或問:“《山海經》,
, 而有
, 如此郡縣不少, 以爲何也?”
어떤 이가 물었다. “《산해경山海經》은 하夏의 우禹임금과 백익伯益이 기술하였는데, 장사長沙‧영릉零陵‧계양桂陽‧제기諸曁와 같은 〈진秦‧한대漢代의〉 군현郡縣이 적지 않게 적혀 있으니,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대답하였다. “사관史官이 〈글자에 의구심이 생기면〉 그 난을 비워놓는 일은 그 역사가 오랜 일입니다.
게다가 진秦나라 때 학문을 말살하고 동탁董卓이 서책書冊을 불태워, 전적典籍에 착오와 혼란이 생겨난 것은 단지 《산해경山海經》에만 그치지는 않을 일이지요.
예컨대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은 신농씨神農氏가 저술하였지만, 그 안에는 예장豫章, 주애朱崖, 조국趙國, 상산常山, 봉고奉高, 진정眞定, 임치臨淄, 좌풍익左馮翊 등 〈진秦‧한대漢代〉 군현郡縣의 이름과 함께 그 지역에서 산출産出되는 갖가지 약물藥物이 기재되어 있거나,
《이아爾雅》는 주공周公이 지었지만, ‘효성과 우애로 이름난 장중張仲이다.’라고 〈주 선왕周 宣王 시대의 사람을〉 말하고 있거나,
공자孔子가 《춘추春秋》를 편수編修하였지만, 경문經文에서 ‘공구孔丘가 죽었다.’고 쓰고 있거나,
《세본世本》은 〈춘추春秋 시기 노魯나라 사람〉 좌구명左丘明이 썼지만, 연왕燕王 희喜와 한 고조漢 高祖가 등장하고 있거나,
〈전국戰國 시기의 위 양왕魏 襄王 묘墓에서 발굴되었다는〉 《급총쇄어汲冢瑣語》에 진망비秦望碑에 대한 기록이 있거나, 《창힐편蒼頡篇》은 이사李斯가 지었지만, ‘한漢이 천하天下를 병합倂合하자 해내海內가 하나로 모였다.
진희陳豨가 묵형墨刑을 당하고 한신韓信이 무너졌으니 반신叛臣이 토벌討伐되고 잔적殘賊이 괴멸壞滅되었다.’고 하였거나, 《열선전列仙傳》은 유향劉向이 지었지만, 찬贊에서는 ‘74명이 불경佛經에서 나왔다.’고 하였거나,
《열녀전列女傳》 역시 유향劉向이 지었으나 그의 아들 유흠劉歆이 다시 《열녀전송列女傳頌》을 지어 조 도양왕趙 悼襄王의 창후倡后에 이르러 끝을 맺었는데도,
전기傳記 중에 〈동한東漢 시기〉 경시제更始帝의 한부인韓夫人이나 명덕 마황후明德 馬皇后 및 양부인梁夫人 예嫕가 실려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모두는 후대後代의 사람들이 뒤섞어 넣은 것일 뿐, 본래의 글이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