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坐上賓客,
點染, 卽成數人, 以問童孺, 皆知姓名矣。
、
、劉靈, 並文學已外, 復佳此法。翫閱古今, 特可寶愛。
有子曰庭,
中書舍人, 父子並有
, 尤妙丹靑, 常被元帝所使,
。
彭城 劉岳, 橐之子也, 仕爲
、
, 才學快士, 而畫絶倫。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 또한 오묘한 일이다. 예로부터 명사들 중에는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우리 집에 일찍이 양 원제梁 元帝가 손수 매미와 참새를 그린 흰색의 둥근 부채와 말을 그린 그림이 있었는데, 역시 따라가기 힘든 솜씨이다.
무열태자武烈太子는 유독 인물 초상에 능하여, 좌중의 빈객들을 되는 대로 쓱쓱 그리면 바로 몇 사람의 그림이 이루어졌는데, 그걸 가지고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모두 그 이름을 알아맞혔다.
소분蕭賁, 유효선劉孝先, 유령劉靈 등은 다들 문학 외에 그림 솜씨 또한 훌륭하였다. 고금古今의 그림들을 즐겨 보다 보면 특별히 보물로 간직하고 아끼고 싶은 것들이 있다.
만약 벼슬이 높지 않으면 늘 공사公私로 부림을 당하므로, 〈그림 그리는 일은〉 역시 잡된 일이다.
오현吳縣의 고사단顧士端은 상동왕湘東王 번국藩國의 시랑侍郎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뒤에 진남부鎭南府에서 형옥참군刑獄參軍이 되었고,
아들 정庭은 강릉江陵 정권의 중서사인中書舍人이었는데, 부자父子가 모두 거문고와 글씨에 능한 데에다 특히 그림을 잘 그려서 늘 원제元帝에게 부림을 당하며, 매번 부끄럽고 후회하는 마음을 품었다.
팽성彭城의 유악劉岳은 유탁劉橐의 아들로서 표기부驃騎府의 문서담당과 평지현령平氏縣令을 지냈는데, 재주와 학식이 뛰어난 선비였고 그림이 비할 데가 없었다.
뒤에 무릉왕武陵王을 따라 촉蜀으로 들어갔다가 하뢰下牢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결국 육법화陸法和를 위해 지강사支江寺의 벽에 그림을 그렸는데, 이때 여러 화공畫工들과 뒤섞여 기거했다.
만약 앞에 나온 세 사람이 다들 그림 그릴 줄을 모르고 늘 해오던 일이나 했더라면, 어찌 이러한 치욕을 당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