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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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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亥]三年이라 〈漢建元元年이라
詔進拓跋注+[原註]後爲元魏하니라注+[附註]拓跋 複姓이니 後改姓元氏하니라 匈奴劉虎附漢이어늘 劉琨將討之할새 說猗盧하야 請兵하야 遂破劉虎하니라 琨結爲兄弟하고 表爲大單于하야 封之代公이러니 後爲元魏하니라 魏之先 出自黃帝 受封國 有大鮮卑山하야 因以大鮮卑爲號하니라하야 爲代王하다
○ 陶侃 爲廣州刺史하다
在廣州 無事 輒朝運百注+[釋義] 韻會云 瓴甋 謂之甓이라於齋外하고 暮運於齋內어늘
人問其故한대 答曰 吾方致力中原하노니 過爾優逸이면 恐不堪事 故自勞爾라하더라


건흥建興 3년(을해 315) - 나라 건원建元 원년元年이다. -
황제가 명하여 탁발의로拓跋猗盧注+[原註]拓跋猗盧는 뒤에 원위元魏(北魏)의 선조가 된다.注+[附註][附註]拓跋은 복성複姓이니, 뒤에 성을 원씨元氏로 고쳤다. 처음에 흉노匈奴 유호劉虎나라에 붙자, 유곤劉琨이 그를 토벌하려 할 적에 탁발의로拓跋猗盧를 설득하여 병력을 청하여 마침내 유호劉虎를 격파하였다. 유곤劉琨탁발의로拓跋猗盧와 의형제를 맺고 표문表文을 올려 대선우大單于로 삼아서 대공代公에 봉하였는데, 뒤에 원위元魏가 되었다. 나라의 선조先祖황제黃帝로부터 나왔다. 봉국封國을 받은 곳에 대선비산大鮮卑山이 있어서 인하여 대선비大鮮卑라고 호칭하였다. 의 작위를 올려 대왕代王으로 삼았다.
도간陶侃광주자사廣州刺史가 되었다.
도간陶侃광주廣州에 있을 적에 일이 없으면 그때마다 아침에 백 장의 벽돌注+[釋義]은 《운회韻會》에 이르기를 “벽돌을 이라 한다.” 하였다. 을 집 밖으로 운반했다가 저녁이면 집 안으로 운반하였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대답하기를 “내가 막 중원中原에 힘을 다하려 하니, 지나치게 편안하면 일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렵기 때문에 스스로 수고롭게 하는 것뿐이다.” 하였다.


역주
역주1 : 의
역주2 : 벽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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