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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氏家訓(2)

안씨가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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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發音의 차이와 오류들
古今言語, 時俗不同; 著述之人,
《戰國策》音刎爲免, 《穆天子傳》;
《說文》音戛爲棘, 讀皿爲猛;
《字林》音, ;
, 爲、奇、益、石分作四章;
此例甚廣, 必須考校。
前世反語,
, 《左傳音》, 不可依信, 亦爲衆矣。
今之學士, 語亦不正; 古獨何人, 必應隨其譌僻乎?
曰:“入室求曰搜。” 反爲兄侯, 然則兄當音所榮反。
今北俗通行此音,
陷沒, 此音被於關中, 不知二者何所。以吾淺學, 未之前聞也。


2. 발음發音의 차이와 오류들
고대와 오늘의 언어는 시대와 풍속에 따라 달라지며, 저술하는 사람이 남방 출신이냐 북방 출신이냐에 따라 각기 다르다.
창힐훈고蒼頡訓詁》에서는 (패:[bʹuæi])를 포매절逋賣切(배:[pæi])로 반절反切하였고, (와)를 어괴절於乖切(왜)로 반절反切하였으며,
전국책戰國策》에서는 (문)을 (면)으로 주음注音하였고, 《목천자전穆天子傳》에서는 (간)을 으로 주음하였으며,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알)을 (극)으로 주음하였고, (명)을 (맹)으로 주음하였으며,
자림字林》에서는 (간)의 음을 구감절口甘切(감)로 반절反切하였고, (신:[shēn])을 (신:[xīn])으로 주음하였다.
운집韻集》에서는 (성)과 (잉), (굉)과 (등)이 각각 두 개의 에 합해져 있으면서, (위)와 (기), (익)과 (석)은 도리어 네 개의 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등李登의 《성류聲類》에서는 (계)로 羿(예)를 주음하였고, 유창종劉昌宗의 《주관음周官音》에서는 (승)을 (승)과 같다고 주음하였다.
이러한 예는 아주 광범위하니, 반드시 고증하고 교정해야만 한다.
예전의 반절어反切語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많다.
서선민徐仙民의 《모시음毛詩音》에서는 (취)를 재구절在遘切(주)로 반절反切하였고, 《춘추좌전음春秋左傳音》에서는 (연)을 도연절徒緣切(전)로 반절反切하였으나, 믿을 만하지 못하며 이러한 것들이 또한 많다.
요즘 학사學士들의 말도 정확하지 않거늘 옛날의 누구인들 반드시 그 잘못까지 따라야만 하겠는가?
통속문通俗文》에서는 “방에 들어가 찾는 것을 라고 한다.”는 말의 (수)자를 형후절兄侯切(후)의 독음으로 반절反切하였으니, 그렇다면 (형)은 마땅히 소영반所榮反(성)으로 발음해야 할 것이다.
요즘 북방의 항간에서 이런 독음이 통용되고 있지만, 이 또한 고어古語로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번璵璠(번)은 나라의 보석으로 마땅히 여번餘煩(번)으로 발음해야 하지만, 강남江南에서는 모두 (번:[vjuɐn])을 번병藩屛(번병)의 (번:[fán])으로 발음한다.
기산岐山(기산)은 (기)를 마땅히 (기)로 발음해야 하는데도 강남江南에서는 모두 신기神祇(지:)의 (지)로 소리 낸다.
강릉江陵이 함락되자 〈강남江南의〉 이 두 음이 관중關中에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 두 음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모르겠다. 나는 배운 것이 적어서 예전에 들어본 적이 없다.


