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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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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俗字의 사례들
45. 속자俗字의 사례들
世間小學者, 不通古今, 必依小篆, 是正書記。
세간의 소학小學이라 하는 것은 고금古今의 변화를 꿰뚫지 못하고 반드시 소전小篆에 의거하여 서적의 문자를 바로잡는다.
, 豈能悉得蒼頡本指哉?
무릇 《이아爾雅》, 《삼창三蒼》, 《설문해자說文解字》라 할지라도 어찌 창힐蒼頡이 〈창제創製할 당시 문자文字〉 본래의 취지를 다 담고 있다 할 것인가?
亦是隨代損益, 互有同異。西晉已往字書, 何可全非?
이들 또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획字劃이나 자의字義가〉 줄거나 늘어나 서로 같고 다름이 생긴 것이다. 한편 서진西晉 이후의 자서字書라고 해서 어찌 모두 잘못되었다 할 수 있겠는가?
但令體例成就, 不爲耳。考校是非, 特須
다만 분석 체계를 잘 갖추어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면 된다. 문자의 시비是非를 고찰하여 교정校正하려면 특히 자형字形의 변천과정을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至如“仲尼居”, 三字之中, 兩字非體, ,
예컨대 ‘중니거仲尼居’ 같은 문구는 세 글자 가운데 두 글자가 정자체正字體에 맞지 않는다. 《삼창三蒼》에서는 ‘’의 편방偏旁에 ‘’자가 〈있어 로〉 쓰이고 있으며,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자에서〉 ‘’의 밑에 〈자 대신〉 ‘’자를 〈두어 (거)자로〉 쓰고 있다.
如此之類, 何由可從?
이와 같은 부류의 글자들을 어찌 따를 수 있겠는가?
, 又多, 以“中”爲“仲”, 以“說”爲“悅”, 以“召”爲“邵”, 以“閒”爲“閑”:
고대에는 이체자異體字는 없으나 대신 가차자假借字가 많아서 ‘’(가운데 중)자를 ‘’(버금 중)자로, ‘’(말할 설)자를 ‘’(기쁠 열)자로, ‘’(부를 소)자를 ‘’(고을이름 소)자로, ‘’(사이 간)자를 ‘’(한가할 한)자로 삼았다.
如此之徒, 亦不勞改。
이런 부류의 글자들은 수고롭게 고칠 필요까지는 없다.
自有訛謬, 過成鄙俗,
어떤 글자는 본래 착오가 있었음에도, 그 착오가 좋지 않은 습속이 되기도 하니,
“亂”旁爲“舌”, , “黿”、“鼉”從“龜”,
’자의 편방偏旁을 ‘’로 바꾸어 〈이라고〉 쓰거나, ‘’자의 오른 편방偏旁 밑에 ‘’자가 없어지고 〈엉뚱한 편방 을 대신 써서 𢯇으로〉 쓰거나, ‘黿’자나 ‘’자의 밑에 〈(민)자 대신〉 ‘’자를 〈써서 이나 𪛄로〉 쓰거나,
“奮”、“奪”從“雚”, ,
’자나 ‘’자의 머리에 〈(순) 대신〉 ‘’자를 〈써서 이나 로〉 쓰거나, ‘’자의 속 〈广(집 엄)의 밑에〉 ‘’자를 〈써서 로〉 쓰거나,
“惡”上安“西”, “鼓”外設“皮”,
’자의 머리에 〈 대신〉 ‘西’자를 〈써서 𢙣으로〉 쓰거나, ‘’자의 오른 편방偏旁에 〈자 대신〉 ‘’자를 〈써서 로〉 쓰거나,
