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顔氏家訓(1)

안씨가훈(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안씨가훈(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32. 忌日 외에 追慕하는 날
母以亡。
來歲社日, 왕수感念哀甚, 隣里聞之, 爲之罷社。
今二親喪亡, 偶値, 及, 所經此日, 猶應, 異於餘辰, 不預飮讌、聞聲樂及行遊也。


32. 忌日 외에 追慕하는 날
나라 때 왕수王修는 모친이 사일社日에 돌아가셨다.
이듬해 사일社日왕수王修가 모친이 보고 싶어서 몹시 슬퍼하자, 이웃사람들이 그 얘기를 듣고 그를 위해 사일社日의 축제를 그만두었다.
요즘은 양친이 돌아가시고 나서 기일忌日 외에 복일伏日, 납일臘日, 춘분春分, 추분秋分, 동지冬至, 하지夏至의 절기나 기일忌日이 든 작은달의 그믐 전후 사흘 등 이런 날을 만나게 되면 그리워하면서 다른 날과는 다르게 지내며, 술 마시는 잔치에 참석하거나 노래를 듣고 유람 다니는 일은 하지 않는다.


역주
역주1 王修 : 《魏志》 〈王修傳〉에서 “修는 字가 叔治이고 北海 營陵 사람이다. 일곱 살에 모친을 여의었다.”라 하였다.[趙曦明]
역주2 社日 : 春社나 秋社를 올리는 날이다. 중국의 전통 풍습에 의하면 이날 마을 주민들이 모여 토지 신[社]에게 제사를 올린 후 함께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역자]
曆書에 立春 후 다섯 번째 戊日을 春社라 하고, 立秋 후 다섯 번째 戊日을 秋社라 하는데, 여기서의 社日은 春社인지 아니면 秋社인지 알 수 없다. 《太平御覽》 30에 《魏志》에 나오는 이 일이 인용되어 있는데, 春社에 배열되어 있다. 敦煌卷子 《伯》 2621號에 인용된 《孝子傳》에서는 “모친이 社日에 돌아가셔서 白秋에 이웃사람들이 모였는데, 王修가 그 모친 생각에 슬프게 소리치며 울자, 이웃사람들이 그 때문에 社日의 제사를 그만두었다.”라고 하여 秋社로 보았다.[王利器]
역주3 伏臘分至之節 : 《歷忌釋》에서 “四時의 代謝는 모두가 相生에 의한다. 立秋에 이르면 金으로써 火를 대신하고, 金은 火를 두려워하므로 庚日에 이르면 반드시 엎드린다. 庚은 金이다.”라 하였고, 《陰陽書》에서 “夏至 후 세 번째 庚日이 初伏이고 네 번째 庚日이 中伏이며, 立秋 후 첫 번째 庚日이 後伏이 되는데 末伏이라고도 한다.”라 하였다. 《史記》 〈秦本紀〉에서는 “德公이 처음으로 伏祠를 만들었다.”라 하였고, 《魏臺訪議》에서는 “왕이 된 사람은 각기 그 왕성한 날을 祖로 삼고 쇠퇴한 날을 臘으로 삼는다. 漢나라는 火德의 나라이고 火는 戌에 쇠하므로, 그래서 戌日을 臘으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魏晉 이후로는 이에 따라 유추하였다. 分은 春分‧秋分이고, 至는 冬至‧夏至이다.[盧文弨]
역주4 月小晦後 忌之外 : 아마도 兩親이 큰달 그믐날인 30일에 돌아가셨으나 다가온 달이 29일밖에 없는 작은달일 경우, 작은달의 그믐날을 忌日로 삼는다는 말일 것이다.[盧文弨]
六朝 때는 또 忌月에 관한 얘기도 있었다. 張融이 효심이 깊어 忌月 30일간 음악을 듣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晉 穆帝가 后妃를 맞이하기에 앞서 康帝의 忌月인데도 괜찮은지 여부를 논의에 부쳤다는 이야기 등이 모두 역사 기록에 나온다.
顔之推가 여기서 ‘月小晦後’라고 한 것은 바로 忌月의 그믐 전후 3일을 말한 것인데, 작은달이라면 27, 28, 29일이 된다. 이것은 伏日, 臘日, 春分, 秋分, 冬至, 夏至와 더불어 모두 忌日 이외의 날이다. 그래서 顔之推가 어버이를 여읜 후 忌日 외에 이런 날에도 깊이 그리워하면서 다른 날과는 다르게 지내야 하며, 반드시 忌日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鄭珍]鄭珍의 견해가 옳아 이를 따른다.[王利器]
‘忌之外’의 ‘外’는 宋本에는 ‘日’로 되어 있고 抱經堂本도 이를 따랐으나, 의미상 ‘外’가 옳다.[王利器]
역주5 感慕 : 本書 제4 〈後娶〉篇에 “基는 매번 계모를 뵐 적마다 感慕하여 흐느껴 울었다.”라고 하였고, 本篇 앞에 “선친을 언급할 때 感慕하는 것이 당연하다.”, “바로 感慕함이 그지없고 슬프고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顔之推가 돌아가신 어버이를 추모할 때 모두 ‘感慕’라는 말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南史》 〈張敷傳〉에서 “태어나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나이 몇 살 정도 되자 물어서 알고 나서는 비록 어린아이였지만 感慕하는 기색이 있었다.”라 하였고, 《隋書》 〈獨孤皇后傳〉에도 “어려서 양친을 잃고 늘 感慕하는 마음을 품고서, 公卿들 중 부모가 있으신 분들이 늘 예를 다하는 것을 보았다.”라고 한 것을 보면, 아마도 ‘思慕’는 단지 마음에 두는 것을, ‘感慕’는 낯빛에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王利器]

안씨가훈(1)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