역주
역주1 楚夏各異 : 《文選》 〈魏都賦〉의 “말소리에는 楚와 夏가 있다.[音有楚夏]”라는 구절에 呂向은 “音이란 사람들의 말소리이다. 夏는 중국이다.”라고 주석하였다. 《山海經》 〈海內東經〉에 보이는 郭璞의 주석에 의하면 “시대가 멀어져 예와 지금이 바뀌니 말소리가 楚나라와 夏나라로 나뉘어 부르는 이름이 달라졌다.”고 하였다.[王利器]
여기서는 楚를 남방으로, 夏를 북방으로 의역하였다.[역자]
역주2 蒼頡訓詁 : 《蒼頡訓詁》는 後漢의 杜林이 지었으니, 《舊唐書》 〈經籍志〉에 보인다.[周祖謨]
역주3 反稗爲逋賣 : 《廣韻》에 의하면 稗는 독음이 傍卦切(패)로, 〈顔之推가 든〉 逋賣切(배)과는 독음이 다르다.[段玉裁]
본문에서 顔之推가 든 逋賣切의 反切上字 逋는 《廣韻》에는 쓰지 않는 反切上字로, 逋의 《廣韻》 독음이 博孤切이므로, 逋賣切은 博賣切의 독음과 유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廣韻》에는 反切下字 賣를 같이 쓰는 자로서 博賣切의 反切 독음은 없고 가장 유사한 反切 독음으로 方賣切만 있으며 이에 배당된 한자는 㠔(배)자뿐이므로, 여기서는 㠔를 逋賣切과 方賣切의 국어 한자음으로 추정한 것이다. 《廣韻》에 의하면 이들은 中古音 당시 성모에서 각각 濁音 傍[bʹ] 성모와 淸音 博[p], 혹은 淸音 方[f] 성모 간의 구분이 있다. 이들의 反切下字 卦와 賣는 모두 蟹攝 去聲 卦韻에 속하며 각각 合口呼와 開口呼로 나뉠 수는 있으나 同韻字들이다. 逋賣切의 독음을 ‘배’로 추정한 것은 稗(패)와의 차이점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廣韻》의 反切 체계상 逋賣切과 동음의 反切인 博賣切의 독음을 예시한 것인데, 그 독음의 근거가 약하므로 이들 독음의 또 다른 근거로서 제시한 [bʹuæi]와 [pæi]는 董同龢가 추정한 中古音을 예로 든 것이다.[역자]
역주4 反娃爲於乖 : 娃는 대개 於佳切(왜)과 烏瓜切(와)의 2개 독음이 있으므로 이 2개의 독음으로 이를 설명한 것이다. 顔之推는 於乖切(왜)을 북방의 異讀音으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顔之推 자신은 이를 娃(와:烏瓜切)와 같이 읽었을 것이라 여겨 설명한 것이다. 反切下字 佳와 乖는 비록 각각 佳韻의 開口音과 皆韻의 合口音으로 서로 운모가 다르나 크게는 모두가 蟹攝에 속한다.[역자]
역주5 音諫爲間 : 《詩經》 〈大雅 板〉의 ‘이 시로 단단히 간언해야지.[是用大諫]’라는 구의 〈諫자가〉 《春秋左氏傳》 成公 8년에서는 簡자로 인용되어 있는데, 簡은 곧 間의 上聲字이니, 諫과 間의 古韻이 서로 같았기 때문이다. 《唐韻》에 諫은 古晏反으로 諫韻에 있으며, 間은 古莧反으로 襉韻에 있어 諫과 間이 韻類가 다르므로 顔之推는 郭璞의 주석을 그르다고 여긴 것이다.[周祖謨]
역주6 看爲口甘反 : 看은 口干反(간)이 되어야 한다. 口甘切(감)이라 하면 談韻에 들어가는데 순리가 아니다. 지금의 韻書에서는 邯(한)을 寒韻에 들여놓고 있는데 徐鉉이 인용하고 있는 《唐韻》에서조차 이미 이와 같았으니 그 잘못이 꼭 같다.[段玉裁]
看은 《切韻》의 독음이 苦寒反(간)으로 寒韻에 있는데, 《字林》의 독음은 口甘反(감)으로 그 독음이 談韻에 들어 있으니 《切韻》의 독음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任大椿의 《字林考逸》에 수록된 寒韻字를 살펴보아도 독음이 談韻으로 들어가는 글자는 없으니 甘자에 착오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며, 만약 착오가 아니라면 晉나라 때 方音의 차이임에 틀림없다.[周祖謨]
