《春秋左氏傳》 成公 8년의 “사방의 제후가 누군들 마음이 떠나지 않겠소?[其誰不解體]”에 대한 《正義》에서 “晉나라를 섬기는 마음이 다들 소홀하고 태만해진다는 말이다.”라고 했다.[盧文弨]
《北齊書》 〈宗室 思好傳〉에서 “幷州의 여러 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좌승상 斛律明月은 대대로 나라의 공신으로서 위엄이 이웃나라에 알려졌는데, 아무런 죄나 허물 없이 갑작스레 죽임을 당했습니다.’라고 했다.”라 하였다. 盧思道의 〈北齊興亡論〉에서는 “斛律明月에게 屬鏤의 검을 내린 일로, 그 원한이 천지를 움직였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13 萬夫之望 : 《周易》 〈繫辭 下〉에서 “군자는 은미한 것을 알고 드러난 것을 알며, 부드러운 것을 알고 강한 것을 아나니, 많은 사람들의 희망[萬夫之望]이다.”라 하였다.[盧文弨]

안씨가훈(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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