蒙詔賜銀百兩, 已於揚州小郊北地
, 便値
淪沒, 流離如此, 數十年間, 絶於還望。
但以門衰, 骨肉單弱,
之內, 傍無一人,
他鄕, 無復
。
돌아가신 부모님은 모두 아직 고향인 건업建鄴의 선산으로 돌아가시지 못하고, 객지인 강릉江陵의 성곽 동쪽에 묻혀 계신다.
승성承聖 말에 이미 〈산소를〉 양도揚都로 옮기고 싶다고 글을 올리고 이장移葬을 하려고 하였다.
허락이 떨어지면서 은銀 백 냥까지 하사하시어 양주揚州 교외의 작은 마을 북쪽 땅에서 이미 기와까지 굽고 있었는데, 양梁의 멸망을 만나 이렇게 떠돌아다닌 지가 수십 년이니 돌아갈 희망조차 끊어졌다.
이제 비록 통일은 되었지만 집안 형편이 곤궁하니 무슨 수로 이장해 모실 비용을 마련할 수 있겠느냐?
또한 양도揚都는 파괴되어 남은 것 하나 없고, 게다가 낮고 습한 곳에 모시는 것이 반드시 좋은 생각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내 자신에 대한 책망과 질책이 심장을 꿰뚫고 골수에 사무친다. 생각해보면 우리 형제들은 벼슬에 나가서는 안 되었다.
다만 집안이 기울어 형제들은 외롭고 약했고 오복五服 내에 방계 친척도 하나 없었으며, 타향에 옮겨와서 살다 보니 기댈 만한 조상의 음덕蔭德도 없었다.
너희들로 하여금 천한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면 이는 선조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서 〈벼슬을〉 감히 그만두지 못하였던 것이다.
아울러 북방은 정교政敎가 엄격해서 은퇴하는 이가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