역주7 音伸爲辛 : 고대에는 〈초성자음에〉 心 성모와 審 성모의 구별이 없었다.[錢大昕(흔)]
伸은 《切韻》의 독음이 書隣反이며 辛은 독음이 息隣反이다. 申은 審 성모의 三等字이고, 辛은 心 성모로, 審과 心 성모가 똑같이 摩擦音이어서 方言에서는 心과 審 성모가 곧잘 뒤섞인다. 《字林》에서 ‘伸(신)을 辛(신)으로 주음하였다.’는 것은 審 성모를 心 성모로 읽었다는 것이니, 이는 漢代 사람들이 蜀을 叟로 읽었던 예와 비슷하다. 錢大昕이 ‘고대에는 〈초성자음에〉 心 성모와 審 성모의 구별이 없었다.’고 한 것은 옳지 않다. 대개 이는 그저 方音이 서로 달라서였을 뿐이지 古音에서 心 성모와 審 성모가 같은 부류였기 때문은 아니다.[周祖謨]
伸과 辛은 국어의 한자음으로는 서로 同音字들이어서 그 독음상 차이점이 구분되지 않으므로, 한어병음을 附記하여 그 두 자가 현대에도 서로 다른 지방에서는 서로 다르게 발음될 수 있음을 엿보게 한 것이다.[역자]
역주8 韻集以成仍宏登合成兩韻 : 지금의 《廣韻》은 《唐韻》에 근거한 것이며, 《唐韻》은 陸法言의 《切韻》에 근거한 것인데, 陸法言의 《切韻》은 顔之推가 편찬에 동참한 것이다. 그렇다면 顔之推가 주장하는 것은 대개 지금의 《廣韻》과 같을 것이다. 지금의 《廣韻》에서 ‘成’은 十四淸韻에 있고 ‘仍’은 十六蒸韻에 있어 2개의 韻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宏’은 十三耕韻에 있고 ‘登’은 十七登韻에 있어 역시 2개의 韻으로 구분되어 있으나, 呂靜의 《韻集》에는 成과 仍이 같은 韻이고 宏과 登이 같은 韻이므로 두 개의 韻에 합해져 있다고 말한 것이다.[段玉裁]
역주9 李登聲類 : 《封氏聞見記》 1에 의하면 “魏나라 李登이 《聲類》 10권을 지었는데 모두 11,520자로, 五音의 이름으로 글자들의 무리를 이름 지었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역주10 劉昌宗周官音讀乘若承 : 乘은 食陵切로 독음이 繩과 같으며, 承은 署陵切로 독음이 丞과 같으니, 이들은 초성자음에 床 성모와 禪 성모의 구별이 있는 것이다. 지금 江蘇省과 浙江省 지역 사람들이 承을 乘과 같이 읽는다.[錢大昕]
乘은 현대 한어에서는 異讀音을 지닌 字로서 乘([shèng])과 乘([chéng])의 독음이 서로 나뉜다. 국어의 한자음으로는 서로 同音字들인 데다, 현대 한어에서도 乘([chéng])의 독음은 承([chéng])과 同音字이므로 여기서는 顔之推가 이들의 독음을 다르게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만을 부각시키기 위해 현대 한어의 異讀音 乘([shèng])을 들어 乘([chéng])과 다른 독음의 한 예를 보인 것이다.[역자]
역주11 又多不切 : 顔之推가 이전 세상의 反切語가 정확하지 않다고 여긴 것은 〈당시의 독음에는 밝았을지라도〉 古音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데 말미암은 것이다.[錢大昕]
역주12 徐仙民毛詩音反驟爲在遘 : 《隋書》 〈經籍志〉에 의하면 “《毛詩音》 2권과 《春秋左傳音》 3권은 모두 徐邈이 지었다.”라고 하였다.[趙曦明]
《廣韻》에는 驟가 鋤祐切로 宥韻에 있다. 徐邈의 독음에 따르자면 마땅히 候韻에 들여놓아야 한다.[錢大昕]
徐仙民(徐邈)은 본서 제17 〈書證〉편 3 주 4) 참조.[역자]
역주13 切椽爲徒緣 : 《廣韻》에서 椽은 直攣切(澄 성모)의 독음이나, 古音으로는 〈反切上字〉 直은 特(定 성모)과 같으므로, 徒緣切(定 성모)과는 독음이 다르지 않았다. 今音에 이르러서야 澄 성모와 定 성모는 2개의 성모로 나뉜 것이다.[錢大昕]