“鑿”頭生“毁”, “離”則配“禹”,
’자의 머리에 〈𣫞 대신〉 ‘’자가 생기게 하여 〈으로〉 쓰거나, ‘’자의 왼 편방偏旁에서 〈를 없애고〉 ‘’자와 짝을 짓게 하여 〈𩀌로〉 쓰거나,
“壑”乃施“豁”, ,
’(골짜기 학)자의 머리에 〈 대신〉 ‘’(탁 트일 할)자를 〈써서 으로〉 쓰거나, ‘’자를 ‘’(경전 경)자의 오른 편방偏旁()과 혼동하여 〈𡋻(무)𡋻(무)로〉 쓰거나,
’(언덕 고)자를 ‘’(못 택)자에서 변()을 떼어내 〈(고)자로〉 쓰거나, ‘’(사냥 렵)자가 ‘’(이리 갈)자로 되거나,
“寵”變成, “業”左益“片”,
’(총애할 총)자가 ‘’(구멍 롱)자로 변하거나, ‘’(경쇠 같은 악기를 거치据置하는 화려하고 육중한 목제 틀의 상형자인 ‘큰 나무판 업’)자의 왼편에 ‘’(조각 편)자를 덧대 〈(업)자로〉 쓰거나,
“靈”底著“器”, , 强改爲別;
’(신령스러울 령)자 밑에 〈자 대신〉 ‘’자를 붙여 〈𩆮(령)𩆮(령)으로〉 쓰거나, ‘’자는 자체에 〈(률)처럼〉 ‘’의 독음讀音도 있으므로 〈(이끌 솔)자처럼〉 굳이 다른 글자로 고치거나,
, 輒析成異; 如此之類, 不可不
’자는 자체에 〈(선)에서처럼〉 ‘’의 독음讀音도 있으므로 글자가 나뉘어 다른 글자로 바뀌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바로잡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吾昔初看《說文》, 薄世字。
내가 예전에 처음 《설문해자說文解字》를 볼 적에 세간의 속자俗字를 업신여겼다.
從正則懼人不識, 隨俗則意嫌其非, 略是不得下筆也。
정자正字를 따라 쓰자니 남들이 알아보지 못할까 겁이 나고, 속자俗字를 좇아 쓰자니 그것이 잘못된 글자라는 사실이 꺼림칙해 거의 글을 쓸 수 없었다.
所見漸廣, 更知通變, 救前之執, 將欲半焉。
소견所見이 차츰 넓어지고 더욱이 융통의 도리를 알게 되어 〈정자正字에 대한〉 이전의 집착을 극복하고자 〈정자正字속자俗字의 입장을〉 반반씩 절충하게 되었다.
若文章著述, 猶擇微相影響者行之,
문학적 글이나 학문적 글의 경우, 그래도 〈정자正字속자俗字가 큰 차이가 없어〉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 글자를 선택해 써야 하고,
官曹文書, 世間尺牘, 幸不違俗也。
관청의 문서나 세간의 서신이라면 속자俗字를 어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주
역주1 爾雅三蒼說文 : 《爾雅》는 〈釋詁〉, 〈釋言〉 등 모두 19권으로, 周나라 이래의 기록을 모아 단어의 뜻과 고대의 명칭을 고증한 저작이다. 秦‧漢 무렵에 이루어졌으며 최소한 漢 武帝 시대(B.C. 141~B.C.87 재위) 이전에는 이 책이 완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三蒼》은 세 권의 小學書, 곧 《蒼頡篇》, 《訓纂篇》, 《滂喜篇》을 함께 일컫는 말로, 가장 나중에 쓰인 賈魴의 《滂喜篇》이 漢 和帝(A.D. 89~105) 때에 이루어졌다.
《說文解字》는 許愼에 의해 漢 安帝 建光 元年(A.D. 121)에 지어졌는데 小篆을 표제자로 들고, 字義를 설명하며, 字形‧字音과의 관계도 설명하였다.
