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時君所命, 不得自專, 然亦文人之巨患也, 當務從容
之。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것이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절개였고,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겠느냐고 한 것이 이윤伊尹과 기자箕子의 뜻이었다.
춘추시대 이래로 망해 달아난 집안도 있었고 멸망한 나라도 있었으니, 군신君臣 관계가 반드시 일정하고 변함없는 관계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군자는 사귀다가 절교를 했어도 뒷소리가 없는 법, 일단 무릎을 굽히고 남을 섬기게 되었다면 어찌 〈상대의〉 존망에 따라 생각을 바꾸겠는가?
진림陳琳은 원소袁紹 밑에서 글을 쓰면서는 조조曹操를 일컬어 승냥이라고 해놓고, 〈조조曹操의〉 위魏나라에서 격문檄文을 쓰면서는 원소袁紹를 지목하여 독사라 하였다.
그 당시 임금의 명령이라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겠지만, 역시 문인들의 큰 걱정거리이니 마땅히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