椽을 徒緣切(전)로 反切하다. 국어 한자음에서는 ‘연’을 관습음으로 수용하되 더러 ‘전’도 본음으로 소개하고 있다.[역자]
역주14 通俗文 : 東漢末 服虔이 편찬한 최초의 俗語 어휘 사전이다. 이미 亡失되었으나 다른 서적에 인용된 것을 보자면, 俗語나 俗字, 혹은 대량의 口語를 모아두었던 책으로 여겨진다.[역자]
역주15 亦古語之不可用者 : ‘服虔의 독음이 비록 古音이라 하더라도 역시 〈고대의 독음을〉 계승해서 쓸 수는 없다.’는 뜻이다.[周祖謨]
역주16 璵璠(여번) 魯人寶玉 : 《說文解字》 〈玉部〉에 보이는 구절이다.[王利器]
《說文解字》 〈玉部〉에서 許愼은 ‘魯나라 사람들의 보옥[魯人寶玉]’으로 璵璠을 璠與로 소개하고 있다. 璠(번:[vjuɐn])의 [vjuɐn]은 顔之推가 인식하고 있었을 濁音 성모를 보이느라 董同龢가 추정한 中古音을 든 것이다. 이후 濁音淸化가 발생한 現代의 普通話에서는 璠(번:[fán])과 藩(번:[fán])은 동음자이며, 藩(번:[fán])의 董同龢 추정 中古音은 璠([fjuɐn])이다.[역자]
역주17 當音餘煩 江南皆音藩(번)屛之藩 : 《切韻》에 煩은 附袁反이며 藩은 甫煩反이니 두 자는 모두 〈山攝의 合口呼 三等 平聲字로〉 元韻에 속한 자들이나, 煩은 〈濁音인〉 奉([v]) 성모이며, 藩은 〈淸音인〉 非([f]) 성모이니, 성모간에 淸音과 濁音에서 차이가 있다. 《切韻》에서 璠은 附袁反이니 顔之推의 설명과 정확히 부합한다. 다만 《春秋左氏傳》 定公 5년의 ‘季平子가 죽자 陽虎는 璵璠으로 염을 하려고 하였다.’는 구절의 《經典釋文》의 풀이에서는 ‘璠은 독음이 煩이나, 方煩反의 독음도 있다.’고 하며, 空海의 《篆隷萬象名義》本의 顧野王 《玉篇》에서는 璠의 독음이 甫園反이라 하였으니, 方煩反이나 甫園反은 곧 藩의 독음이므로, 이는 江南에 이러한 異讀音이 있었다는 것이다.[周祖謨]
顔之推는 이곳에서 아래와 같은 두 가지 발음상의 차이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顔之推는 幫([p]) 성모와 並([b]) 성모 등의 重唇音은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非([f]) 성모와 奉([v]) 성모 등 輕唇音만을 들어 이들간 독음 변화에 관한 문제를 토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輕唇音과 重唇音은 《廣韻》으로 대표되는 中古音 시대에 비로소 엄격히 구분되기 시작하므로, 고대에는 輕唇音의 구분이 없었다고 여겨져 왔으나, 顔之推의 토론이나 문제의식을 이 장의 서두와 연관 지어 살펴보자면, 輕唇音과 重唇音은 九州의 사람들이 九州에 태어날 때부터 이미 구분되고 있었던 현상임을 그가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顔之推는 이곳에서 奉([v]) 성모가 非([f]) 성모에 동화되고 있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全濁聲母의 소실로 인한 이러한 濁音淸化의 현상은 中古音 이후 現代의 普通話에 이르는 주요한 독음습관의 변화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으나, 顔之推에 의하면 이는 《切韻》의 성립 시대 이전부터 이미 발생‧인식되고 있었던 독음습관의 변화 유형에 속한다는 점으로, 이들은 당시 중국의 방언간 발음습관의 현상을 살펴볼 수 있는 주요한 자료 중 하나이다. 吳方言은 全濁聲母를 지금까지 가장 전형적으로 잘 보존하고 있는 방언으로, 奉 성모에 속하는 父자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면, 크게 去聲에 속하는 聲調를 무시할 경우, 吳方言에 속하는 蘇州話에서는 지금도 이를 父([vu])라고 말하는 데 반하여, 濁音淸化가 발생한 현대 普通話에서는 이를 父([fu])라고 말한다는 점을 통하여, 顔之推가 이곳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가 있을 것이다.[역자]