대개 이 책들이 魏‧蜀‧吳 三國時代(220~280) 이전의 자료들이므로, 顔之推는 漢 이전과, 漢 멸망 이후 三國時代까지를 古代, 혹은 前近代로 여긴 다음, 西晉(265~316)시대 이후 東晉(317~420)에 이르는 近代를 포함시켜 南北朝(420~589)에 이르기까지의 當代를 대비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역자]
역주2 專輒 : 본서 제19 〈雜藝〉편에도 “더구나 멋대로[專輒] 글자를 만들어냈으니, 졸렬함이 江南보다 심하다.”는 구절이 있다. 《說文解字》의 段玉裁 注에 의하면 “무릇 사람은 믿고 기대는 데가 있으면 함부로 한다.”고 하였다.[王利器]
壟斷 혹은 專橫하다. 본편 37 주 9) 참조.[역자]
역주3 消息 : 消長. 盛衰. 변화.[역자]
역주4 三蒼尼旁益丘 : 郝懿行에 의하면 “《說文解字》에도 屔(니)자가 있으므로, 《三蒼》에만 나오는 글자는 아니다.”라고 하였다. 다시 《說文解字》에 의하면 “屔는 정상 아래의 물이 흘러드는 구릉[丘]이다.”라고 하였다. 《爾雅》 〈釋丘〉에서는 “물이 고여 멈추는 곳이 泥丘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釋文에 “泥는 또한 屔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름이 丘인데 자를 仲屔라고 한 것은 그 의미가 정확히 서로 배합된다. 漢나라 때 사람들은 仲泥라고도 썼는데, 洪适의 《隷釋》 〈漢相府小史夏堪碑〉를 보면, 대개 屔는 정자이고, 泥는 通用字이며, 尼는 假借字이다. 古人의 文字는 簡單하고 素朴한 까닭에 假借字를 정자로 여긴 예가 많다.[王利器]
역주5 說文尸下施几 : 《說文解字》에 의하면 “凥(거)는 處의 뜻이다. ‘머문다[尸]’의 뜻을 취한 것으로, 안석[几]을 얻어 멈춘 것이다. 《孝經》에서 ‘仲尼가 머물렀다[凥].’고 하였으니, 凥란 한가로이 머묾이 이와 같았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생각건대, 지금의 居자는 《說文解字》에서는 ‘쪼그려 앉다[蹲踞]’의 뜻을 지닌 글자로 여겨지고 있다.[盧文弨]
역주6 古無二字 : 二字란 異體字의 뜻이다. 異體字란 同音同義異形의 글자들로 동시대에 동일한 글자로 쓰일 수 있는 글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컨대 群과 羣은 서로 異體字이나 縱書를 위주로 하던 고대에는 羣자만 쓰였을 뿐, 群자는 없었음을 말한 것이다. 甲骨文에는 異體字가 많았으나 顔之推의 시대에는 甲骨文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였으므로, 문자통일[書同文]을 추구하던 西周시대나 小篆 창제 당시 秦나라의 서사습관을 위주로 말한 것이다.[역자]
역주7 假借 : 同音異義異形의 서로 다른 글자를 書寫의 간편성이나 避諱 등의 이유로 대신 빌려 쓴 것이다. 이렇게 대신 빌려 쓴 글자를 假借字라고 하며 通用字 혹은 通假字라고도 한다. 예컨대, 鄭玄의 玄자는 淸나라 康熙帝의 이름이 玄燁이므로 淸나라 사람들이 玄자를 避諱하느라 玄과 韻攝이 같은[同音] 元자로 쓰곤 하였는데, 이런 현상을 일컬은 것이다. 玄과 元은 모두 山攝의 合口音의 글자들이다. 즉 모두 韻母가 ‘-üan’으로 같다.[역자]
역주8 揖下無耳 : 徐鯤에 의하면 “北魏 때에 지어진 〈弔殷比干墓文〉에는 揖이 𢯇으로 되어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밑에 耳자가 없는 글자’일 것이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9 席中加帶 : 《文選》 〈上林賦〉에 의하면 “머뭇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逡巡避廗]”는 구절에서 李善은 “廗(대)는 席과 古字가 통한다.”고 주석하였다.[王利器]
