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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1)

통감절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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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戌]四年이라
張儀說楚王曰 夫爲從者 無以異於驅群羊而攻猛虎 不格注+[釋義]猶言不敵也 明矣니이다
今王 不事秦하시면 劫韓驅梁而攻楚하리니 則楚危矣리이다
楚王 許之하다 張儀遂之韓하야 說韓王曰
夫戰之士하야 以攻不服之弱國 無異垂千鈞注+[頭註]十黍爲絫 絫百爲銖 二十四銖爲兩이니 象二十四氣 十六兩成斤하니 象四時乘四方也 三十斤成鈞이니 象一月也 四鈞成石이니 象四時 重百二十斤 象十二月也之重於鳥卵之上이니 必無幸矣리이다
大王 不事秦하시면 下甲注+[釋義]猶言頓兵也하야 據宜陽하고 塞成皐하리니 則王之國 分矣리니
爲大王計컨대 莫如事秦而攻楚니이다
韓王 許之하다 張儀歸報秦王하니 復使東說齊王曰
從人說大王者 必曰 齊蔽於三晉하고 地廣兵彊하니 雖有百秦이라도 將無奈齊何라하나니
秦, 楚嫁女娶婦하야 爲昆弟之國하고 韓獻宜陽하고 梁效河外注+[釋義]河之南邑이니 若曲沃, 平周等이라 正義 謂同華州地也하고 趙王 入朝하야 割河間以事秦하니 大王 不事秦하시면 驅韓, 梁, 趙하야 攻之하리니 雖欲事秦이나 不可得也리이다
齊王 許之하다
張儀去하야 西說趙王曰
大王 收率天下하야 以擯秦하시니 秦兵 不敢出函谷關 十五年이라
大王之威 行於山東이어니와 楚與秦爲昆弟之國하고
而韓, 梁 稱東藩之臣하고 齊獻魚鹽之地하니 斷趙之右肩也
夫斷右肩而與之鬪하고 失其黨而孤居하면 求欲無危 得乎잇가
爲大王計컨대 莫如與秦王面約하야 常爲兄弟之國이니이다
趙王 許之하다 張儀乃北說燕王曰
大王 不事秦하시면 下甲雲中, 九原하야 驅趙而攻燕하리니水, 長城 非大王之有也리이다
燕王 請獻常山之尾五城하야 以和하다
張儀歸報할새 未至咸陽하야 秦惠王薨하고 子武王立하니 武王 自爲太子時 不說(悅)張儀러니 及卽位 群臣 多毁短之
諸侯聞儀與秦王有隙하고 皆畔(叛)衡하고 合從하다


4년(경술 B.C.311)
장의張儀초왕楚王을 설득하기를 “합종合從을 하는 것은 여러 을 몰아 사나운 범을 공격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니, 대적하지 못할 것이注+[釋義]불격不格은 대적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분명합니다.
지금 나라를 섬기지 않으시면 나라가 나라를 위협하고 (魏)나라를 몰아 나라를 공격할 것이니, 그렇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하였다.
초왕楚王이 허락하자, 장의張儀가 마침내 나라에 가서 한왕韓王을 설득하였다.
맹분孟賁오획烏獲같은 용사를 싸우게 하여 복종하지 않는 약한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천균千鈞(3만 근)의注+[頭註]10라 하고 100라 하고 24이라 하니 24절기節氣를 상징한 것이요, 16이라 하니 사시四時사방四方을 탐을 상징한 것이요, 30이라 하니 한 달을 상징한 것이요, 4이라 하니 사시四時를 상징한 것이요, 1의 무게가 120인 것은 12개월을 상징한 것이다. 무게를 새알의 위에 올려놓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반드시 불행하게 될 것입니다.
대왕大王나라를 섬기지 않으시면 나라가 군대를 주둔하여注+[釋義]하갑下甲은 군대를 주둔하였다는 말과 같다.의양宜陽을 점거하고 성고成皐를 막을 것이니, 그렇게 되면 왕의 나라가 분열될 것입니다.
대왕大王을 위하여 계책해 보건대 나라를 섬기고 나라를 공격하는 것만 못합니다.”
한왕韓王이 허락하자, 장의張儀가 돌아가 진왕秦王에게 보고하니, 〈진왕秦王은〉 다시 동쪽으로 사신 가서 제왕齊王을 설득하게 하였다.
합종合從하는 사람으로 대왕大王을 설득하는 자들은 반드시 말하기를 ‘나라는 삼진三晉에 가려져 있고 땅이 넓고 군대가 강하니, 비록 백 개의 나라가 있더라도 장차 나라를 어찌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나라와 나라가 딸을 시집보내고 며느리를 얻어 형제의 나라가 되었고, 나라는 의양宜陽을 바치고 나라는 하외河外를 바치고注+[釋義]하외河外황하黃河 남쪽의 고을이니, 곡옥曲沃평주平周 등과 같은 것이다. 《사기정의史記正義》에 “동주同州화주華州 땅을 이른다.” 하였다.조왕趙王입조入朝하여 하간河間을 떼어 나라를 섬기니, 대왕大王나라를 섬기지 않으시면 를 몰아 공격할 것이니, 비록 나라를 섬기고자 해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에 제왕齊王이 허락하였다.
장의張儀가 떠나 서쪽으로 가서 조왕趙王을 설득하였다.
대왕大王이 천하를 거두어 인솔하여 나라를 물리치시니, 나라 군대가 감히 함곡관函谷關을 나가지 못한 지가 15년입니다.
대왕의 위엄이 산동山東 지방에 행해지고 있습니다만, 지금 나라는 나라와 형제의 나라가 되었고
나라와 나라는 동번東藩의 신하를 칭하고 나라는 어물과 소금이 나는 땅을 바쳤으니, 이는 나라의 오른쪽 어깨를 끊은 것입니다.
오른쪽 어깨를 끊기고서 남과 싸우며 을 잃고 외롭게 있으면서 위태로움이 없기를 바란다면 되겠습니까.
대왕을 위하여 계책해 보건대 진왕秦王과 대면하여 맹약해서 항상 형제의 나라가 되는 것만 못합니다.”
조왕趙王이 허락하자, 장의張儀가 마침내 북쪽으로 가서 연왕燕王을 설득하였다.
“대왕이 나라를 섬기지 않으시면 나라가 군대를 운중雲中구원九原에 주둔시키고 나라를 몰아 나라를 공격할 것이니, 이렇게 되면 역수易水장성長城대왕大王의 소유가 아닐 것입니다.”
이에 연왕燕王상산常山의 끝 다섯 을 떼어 바쳐 화친을 청하였다.
장의張儀나라에 돌아가 보고할 적에 함양咸陽에 이르기 전에 나라 혜왕惠王이 죽고 아들 무왕武王이 즉위하니, 무왕武王태자太子 시절부터 장의張儀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가 즉위하자 여러 신하들이 장의張儀를 비방하고 단점을 지적하는 자가 많았다.
제후諸侯들은 장의張儀진왕秦王과 틈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연횡連橫을 배반하고 다시 합종合從을 하였다.


역주
역주1 孟賁, 烏獲 : 모두 戰國時代의 力士로 孟賁은 소뿔을 산 채로 뽑았다 하며 烏獲은 무게가 千鈞인 솥을 들었다 한다.
역주2 : 역
역주3 : 부
동영상 재생
1 [경술] 4년 632
동영상 재생
2 [경술] 4년 450

통감절요(1)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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