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之學士, 語亦不正; 古獨何人, 必應隨其譌僻乎?
曰:“入室求曰搜。” 反爲兄侯, 然則兄當音所榮反。
陷沒, 此音被於關中, 不知二者何所
。以吾淺學, 未之前聞也。
고대와 오늘의 언어는 시대와 풍속에 따라 달라지며, 저술하는 사람이 남방 출신이냐 북방 출신이냐에 따라 각기 다르다.
《창힐훈고蒼頡訓詁》에서는 패稗(패:[bʹuæi])를 포매절逋賣切(배:[pæi])로 반절反切하였고, 와娃(와)를 어괴절於乖切(왜)로 반절反切하였으며,
《전국책戰國策》에서는 문刎(문)을 면免(면)으로 주음注音하였고, 《목천자전穆天子傳》에서는 간諫(간)을 간間으로 주음하였으며,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알戛(알)을 극棘(극)으로 주음하였고, 명皿(명)을 맹猛(맹)으로 주음하였으며,
《자림字林》에서는 간看(간)의 음을 구감절口甘切(감)로 반절反切하였고, 신伸(신:[shēn])을 신辛(신:[xīn])으로 주음하였다.
《운집韻集》에서는 성成(성)과 잉仍(잉), 굉宏(굉)과 등登(등)이 각각 두 개의 운韻에 합해져 있으면서, 위爲(위)와 기奇(기), 익益(익)과 석石(석)은 도리어 네 개의 운韻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등李登의 《성류聲類》에서는 계系(계)로 예羿(예)를 주음하였고, 유창종劉昌宗의 《주관음周官音》에서는 승乘(승)을 승承(승)과 같다고 주음하였다.
이러한 예는 아주 광범위하니, 반드시 고증하고 교정해야만 한다.
예전의 반절어反切語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많다.
서선민徐仙民의 《모시음毛詩音》에서는 취驟(취)를 재구절在遘切(주)로 반절反切하였고, 《춘추좌전음春秋左傳音》에서는 연椽(연)을 도연절徒緣切(전)로 반절反切하였으나, 믿을 만하지 못하며 이러한 것들이 또한 많다.
요즘 학사學士들의 말도 정확하지 않거늘 옛날의 누구인들 반드시 그 잘못까지 따라야만 하겠는가?
《통속문通俗文》에서는 “방에 들어가 찾는 것을 수搜라고 한다.”는 말의 수搜(수)자를 형후절兄侯切(후)의 독음으로 반절反切하였으니, 그렇다면 형兄(형)은 마땅히 소영반所榮反(성)으로 발음해야 할 것이다.
요즘 북방의 항간에서 이런 독음이 통용되고 있지만, 이 또한 고어古語로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번璵璠(번)은 노魯나라의 보석으로 마땅히 여번餘煩(번)으로 발음해야 하지만, 강남江南에서는 모두 번璠(번:[vjuɐn])을 번병藩屛(번병)의 번藩(번:[fán])으로 발음한다.
기산岐山(기산)은 기岐(기)를 마땅히 기奇(기)로 발음해야 하는데도 강남江南에서는 모두 신기神祇(지:지祗)의 기祇(지)로 소리 낸다.
강릉江陵이 함락되자 〈강남江南의〉 이 두 음이 관중關中에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 두 음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모르겠다. 나는 배운 것이 적어서 예전에 들어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