역주18 岐山當音爲奇 江南皆呼爲神祇之祇 : 고서에서 支와 氏는 통용되므로, 江南의 독음은 틀린 것이 아니다. 《廣韻》에도 祇와 岐는 성모가 같으니 바로 江南의 독음을 채용한 것이다. 이는 陸法言일지라도 역시 顔之推의 주장을 다 적용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錢大昕]
《切韻》에 奇는 渠羈反이며, 祇는 巨支反이니 두 자는 모두 支韻에 있어 다 함께 ‘群(g’-:곧 全濁牙音)’ 성모의 字이나 等의 순서(곧 韻母의 앞머리 ‘i’의 細密함)에 차이가 있으니 奇는 三等字(세밀한 ‘i’음의 자)요, 祇는 四等字(더욱 세밀한 ‘i’음의 자)이다. 《切韻》에 岐山의 岐는 독음이 巨支反과 渠羈反 2개의 反切이 보이며(《王抄切韻第二種》과 故宮本 王仁昫의 《切韻》에 같이 보임), 《周易》 升卦의 〈象傳〉에 보이는 ‘군왕이 岐山에서 제사를 드린다.’는 구절에 대한 《經典釋文》의 풀이에서는 ‘岐는 其宜反이나, 혹은 祁支反의 독음도 있다.’ 하였으니 역시 2개의 독음을 지니는바, 祁支反은 바로 巨支反이요, 其宜反은 곧 渠羈反이다. 顔之推가 ‘河北과 江南의 독음이 서로 다르다.’고 한 것은 그 대략을 말한 것일 뿐으로, 原本 《玉篇》에서는 岐가 곧 渠宜反이라 하였으니, 이는 江南에도 奇라 읽은 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周祖謨]
祇(기)의 異讀音을 표시한 것이다. 神祇(기)의 독음은 祇(기)가 옳음에도, 顔之推는 그 독음이 岐(기)나 奇(기)와 다르게 들렸다고 하므로, 대개 祗(지)의 通假字로서 祇(지:祗)의 독음으로 들렸을 것이다. 祇(기)는 岐(기)나 奇(기)와 함께 모두 群 성모의 글자들이어서 祇(지:祗)를 제외하면 이들 셋은 성모도 모두 같다. 국어 한자음에서는 ‘땅귀신[地神]’의 뜻으로서의 祇(기)와, ‘때마침[適], 다만[但], 혹은 공경하다[祗]’의 뜻으로서의 祇(지)를 모두 수용하고 있다.[역자]
역주19 江陵 : 顔之推의 집안은 그의 부친 顔協에 이르러 江陵(湖北省 江陵縣)으로 이주하여 顔之推는 이곳에서 태어났으며, 顔之推가 24세(554) 되던 때 江陵이 西魏(535~556년간 존속)에 함락되자 梁朝의 人士들이 대부분 포로가 되어 顔之儀는 長安으로 옮겨지고 顔之推는 弘農(지금의 河南省 陝縣)으로 옮겨진 적이 있었다. 비록 西魏는 곧 차례로 北齊(550~577년간 존속)와 北周(557~581년간 존속)를 거쳐 隋(581~618년간 존속)로 왕조가 이양되었으나, 北齊 때의 도읍 鄴을 제외하면 顔之推 생존기간 동안 이어진 거의 모든 왕조들이 長安을 도읍으로 삼았으므로 顔之推는 이하의 본문에서도 “이 독음이 關中에 유행하였다.”고 한 것이다.[역자]
역주20 承案 : 받아들여 좇다. 혹은, 의거하다. 《資治通鑑》 142의 胡三省 주석에 의하면 “案이란 ‘문건’의 뜻이니, ‘간직하며 그에 의거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王利器]

안씨가훈(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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