역주10 巫混經旁 : 徐鯤에 의하면 “〈太公呂望碑〉에는 巫가 𡋻(무)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王利器]
역주11 皐分澤片 : 《孔子家語》 〈困誓〉편에서 “무덤을 바라보니, 언덕 같구나.[睪如也]”라고 쓰인 것이, 《荀子》 〈大略〉편에서는 “언덕 같구나.[皐如也]’로 되어 있는데, 이런 것이 그 외에도 많다.[盧文弨]
郝懿行에 의하면 “皐와 睪(고)는 고대에 通用하였다.”라고 하였다.[王利器]
睪는 우리나라에서는 ‘엿볼 역’의 독음만 수용되고 있으나, 李光地(淸) 등이 지은 《音韻闡微》에 의하면 皐(언덕 고)의 가차자로 쓰일 때에는 독음이 歌鏖切(고)이라 하였으므로, 여기서는 睪(고)로 음역한 것이다.[역자]
역주12 獵化爲獦(갈) : 宋本의 原注에 의하면 “獦은 讀音이 葛(갈)로, 짐승 이름이다. 《山海經》에 나온다.”라고 하였다.[趙曦明]
《山海經》 〈東次四經〉에 의하면 “이곳의 어떤 짐승은 생김새가 이리 같은데 붉은 머리에 쥐 눈을 하고 소리는 돼지와 같으며, 이름을 猲狙라고 한다.”고 하였다.[역자]
역주13 竉(롱) : 宋本의 原注에 의하면 “竉은 독음이 郎動反(롱)으로, ‘구멍[孔]’의 뜻이므로 ‘穴’ 부수를 따른 것이다.”라고 하였다.[趙曦明]
역주14 率(솔)字自有律音 : 《太平御覽》 16에 인용된 《春秋元命包》에 의하면 “律(법도)을 率(률)이라 일컫는다.”고 하였다.[王利器]
《說文解字》 率部의 段玉裁 注에 의하면 “𧗿(솔)은 ‘거느리다[將𧗿]’의 뜻이며, 䢦(솔)은 ‘이끌다[先導]’의 뜻이나, 모두 본디 자를 쓰지 않고 率자를 쓰고 있다.”고 하였으나, 이 절의 앞부분에서 “고대에는 異體字가 없었다.[古無二字]”고 한 데 비추어, 顔之推는 𧗿이나 䢦 같은 異體字들이 자생된 원인이 異讀音 率(률)이 만연하기 시작한 것과 상관이 있다고 여긴 것이다.[역자]
역주15 單(단)字自有善音 : 郝懿行에 의하면 “《廣韻》에 ‘單(선)은 單(선)襄公의 후예이다.’라고 하였으나, 다른 성씨로는 單(단)複이라 할 때의 單(단)으로 읽히기도 한다. 《廣韻》에 ‘可單(단)氏는 나중에 單(단)氏로 성을 고쳤다.’는 성씨가 이것이다.”라고 하였다.[王利器]
《集韻》 〈寒韻〉에 의하면 “鄭나라에는 櫟(역)邑大夫 單(단)伯이 있는데 〈그의 姓으로는〉 檀(단)을 통용자로 쓴다.”고 하였다. 이 절의 앞부분에서 “대신 가차자가 많아서[又多假借]”라고 한 데 비추어볼 때, 顔之推는 單(단)氏가 檀(단)氏로 통용해 쓰는 관습이 單(선)氏가 만연한 현상과 상관이 있다고 여긴 것이다.[역자]
역주16 : 治는 독음이 直之切(치)이다.[盧文弨]
宋나라 呂祖謙의 《少儀外傳》에서는 治가 知로 되어 있다.[王利器]
《廣韻》에 의하면 治는 平聲(直之切)과 仄聲(直利切, 혹은 直吏切)으로 독음이 구분된다. 盧文弨가 독음을 直之切(치)이라고 말한 것은 平聲으로 읽어야 함을 말한 것이며, 이는 治자가 대개 ‘따져서 밝히다[訟辭]’나 ‘다듬다[理]’의 뜻을 지녔음을 가리킨 것이다.[역자]
역주17 : 《少儀外傳》과 宋나라 孙奕의 《示兒编》에서는 蚩가 嗤(비웃을 치)로 되어 있는데, 이 두 글자는 고대에 통용되었다.[王利器]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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