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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1)

안씨가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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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文人의 處世
不屈二姓, 之節也;何事非君, 之義也。
自春秋已來, 家有奔亡, 國有呑滅,
然而, 一旦屈膝而事人, 豈以存亡而改慮?
在時君所命, 不得自專, 然亦文人之巨患也, 當務從容之。


4. 文人의 處世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것이 백이伯夷숙제叔齊의 절개였고,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겠느냐고 한 것이 이윤伊尹기자箕子의 뜻이었다.
춘추시대 이래로 망해 달아난 집안도 있었고 멸망한 나라도 있었으니, 군신君臣 관계가 반드시 일정하고 변함없는 관계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군자는 사귀다가 절교를 했어도 뒷소리가 없는 법, 일단 무릎을 굽히고 남을 섬기게 되었다면 어찌 〈상대의〉 존망에 따라 생각을 바꾸겠는가?
진림陳琳원소袁紹 밑에서 글을 쓰면서는 조조曹操를 일컬어 승냥이라고 해놓고, 〈조조曹操의〉 나라에서 격문檄文을 쓰면서는 원소袁紹를 지목하여 독사라 하였다.
그 당시 임금의 명령이라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겠지만, 역시 문인들의 큰 걱정거리이니 마땅히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역주
역주1 夷齊 : 《史記》 〈伯夷列傳〉에 “伯夷와 叔齊는 孤竹君의 두 아들이다.…武王이 殷나라의 혼란을 평정하자 천하가 周나라를 따랐는데, 伯夷와 叔齊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周나라 곡식을 먹지 않는 것이 의로운 일이라 여기고 首陽山에서 숨어 살았다.”라 하였다.[王利器]
역주2 伊箕 : 《史記》 〈宋世家〉에서 “紂임금이 음란하고 방탕하게 놀아서 箕子가 간언을 하였지만 듣지 않자, 누군가가 ‘떠나시는 게 좋겠습니다.’라 하였다. 箕子는 ‘남의 신하가 되어서 간언을 하였는데 듣지 않는다고 떠난다면, 이는 임금의 악을 드러내고 자신이 백성들의 사랑을 얻으려는 것이니 나는 차마 못하겠소.’라고 하고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척하다가 노비가 되었다.”라 하였다.[趙曦明]
《孟子》 〈公孫丑 上〉에서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겠으며 누구를 부린들 백성이 아니겠는가 하면서, 다스려져도 나아가고 혼란해도 나아간 것은 伊尹이었다.”라 하였다.[王利器]
伊尹은 나중에 湯王을 도와 夏의 桀王을 멸망시키고 殷나라를 세웠던 인물이고, 箕子는 殷의 暴君이었던 紂王의 친척이다.[역자]
역주3 君臣固無常分矣 : 《春秋左氏傳》 昭公 32년에서 “社稷은 늘 떠받드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고, 君臣의 자리도 늘 변함없는 것이 아니니, 예로부터 그러하였다.”라 하였다.[盧文弨]
역주4 君子之交 絶無惡聲 : 《戰國策》 〈燕策〉에 의하면 樂毅가 燕 惠王에게 보낸 답장에서 “신이 듣기로 옛날 군자들은 절교를 하여도 악담을 늘어놓지 않았고[交絶不出惡聲], 충신은 나라를 떠나도 그 이름을 더럽히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라 했다고 한다.[趙曦明]
역주5 陳孔璋居袁裁書 則呼操爲豺狼 : 《魏志》 〈袁紹傳〉의 注에 인용된 《魏氏春秋》에 의하면 “陳琳은 袁紹를 위해 州郡에 보낸 격문에서 ‘曹操는 승냥이나 이리 같은 야심[豺狼野心]으로 재앙을 일으킬 음모를 몰래 품고서, 동량들을 마구 꺾어서 漢나라 왕실을 허약하게 만들려 하고 있다.’라고 하였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6 在魏製檄 則目紹爲蛇虺(훼) : 陳琳의 文集이 전하지 않아서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趙曦明]
역주7 : 훼
역주8 消息 : 고려하다. 참작하다. 본서 제6 〈風操〉篇 2의 주 4) 참조.[역자]

안씨가훈(1)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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