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癸卯]三年이라
二月 李克用 進軍乾阬하야 與河中, 易定, 忠武軍注+[頭註]河中將 白志遷이요 易定 義武王處存이요 忠武將 龐從이라 하다
尙讓等 將十五萬衆하고 屯于梁田陂어늘 明日 大戰하야 自午至晡注+[頭註]日至申爲晡 하니 賊衆 大敗하다
三月 克用 進軍渭橋하야 與黃巢軍으로 戰于渭南할새 一日三戰皆捷하고 義成, 義武注+[頭註]義成 節度使王鐸이요 義武 節度使王處存이라等諸軍 繼之하니 賊衆大奔이러라
四月 克用等 自光泰門으로 入京師하니 黃巢力戰不勝하고 焚宮室遁去하다
克用時年 二十八이라
於諸將 最少 而破黃巢하고 復長安하니 功第一이요 兵勢最强하니 諸將皆畏之하니라
克用 一目微眇하니 時人 謂之獨眼龍이러라
詔以克用爲河東節度使하고 詔以黃巢未平이라하야 加全忠東北面都招討使하다


중화中和 3년(계묘 883)
2월에 이극용李克用건갱乾阬으로 진군하여 하중河中, 역정易定, 충무忠武注+[頭註]하중河中, 역정易定, 충무군忠武軍:하중군河中軍 장수는 백지천白志遷이고, 역정군易定軍의무군절도사義武軍節度使 왕처존王處存이고, 충무군忠武軍 장수는 방종龐從이다. 등의 군대와 연합하였다.
상양尙讓 등이 15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양전피梁田陂에 주둔하였는데, 다음날 크게 싸워 오시午時부터 저녁 때에 이르니,注+[頭註]해가 신시申時(오후 4시 전후)에 이르는 것을 라고 한다. 적의 무리가 크게 패하였다.
3월에 이극용李克用위교渭橋로 진군하여 황소黃巢의 군대와 위수渭水 남쪽에서 싸웠는데 하루에 세 번 싸워 모두 이겼으며, 의성義成의무義武注+[頭註]의성義成의성군절도사義成軍節度使 왕탁王鐸이고, 의무義武의무군절도사義武軍節度使 왕처존王處存이다. 등 여러 군대가 계속 이어오니, 적의 무리가 크게 패하여 도망하였다.
4월에 이극용李克用 등이 광태문光泰門을 통해 경사京師(長安)로 들어가니, 황소黃巢가 힘껏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궁궐을 불태우고 도망하였다.
이극용李克用은 이때 나이가 28세였다.
여러 장수 중에 나이가 가장 적었으나 황소黃巢를 격파하고 장안長安을 수복하니 공이 으뜸이었고, 군세가 가장 강성하니 여러 장수들이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다.
이극용李克用은 한쪽 눈이 약간 작으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독안용獨眼龍이라고 불렀다.
황제가 명하여 이극용李克用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로 삼고, 조서를 내리기를 “황소黃巢가 아직 평정되지 못했다.”라고 하여 주전충朱全忠에게 동북면도초토사東北面都招討使를 가하였다.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