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梁世
팽성군彭城 ,
교주자사交州刺史유발勃之孫, 早孤家貧, 燈燭難辦, 常買
尺寸折之,
明夜讀。
孝
원제元初
, 精選
,
유기綺以才華, 爲
, 殊蒙禮遇, 終於
。
주첨朱詹, 世居
강릉江陵, 後出
, 好學, 家貧無資, 累日不爨, 乃時呑紙以實腹, 寒無氈被, 抱犬而臥。
犬亦
, 起行盜食, 呼之不至, 哀聲動隣, 猶不廢業, 卒成學士, 官至
진남녹사참군鎭南錄事參軍, 爲孝
원제元所禮。
장봉세臧逢世, 年二十餘, 欲讀
반고班固《
한서漢書》, 苦假借不久, 乃就姊夫
유완劉緩乞丐
한서書翰
, 手寫一本,
服其志尙,
옛사람은 부지런히 배웠으니, 〈졸음을 쫓느라〉 송곳을 움켜쥐거나, 〈유학의 길에 나서려고〉 도끼를 던져 보이거나, 눈[雪]빛에 〈책을〉 비추어 보거나, 반딧불이를 〈명주자루에다〉 모으거나, 김을 매면서도 경전을 끼고 있거나, 양을 치면서도 〈부들〉 잎 쪽지로 책을 엮었으니 역시 부지런히 열심히 배웠다고 하겠다.
양梁나라 때 팽성군彭城郡의 유기劉綺는 교주자사交州刺史 유발劉勃의 손자로, 어려서 부모를 잃고 집안이 가난하여 등촉燈燭을 마련하기 어렵자 늘 물억새를 사다가 잘게 잘라 태워서 밝게 밝혀놓고 밤중에도 책을 읽었다.
양梁 원제元帝가 처음 회계會稽로 나가 막료들을 정선할 때 유기劉綺는 그 재능이 출중하여 국상시國常侍 겸 기실記室이 되어 특별한 예우를 받았으며 마침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까지 이르렀다.
의양현義陽縣의 주첨朱詹은 대대로 강릉江陵에 살다가 나중에 양도揚都로 나왔는데,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고 재산이 없어 며칠 동안 밥을 짓지 못하면 종이를 삼켜서 배를 채웠으며, 추워도 덮을 담요가 없으면 개를 껴안은 채 누웠다.
개 또한 굶주려서 음식을 훔쳐 먹으러 나가서 불러도 오지 않으면 〈개를 부르는〉 애처로운 소리가 이웃에까지 들렸건만 오히려 학업은 포기하지 않아서, 마침내 학사學士가 되고 벼슬이 진남녹사참군鎭南錄事參軍에까지 이르러 원제元帝에게 예우를 받았다.
이는 〈대개의 사람들은〉 할 수가 없는 일이니 그 역시 부지런히 공부한 현인賢人들 중 한 사람이다.
동관군東莞郡의 장봉세臧逢世는 나이 스물 남짓에 반고班固의 《한서漢書》를 읽고자 하였으나 책을 오래 빌릴 수 없어 고민하다가 자형 유완劉緩에게 명함이나 편지의 〈오려낸〉 가장자리를 얻어와 《한서》 한 질을 다 손으로 베껴 쓰니, 군부軍府의 사람들이 그의 의지에 감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