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옹蔡爲
호금영胡金盈作《母靈表頌》曰:“悲母氏之不永,
。”
又爲
作其父銘曰:“葬我考
의랑군議郎君。” 《袁
애삼공송三公頌》曰:
歟我祖, 出自有
。”
왕찬王粲爲
반문칙潘文則《
사친시思親詩》云:“
,
予小人;
진사왕陳思王《
무제뢰武帝誄》, 遂深
之
진사왕思;
반악潘岳《
도망부悼亡賦》, 乃愴
:
채옹蔡邕《
양병비楊秉碑》云:
반니潘尼《
증노경선시贈盧景宣詩》云:
손초孫楚《
왕표기뢰王驃騎誄》云:
남을 대신하여 글을 써줄 경우 언제나 그 사람이 말하는 방식으로 쓰는 것이 이치상 옳다.
〈그러니〉 슬프고 흉한 내용의 글을 함부로 대신 써줄 수는 없다.
채옹蔡邕이 호금영胡金盈을 위해 〈모령표송母靈表頌〉을 지으면서 “어머님이 오래 사시지 못한 것이 슬프구나, 갑자기 날 버리고 일찍 돌아가셨으니.”라 하였다.
또 호호胡顥를 위해 그 아버지의 명문銘文을 지으면서 “내 아버지 의랑군議郎君을 장사 지낸다.”라고 하였으며, 〈애삼공송哀三公頌〉에서는 “아아! 우리 조상님, 규씨嬀氏 성에서 나오셨네.”라 하였다.
왕찬王粲은 반문칙潘文則을 위한 〈사친시思親詩〉에서 “몸소 이렇게 고생하시며 우리 어린 자식을 키워주셨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님 내내 평안하소서.”라고 했다.
모두 채옹蔡邕과 왕찬王粲의 문집에 실려 있는데, 이러한 사례는 대단히 많다.
옛사람들이 행하던 일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금기로 여긴다.
진사왕陳思王 조식曹植은 〈무제뢰武帝誄〉에서 영원히 칩복蟄伏하심을 깊이 생각한다고 하였고, 반악潘岳은 〈도망부悼亡賦〉에서 손때가 남은 것을 보며 슬퍼한다고 했다.
이는 아버지를 벌레에 비유한 것이요, 아내를 돌아가신 아버지에 견준 것이다.
채옹蔡邕은 〈양병비楊秉碑〉에서 “대록大麓의 중책을 통괄하였다.”라 하였고, 반니潘尼는 〈증노경선시贈盧景宣詩〉에서 “구오九五에 용이 날아가는 것을 생각한다.”라고 했으며, 손초孫楚는 〈왕표기뢰王驃騎誄〉에서 “갑자기 등하登遐하셨다.”라고 했다.
육기陸機는 〈부뢰父誄〉에서 “많은 백성들이 마음을 의지하였고, 백관이 화목하고 질서가 잡혔다.”라고 하였고, 〈자뢰姊誄〉에서는 “하늘 소녀에 견준다.”라고 했다.
오늘날 〈임금에게나 사용할 수 있는〉 이런 말을 썼다가는 조정朝廷의 죄인이 될 것이다.
왕찬王粲은 〈여양덕조시與楊德祖詩〉에서 “우리 임금님 그를 전별하시니, 즐거움이 예예洩洩하도다.”라 하였다.
〈모자母子가 화해할 때 쓰는 이런 표현은〉 남의 자식에게도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태자太子에게야 말할 나위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